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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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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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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사람도 덩달아 기분 좋게 만드는 웃음이 있다. 원혜진 ECD의 웃음이 그랬다. 인터뷰 내내 그녀의 얼굴은 순수한 소녀 같기도, 강인한 여성의 얼굴이 되기도 했다. 좋은 광고는 좋은 분위기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원혜진 ECD. 그것이 그녀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다.

 


 

Q.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제작2센터 원혜진ECD팀의 원혜진입니다. 광고인으로서는 24년 차, 이노시안으로서는 11년이 됐네요. 한 곳에 이렇게 오래 있기는 처음입니다. (웃음)

Q.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SK텔레콤 제품 광고 후반 작업이 끝나 곧 온에어 될 예정이고, 불스원샷 광고 촬영이 예정되어 있어요. 또 비타500의 2018년 새로운 캠페인을 진행중이고요. 이건 워너원 Wanna One과 촬영할 예정이라 무척 기대하고 있어요. (웃음) 또한, KCC와 교보생명이 60주년이어서 두 브랜드의 60주년 캠페인을 준비중이에요. 이에 따른 인쇄 작업도 예정되어 있고요. 워낙 많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 중이라 팀원들 입이 잔뜩 나와 있지만요. (웃음)

Q. 이노션에서 많은 공익광고를 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ECD님 인생에서 처음 만든 공익광고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했던 공익 광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정부 공익 광고이고, 다른 하나는 NGO단체 공익 광고에요. 정부 공익 광고로는 환경부 ‘I’M YOUR FATHER’ 캠페인이 처음이었고, NGO 단체를 위해 만든 공익광고로는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의 캠페인이었어요.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의 광고는 처음 만든 광고이기도 하지만, 기억에 남는 광고이기도 해요.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도와달라는 취지의 광고였어요. 촬영을 위해 실제 아프리카로 떠났는데 촬영을 하기로 한 아프리카 아이가 촬영팀이 도착하기 한 시간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현장에 도착해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하다가 기존의 촬영 콘티를 모두 바꿔서 진행하기로 했어요. 아이의 빈 침상을 영상에 담았고, 아프리카의 실상을 그대로 알리고자 했죠. 이런 현실 자체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Q. 말씀하신 바와 같이 공익광고는 상업광고와는 달리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제작자 입장에서 공익광고와 상업광고가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실 만드는 입장에서는 상업광고나 공익광고나 같아요. 상품을 사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것과 누군가를 돕도록 혹은 내 생활습관을 바꾸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본질은 같기 때문에 차이가 없어요. 개발 과정에 차이가 있죠. 저희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회의를 들어갔더니 CD가 3명 앉아 있고, 감독이 4명 앉아 있더라 하는. (웃음) 이게 무슨 뜻이냐면 상업 광고주분들은 본인들이 광고를 만든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그런 욕심은 좋지만, 우리를 지시에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공익광고 광고주분들은 우리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우리가 하려는 것을 믿고 맡겨주는 편이에요.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고 존중해 주죠. 그러다 보니 공익광고를 만드는 작업이 좀 더 신이 나고, 크리에이티브가 열려있어 좋은 광고가 많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Q. 환경부의 ‘I’M YOUR FATHER’나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업이 미래다’ 등 ECD님이 만든 공익광고는 기존 공익광고의 틀을 깼다는 평가를 많이 받습니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공익광고가 나온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공익광고가 재미없었던 이유는 정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정부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정해주고 우리에게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방법을 열어두면 좀 더 재미있는 것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 환경부나 농림축산식품부 캠페인을 진행했을 때, 광고주분들이 저희 PT를 보고 많이 당황하셨어요. 기존의 다른 광고 대행사가 접근했던 방식과 달랐으니까요. 공익광고라고 해도 일반 상업광고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PT할 때부터 광고주가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는 광고는 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죠. 바꾸지 않으면 재미없는 공익광고에서 벗어날 수 없을테니까요. 저희 입장에서는 늘 똑같이 일했을 뿐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소비자는 더 새롭고 신선하게 봐주신 것 같아요.

Q. 진행하셨던 공익광고에 대한 실제 반응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댓글이나 코멘트가 있었나요?

환경부 캠페인을 했을 때는 ‘이 광고의 가장 큰 반전은 맨 마지막에 나오는 환경부.’라는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농림축산식품부 캠페인에서는 ‘드디어 정부가 일을 하네’였고요. (웃음) 광고주뿐 아니라, 실제 소비자들에게도 재미있고 친근하게 다가간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무척 의미 있게 느껴진 댓글이었어요.


 

Q. 24년 동안 광고 업계에 계시면서 많은 캠페인을 진행하셨을 텐데요, ECD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캠페인은 무엇인가요?

칸 국제 광고제 Cannes Creative Festival에서 상을 받기도 한 굿네이버스의 ‘러브 파킹 LOVE PARKING’ 캠페인이 기억에 남아요. 차를 타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매번 차를 어디에 두었는지 헷갈리잖아요? 그래서 주차한 곳 기둥에 적힌 숫자를 사진으로 찍어두는데 그것을 인사이트로 해서 그 기둥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 나이 등을 붙여 놓았어요. 차를 찾으려면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기억되게끔 만들었죠. 기둥 아래에는 기부 박스를 두고 카트를 쓰고 남은 100원을 그 박스에 넣을 수 있도록 했어요. 기부 박스가 동전으로 꽉 차게 되면 QR코드가 나오게 되는데 그것을 찍으면 정기 후원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링크도 걸어 두었고요. 주차 기둥 자체를 매체로 만든 사례여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아요.

Q. 개인적으로 ECD님이 좋아하거나 영감을 많이 받은 공익광고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영국의 노숙자를 위한 쉼터를 운영하는 후원 단체에서 만든 광고가 있어요. 2014 칸과 클리오 광고제에서 수상을 했던 ‘Fuck the Poor’라는 캠페인인데요. 이 캠페인은 실험 카메라를 그대로 담은 영상이에요. ‘Fuck the Poor’라는 문구를 목에 건 남자가 거리에서 “Fuck the Poor!”를 외치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그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적힌 전단을 나눠주죠. 길을 가던 사람들은 남자에게 항의하며 그 남자의 행동에 분노하고 격렬히 비난하는 반응들을 보였고, 그것을 그대로 영상에 담았어요. 그런데 컷이 바뀌자, 똑같은 남자가 똑같은 거리에서 ‘Help the Poor’ 라는 피켓을 들고 “Help the Poor!”를 외쳐요. 하지만 어떤 사람도 관심을 보이지 않죠. 그런 상반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상이에요. 사람들의 무관심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바이럴 필름이에요.

Q. 프로젝트를 진행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데 프로젝트마다 ‘따라가지 않는 법’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유행하는 화법이나 비주얼 초식들, 이미 검증된 방법들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원혜진스러움’. 기본적으로 광고인은 팔색조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매번 똑같은 스타일로 광고를 만든다면, 광고 보단 예술을 하는 것이 더 맞다고 봐요. 누가 봐도 그 사람이 만들었다고 단번에 알아채는 광고는 최대한 지양하려고 해요. 그렇지만 그 안에 분명히 자기 것은 있어야 해요. 매번 다르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 한 요소는 원혜진이 보이는 광고를 만들려고 노력하죠.

Q. 이번 봄 호 주제는 ‘인플루언서’입니다. 인플루언서란 상당히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ECD님이 생각하시는 인플루언서는 무엇인가요?

인플루언서란, 선택과 집중을 통해 파급력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이 쌓은 경험을 일반 유저들과 공유하죠.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확산되면서 팬층이 생기고 상상 이상의 파급력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Q. 인플루언서의 등장이 실제 광고 업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예전에는 대부분의 광고 모델은 둘로 이분화되어 있었어요. 빅 모델이거나 일반인 모델이거나. 최근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생겨나면서 한 부류의 모델이 더 생겨 났다고 볼 수 있어요. 인플루언서들은 그들의 지식이나 활동 자체에서 이미 신뢰도를 가지고 있는 모델들이기 때문에 잘만 찾아낸다면, 어렵지 않게 공감의 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광고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죠.

Q. 진행하셨던 프로젝트 중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캠페인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얼마전 광동제약에서 나온 ‘경옥고’라는 제품의 광고 캠페인을 만들었어요. 이 광고는 처음부터 인플루언서를 활용하려고 했던 캠페인이었어요. 경옥고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 제품이에요. 항상 단명한 조선 왕들에 비해 영조는 비교적 장수한 편이었는데, 영조가 경옥고를 매일 먹었다는 히스토리를 찾았죠. 그래서 푸드 칼럼니스트인 황교익 씨를 모델로 내세워 영조가 타락죽과 함께 경옥고를 먹었다는 역사적인 증언을 제품과 접목시켜 광고를 만들었어요. 황교익 씨의 경우, 유명한 스타는 아니지만 그분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팔로워들이 있고, 그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광고를 만들게 된 사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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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제는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죠. ECD님은 어떻게 처음 광고 일을 하게 되셨나요?

저는 광고를 한 살 때부터 했어요. (웃음) 그 시절, 럭키 금성에서 나온 장판이 있었어요. 그 장판 광고에서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던 아이가 저예요. 그리고 10살때 드봉 비누 모델도 했었고요. (웃음) 저희 아버지가 광고를 하셨던 분이어서 저를 저렴한 광고 모델로 활용하셨던 거죠. 그렇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광고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광고를 하겠다고 하자 아버지의 반대가 심하셨어요. 힘든 직업이란 이유로요. 지금은 여자 광고인들이 굉장히 많지만 제가 시작하던 때만 해도 대부분 결혼과 함께 못 버티고 관두던 시절이었거든요.

Q. 지금은 무척 자랑스러워 하실 것 같은데요?

그러실까요? 다시 여쭤봐도 반대하실 것 같아요. (웃음)

Q. 광고하기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같은 연배의 친구들과 각자 필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저와는 너무 다른 고민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들은 계속 같은 일을 하는 것에 지쳐가는데 비해, 저는 계속 새로운 것을 하느라 지쳐간다는 점에서요. 광고란 늘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니까 질릴 수가 없거든요.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지치는게 나은 걸까, 새로운 것을 찾아 내느라 지치는게 나은 걸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저는 후자더라고요. (웃음) 제 딸이 고2인데 제가 광고하는 걸 좋게 봤는지 본인도 광고를 하겠다고 해요. 최근에는 딸 때문에도 이 일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Q. ECD님을 닮았다면 잘할 것 같은데요? (웃음)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뭘 하며 시간을 보내시나요?

이건 저희 팀원들 말고는 이야기하지 않은 취미인데, 사실 광고를 하기 전에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아! 안되는 거구나’ 알았죠. 그래서 작사를 했었어요. 망했지만 제 작사로 음반도 나왔었어요. (웃음) 그게 계속 이어져 취미가 됐네요. 작곡할 능력까지는 안되고 곡없이 가사를 쓸 수는 없어서 기존에 있는 곡으로 가사만 바꿔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옥상달빛이나 요조의 음악 같은 서정적인 멜로디를 좋아해요. 더 늦기 전에 그 동안 쓴 가사를 모아 앨범을 내고 싶어요. 아직 작곡가와 투자자를 못찾았지만요. (웃음)

Q. 보통 광고인이라고 하면,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ECD님만의 방법이 있다면요?

크리에이티브하게 깨어 있는데 도움을 주는 건, 잡지인 것 같아요. 깊고 좁은 것보다 얕고 넓은게 좋아서 잡지 보는 걸 좋아해요. 잡지 한 권에는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들이 모두 들어 있잖아요. 여러가지 잡다한 콘텐츠 속을 헤엄치고 다니면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해 나가는게 재미있어요. 실제 ‘지큐’0 ‘엘르’, 같은 매거진부터 주부, 인테리어 잡지까지 편식 없이 봅니다.


 

Q. 벌써 올해의 4분의 1이 지났습니다. 올해 개인적인 목표와 계획이 있으신가요?

2001년과 2011년에 칸 국제 광고제에서 상을 받았어요. 골드부터 레드카펫을 밟는데 아직은 실버까지 밖엔 못 받았어요. 그래서 개인적인 목표는 내년에 그랑프리를 받고 레드카펫을 밟는 겁니다. 또 하나는 딸이 내년에 고3이라, 올해가 엄마와 딸로서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마지막 해라는 생각이 들어요. 딸이 대학생이 되면 그땐 여자 대 여자로 가는 여행일 것 같거든요. 마침 올해가 안식년이기도 해서 딸과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요. 팀원들에게는 떠나기 전날 이야기할 예정이에요.

Q. ECD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CD의 기준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가 있어요. 먼저 광고란 업종은 정해진 규칙과 방식이 있는게 아니라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해야 하는 작업이에요.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걸 잊지 않는 CD가 좋은 CD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은 팀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CD. 좋은 광고는 좋은 분위기 속에서 나오거든요. 팀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믿는 것도 중요해요.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에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책임감 있는 CD. 모두가 나가떨어져도 CD는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들이 제가 생각하는 좋은 CD의 기준이에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광고란 ECD 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3년 정도 사귄 애인? (웃음) 보통 연인 관계가 1-2년은 아름답고 꿈같은데, 3년 정도 되면 슬슬 단점도 보이고 싸우기도 하잖아요. 헤어졌다가 또 보고 싶어서 다시 만나고… 제게 있어서 광고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쉽게 말하자면 애증이죠. (웃음) 미우면서도 사랑하는.


 

Q&A

원혜진ECD팀의 팀원들이 그녀에게 직접 묻다

1.

체력의 여왕, CD님!

특별히 챙겨드시는 게 있나요?

타고난 체력은 아니라 관리를 많이 합니다. 운동이 아니라 먹는 것으로요. 양파즙, 청국장 환, 아마씨, 견과류에 두유 갈아 하루 한 잔 마시기, 아사히베리, 아로니아 등등 엄청 먹습니다.

2.

21층 ‘체력솔져’라고 꼽히시는데

최대 몇일까지 깨어 계실 수 있나요?

3일? (웃음) 제가 한가지 타고난 것이 있다면 어디서든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어디서든 한 시간 정 도 머리만 붙이고 나면 금방 회복이 되거든요.

3.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수틀리거나 기획이 맘에 안 들면 펜을 놓고 나가버리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런데 경험 상 그렇게 됐을 때 일이 좋게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웃으면서 진행하다보면 일이 다시 풀리고 전환되더라고요. 경험에 의한 거라 항상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했을 때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고요.

4. 

사막을 건너는데 관문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술, 일, 담배, 드라마)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순서로 버리실 건가요?

제일 먼저 버릴 것은 일이고 그 다음이 담배. 사실 술과 드라마 중에서 고민을 했는데 먼 길 가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가야 덜 심심하지 않을까요? (웃음) 그래서 일> 담배>술>드라마 순이 되겠네요!

5.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ECD님의

인생 드라마는 무엇인가요?

좀 지나긴 했지만 ‘디어 마이 프렌즈’. 세세한 디테일과 연기 고수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참 좋더라고요. 하지만 드라마를 마냥 편하게 보지는 않아요. 미장센에 집중한다든지, 스타일리스트나 아트 디렉터를 궁금해한다든지 하죠. 그래서 그쪽 사람들과 협력을 하거나 좋았던 요소들을 광고에 가져오려는 시도를 해보기도 하고요.


 

CD’S ESSAY

Writer. 원혜진 Won, Hye-Jin 이그제큐티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원혜진ECD팀

 

그냥 선수 말고 순수한 선수

무언가를 싫어하는 감정이 싫어, 싫어하는 것이 별로 없다. 좋아할 점을 찾아 좋아해 주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지 않나? 라는 생각 때문에. 그 와중에 진심으로 싫어하는 말 두 가지가 있다. “지금 예술해?” 라는 말과 “선수끼리 왜 이래”라는 말이다. 그 말에서 풍겨져 나오는 닳고 닳은 냄새가 나는 싫다. 광고를 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이런 주문을 받게 된다. “이번 광고는 브랜딩 필요 없고요. 세일즈포커스 해주세요. 돌아가지 말고.”

 

1차 안이 들어가면 광고주로부터 이런 반응이 온다. “저희랑 아직 영점 조절이 안 된 것 같네요.” 2차 안이 들어가면 영락없이 이런 피드백이 날아온다. “이거 하나 킵하고 그 방향에서 안을 더 봅시다.” 3차 안이 들어가면 2개를 킵하고, 4차 안이 들어가면 “시간을 다 까먹었으니 이번 주에 한 번 더 보죠.” 이렇게 마무리가 되면 그나마 다행인 거다. 거기서 한 발만 더 가면, CD는 말귀를 못 알아먹는 사람이 되어 나온다. 지금과 초년 때가 다른 것이 있다면, 촉으로 거기까지 가기 전에 안다는 거다. 이쯤에서 스스로 쉬어가는 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짜로 하고 싶은 것 다 내려놓고, 눈에 띄고 싶은 욕심 다 벗어놓고, 쉬어가는 페이지 같은 광고를 만들어다 준다. ‘옛다, 드십시오.’라는 심정으로. 말귀 못 알아먹는 CD가 되는 것보다는 존재감 없는 CD가 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경기에도 쉬어가는 타임은 있다. 그런데 그건 죽도록 뛰고 난 다음이어야 한다. 뛰기도 전에 쉰다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내가 써놓은 광고 페이지들을 계속해서 들춰 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추억을 들추거나 스스로 대견해하며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혹시 쉬어가는 페이지들로 꽉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두려워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매 순간 미친 척하는 용기를 내어야 하고, 알고도 못 알아먹는 척하며 가보는 뻔뻔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미친 척할 수 있을까? 나는 어디까지 뻔뻔해질 수 있을까?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거금을 주고 마놀로 블라닉 Manolo Blahnik을 샀다고 치자, 가격 자체가 비싼 게 아니다. 신지 않고 모셔만 둔다면 그게 비싼 거다. 아까운 일이다. 광고주가 광고비를 아까워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비싼 대행사에 와서 기획이 광고주 생각을 제작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카피라이터가 그 생각을 잘 정리해 주고, 아트디렉터가 어떻게 하면 제품이 눈에 띌까만을 궁리한다면 그때가 바로 광고비를 아까워해야 할 때다. 광고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면, 광고비 환불을 요구해도 할 말 없는 거다. 요즘 광고는 선배들의 광고에 비해 훨씬 더 그 휘발성이 강해졌다. 트렌드를 쫓기 때문에? 아니다. 트렌디한 광고들에 누명을 씌우지 말아야 한다. 그건 광고다운 광고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광고다운 광고를 만들려는 노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미친 척과 못 알아먹은 척. 나는 이 두 가지를 ‘광고의 순수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순수하지 못했던 많은 순간들을 떠올리며, 지금도 여전히 순수하고 싶다. 가끔 말귀 못 알아먹는 CD가 되면 좀 어때.

 


 

나에게 캐리커쳐를 그려준 사람들은 한결같이 머리띠부터 그려놓고 얼굴을 그렸다. “세수하다 나왔니?”라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왜 이래? 이건 원더우먼의 머리띠 같은 거야”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다 보니, 진짜로 머리띠를 하지 않은 날엔 기운이 없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탈모 때문에 이 머리띠를 벗어야만 하는 날이 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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