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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중혁
소설가 김중혁은 등단 이후 장편과 단편 등 십수 편의 작품과 더불어 방송과 유튜브, 그림, 오디오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내비쳤다. 최근에는 에세이 《오늘 딱 하루만 잘 살아 볼까?》를 통해 즐거운 삶을 사는 방법도 공개했다. 다음은 그의 세계와 그, 둘 사이의 문을 정확히 여닫으며 매일매일 평온하고도 유쾌하게 중점을 잡고 있는 그와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Interview
Q. 많은 분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작가님을 만나고 있을 텐데요. 최근에는 신간 《오늘 딱 하루만 잘 살아볼까?》로 작가님을 마주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이번 책은 기존에 낸 책들 과는 사뭇 다르더라고요.
지금까지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쓰고, 다양한 글을 썼지만 이번에는 이름하여 ‘자기계발서’예요. 더 확실하게 하자면 자기계발서 탈을 쓴 에세이죠.
Q. 왜 자기계발서 탈을 씌웠나요?
자기계발이 나쁜 게 아닌데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꺼려하는 편이에요. 아마 자기계발서 글이 대부분 ‘이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규칙을 강조하거나 목표 지향적이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저는 목표보다는 과정 중 심적인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목표를 위해 책에 제시된 100개의 방법을 따라 하다 그 과정 자 체를 즐기게 된다면 목표는 굳이 상관없는 거죠. 그래서 책 형태가 이렇게 되었네요.
Q. 책이 마치 전자 기기 사용법과 활용법처럼 구성되어 있어요.
우선 책에 100가지 방법이 있는 데다가 제가 매뉴얼이나 설명서 만드는 걸 좋아해요. 예전에, 그러니까 캠코더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캠코더를 갖고 있었어요. 그걸 다른 사람들한테 종종 빌려주기도 했고요. 그런데 빌려가는 사람들마다 캠코더를 어떻게 쓰는지 몰라 애를 먹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그림을 그려 캠코더 매뉴얼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 책에도 작가의 말보다는 매뉴얼 같은 사용 설명서를 넣으면 좋겠더라고요. 실제로 설명서를 쓰다 보니 더 재미를 느껴서 뒤에도 간략하게 넣었죠.
Q. 작가님이 제시한 100가지 방법은 웃음을 자아내요. 마치 초등학생들이 좋아할법한 객쩍은 미션이라고나 할까요?
우리가 초등학생의 마음을 잃어버려서 그래요. 아니, 왜 어른들은 쓸데 있는 일만 하려고 그럴까요? 쓸데없는 일도 많이 해야 해요. 이 책을 읽은 분들 가운데 몇몇은 제게 100가지 방법 중에 몇 가지나 해봤냐고 물어와요. 모두 제가 직접 해본 거예요. 심지어 더 많은 것을 해봤죠. 책에는 제가 해본 수백 가지 방법 중 고르고 골라서 담았어요.
Q. 실제로 미션 몇 개를 따라 해보니 쉽지가 않더라고요.
미션을 하면서 일하려니 집중도 어렵고요. 일이 뭐 그리 대단히 중요한가요? 직접 해보는 게 중요하죠 (웃음). 요즘 제게 경험담을 들려주는 분들이 있어요. ‘이걸 해보니까 이런 게 달라지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 좋아요. 이 책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니까요. 책을 통해 쓸데없는 일, 무모해 보이고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일들을 많이 해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Q. 이런 유쾌한 미션이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기르기 위한 작가님만의 노하우인가요?
네. 20년 동안 창의적인 활동을 하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 끄집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 뭐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미션들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간 저는 정말 다양한 헛짓을 했거든요. 지나고 보니 그런 일들 역시 ‘나’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요.
Q. 그럼 매일 쓸데없고도 무모하며 도움이 되지 않는 상상이나 일들을 하시나요?
매일매일이 아니라 초마다 하지 않을까요? 제 직업이 그렇거든요. 이상한 생각들을 계속해야 하죠. 아마도 이상한 생각보다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시간이 훨씬 적을 거예요. 과학자들도 그런 이야기를 해요.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창의력이 날아가 버린다고요. 그래서 전 먼 미래의 계획을 세우지 않아요. 대신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영화를 얼마나 창의적으로 볼 수 있을지, 지금 누군가에게 얼마나 창의적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해요. 뭐든 하나씩 할 때마 다 익숙하지 않게, 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게 제 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24시간 일을 하고 있는 셈이에요.
Q. 때때로 피로하지는 않나요?
재미있어요. 제 인생에서 제일 피로했던 때는 출퇴근을 하던 시절이에요. 그때는 원형 탈모에다가 손톱이 파래지곤 했어요. 직장 생활이 고됐던 모양이에요. 일보다는 출퇴근이 힘들었어요. 매일 같은 시간에 나가고, 버스를 놓치면 안 되고. 퇴근을 하면서도 다음 날 출근을 걱정했으니까요.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이동에 취약한 편이거든요. 그렇게 2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온몸이 망가지는 걸 느꼈어요. 지금도 지방에 일이 생기면 당일치기는 불가능해요. 무조건 1박은 해야 하죠. 여행을 가더라도 오래 머물러야 하고요. 이동 체력이 무척이나 약해요.
Q. 《LIFE IS ORANGE》의 독자분들에게도 작가님처럼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해요. 혹 작가님이 그들에게 창의력 기르는 방법을 제안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보통 창의력이라는 단어에 접근할 때 ‘이걸로 뭘 할 수 있나?’를 고민해요. 창의력을 도구로 여기는 거죠. ‘창의력을 키워야지 성공할 수 있다’, ‘창의력을 키워야지 좋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다’ 같은 거요. 하지만 전 창의력이 도구가 아니라 목표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창의력은 뭘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재밌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구현해 내는 거거든요. 그냥 뭐든지 다 재밌게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가벼운 수다를 떨어도, 어떤 걸 해도 정말 기발하게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요. 그게 창의력 있는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해도 그 사람이 창의력으로 뭘 딱히 얻는 건 아녜요. 그저 재미있는 것뿐 이죠. 그런데요, 삶이 재미있어지면 창의력은 절로 따라올 수밖에 없어요. 다시 말해 창의력은 삶을 즐겁게 사는 방법에 대한 문제이지 성공의 도구는 아니라고 봐요.
Q. 소설을 집필하는 것 이외에도 방송 진행, 유튜브, 웹툰, 일러스트, 디자인 등등 정말 다양한 창작을 하고 계세요. 대체 언제 쉬실까 궁금할 정도예요.
어찌 보면 저는 관심 분야도 하는 일도 많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방송도 나가고 하는 것 같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이에요. 사람들에게 보이는 제 모습이 그렇다면 반대로 제가 안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실 그 사람이 하지 않는 것도 되게 중요하거든요. 저는 어떤 사람이 하는 것보다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들, 피하는 것들이 그 사람을 규정한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그 사람은 술을 안 마셔’, ‘그 사람은 뭘 안 해’ 하는 것들이요. 어쩌면 그게 진짜 그 사람일지 몰라요. 제가 다양하게 무언가를 한다고 하셨지만, 저는 안 하는 게 훨씬 많아요.
Q. 그럼 어떤 걸 하지 않나요?
외부 활동을 별로 하지 않아요. 이를테면 저와 비슷한 나이 또래 남자들이 하는 낚시, 골프, 사진에 관심이 없어요. 차에도 관심이 별로 없고요. 그걸 안 하면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어요. 시간이 되게 많거든요.
Q. 앞서 말했지만 작가님은 여러 디지털 콘텐츠도 만들고 계세요. 그럼에도 이번 이야기는 책으로 펴내셨어요.
다양한 편집 툴이 있죠. 오디오나 영상을 편집할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결국 저를 잘 설명해 주는 건 글이에요. 말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즉흥적이죠. 전 아직도 방송에 나가서 말을 많이 하고 온 날이면 되게 심란해요. 실수를 하거나, 실수를 메꾸려 덧붙인 말들도 편집될 수 있거든요. 반면에 글은 정확하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여러 번 다듬어서 내보일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결국 글로 되돌아오는 것 같아요. 더구나 글을 쓸 때가 제일 행복하고요.
“창의력은 뭘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재밌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구현해 내는 거거든요.”
Q.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은 작가님이 근래 관심을 갖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식물에 관심이 생겨서, 공부를 좀 하고 있어요. 실제로 키운 다기보다 ‘식물의 세계’에 호기심이 있어요. ‘식물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고요. 이 호기심이 어디까지 커질지는 모르겠지만 식물을 관찰하거나, 나무 해설사 같은 것도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Q. 꾸준하고 바지런한 창작 활동을 하는 데 원동력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피그〉라는 영화를 봤어요. 엄청나게 까다로운 주방장이 주인공이고요. 그가 어느 정도로 철두철미하냐면 “나는 지금까지 내가 만들었던 모든 요리를 기억하고 내가 서빙했던 모든 사람을 기억한다”라고 할 정도예요. 한데 그 사람은 그렇게 사는 대신 타인에게 상처를 줘요. 저는 자주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또 그러고 싶지 않아서 예술을 하고 있고요. 이건 누구 하나가 이기고 지는 싸움 같은 게 아니라 제가 예술을 만들어 내고, 결국 모두가 이기는 거니까요.
Q. 올해 작가님은 어떤 계획을 세우셨나요?
딱히 계획은 없어요. 최대한 빈 시간을 많이 만들려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거나 제안을 자주 거절해요.
Q. 그 시간에 대체 무얼 하시려고요?
‘네가 스웨덴에서 세 달 동안 머물면서 글을 쓰면 거금을 주겠다’ 같은 제안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제안을 받았을 때 너무 바쁘면 못 가잖아요. 그러니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시간을 많이 비워두고 있어야죠(웃음).
Q. 끝으로 유쾌하고 엉뚱한 미션을 제시하는 작가님이 지향하는 삶은 무엇인가요.
오래전에 선택했는데요. 일단 글 쓰는 일에 돈을 많이 벌겠다는 의도는 포함하지 않기로 했어요. 물론 제가 돈을 못 버는 건 아니지만, 돈보다는 자유를 선택했달까요. 호화롭고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생각할 시간이 많은 삶을 취한 거죠. 앞으로도 매일매일 오늘 하루에 집중하며 지금의 삶을 유지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