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A Heart
이노시안의 마음을 사로잡은 콘텐츠
터치 한 번으로 다음 영상, 다음 글로 넘어가는 세상. 오늘 하루 어떤 것을 소비했는지도 모르게 숨 가쁘게 흘러가는 흐름 안에서 두 번 세 번 더 보고 싶게 만드는 콘텐츠는 무엇일까. 짧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을 이곳에 모아보았다.
줏대와 갈대 사이
김나연 | 데이터커뮤니케이션팀
내게 숏폼은 숏컷(Shortcut)이다. 한때 아끼던 생각들, 소중하게 여기던 가치들을 상기시켜 주는 가장 신속한 장치 말이다. 터치 한 번으로 다음 콘텐츠로 넘어가는 세상, 터치 한 번으로 생각도 파편화되는 세상, 콘텐츠가 과하게 넘치는 세상에서 나는 이곳저곳으로 생각이 곧잘 요동치는 편이다. 오래된 통념에 공감하다가도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가벼운 콘텐츠에 동화되어 돌연 낡은 관습 취급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꼬박꼬박 쌓이는 적금에 방방 뛰다가도, 돈은 굴려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고 나면 괜스레 통장 잔고를 돌아보게 된다. 그럴 때면 줏대가 흐려지는 기분이 든다. 살아가며 알게 되는 명쾌한 사실들이나 오랫동안 소중하다고 여겨오던 가치들이 있다. 예컨대 몇 번의 시행착오로 경험적으로 알게 된 숨겨진 진리 같은 것들. 나의 모든 세포 하나 하나가 환영하여, 모든 좋은 생각들을 지탱하는 내면의 힘 같은 것. 그러나 유튜브 혹은 넷플릭스로 일상(잠들기 전, 화장실 갈 때, 이동할 때, 걸어 다닐 때, 숨 쉴 때 등)이 채워지면서, 대기열에 꽉꽉 들어찬 콘텐츠 사이로 생각들이 흘러가 버리기 시작했다. 하이브리드 근무 제도에 대한 생각은 어느 유명 유튜버의 의견으로 채워지고, 연애관은 그 시기 가장 유행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았다.
어찌 되었든 콘텐츠 과포화 세상에 맞서 코어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몇 가지 결론을 내었다. 다양한 형태로 나라는 사람을 아카이빙할 것, 더 이상 긴 콘텐츠를 소비하려 하지 않는 패턴을 이해할 것. 틈틈이 노션으로 메모를 하고, 5분 일기를 썼다. 그리고 아끼는 생각들, 소중하게 여겼으면 하는 가치를 말하는 영상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숏폼 영상들은 내가 좋아했던 생각으로 돌아가는 나만의 숏컷이다. 편집 기술이 매력적일수록, 내용이 단순 명쾌할수록 영상을 클릭하는 횟수는 늘어났다. 음미하는 시간은 짧을지언정 임팩트만큼은 강렬했다. 신인류 직장인 유튜버 무빙워터의 ‘멋있게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영상은 나의 코어를 지탱하는 숏폼 중 하나이다. 시대가 정의하는 수많은 멋의 정의 아래, 자칭 육아휴직 전문가가 말하는 ‘꾸준함의 멋’을 음미해 보시길 바란다.
오늘은 내 미래의 알사탕
정서형 | 메타버스랩
유난히 마음이 지치고 무기력했던 밤, 집 안 불을 모두 끄고 소파에 누워 유튜브 쇼츠를 보고 있었다. 그 때 몇 초의 시간 동안 흘러나온 음악의 가사가 마음속을 깊게 파고들었다. 빠르게 지나가 버린 영상에 아쉬움이 느껴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 들어가 동일한 곡을 찾아 들었다. 조금 전에 들었던 감성적인 노래와는 완전히 다르게 원곡은 굉장히 신나는 일렉트로닉 팝이었다. 원곡도 그만의 매력이 있었지만, 조금 전 나의 마음을 울리던 그 짧은 순간을 다시 찾기 위해 해당 쇼츠의 풀 영상을 찾아 들어갔다. Matt Hansen이라는 음악 유튜버가 Avicii의 ‘The Nights’라는 곡을 커버한 영상이었는데 광활한 들판 위에서 절규하듯 소리치는 목소리가 그 순간의 내 세상을 모두 에워싼 듯 전율이 왔다. “절대 이 시간들을 새어 나가게 하지 말아라. 나이가 들면 젊은 추억 속에 살아갈 테니. 언젠가 넌 이 세상을 떠날 거야. 그러니 기억할 만한 삶을 살거라”라는 노래 가사. 그 영상 속 가사가 그날의 나에게 살짝 꾸지람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생 다시 오지 않는 오늘을 그저 시간을 보내듯 지나 보낸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댁에 놀러 갈 때면, 할머니가 즐거워하시며 했던 이야기를 또 해주시고 또 해주시길 반복한다. 어릴 적엔 그런 할머니를 보며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이제는 할머니 이야기를 들을 때면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더라도 할머니 눈동자 속에서 할머니의 어린 시절이 비쳐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내가 만난 할머니의 눈동자 속 주인공은 지금의 나와 많이 닮아 있다. 내가 살아가는 오늘은, 미래의 내가 행복해지고 싶을 때마다 주머니에서 꺼내 먹는 알사탕 같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매일을 소중한 순간으로 자각하며 살아가고 싶다. 어떤 날에는 좋은 조언, 좋은 책 구절보다도 겨우 10초의 짧은 순간이 나의 마음속을 더 오래 파고들 때가 있다.
지라시와 선을 긋다, 스페셜티 숏폼 콘텐츠
오광석 | 캠페인플래너
항상 크고 긴 것이 우세한 인간 사회에서 이처럼 짧은 존재가 주목받은 적이 있던가. 적어도 오늘날의 디지털 세상에서는 짧고 빠른 콘텐츠가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유튜브를 1배속으로 보면 좀이 쑤시고, 그마저도 너무 길어서 틱톡, 숏츠, 릴스가 초호황을 이루는 지금이 바로 바쁘다 바빠 현대 인터넷 사회.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굳이 알 필요 없지만 시야에서 치고 빠지는 너무 많은 정보가 이 시각에도 양산되고 있으며, 이 현상을 두고 모 마케터는 “머릿속에 쓰레기를 욱여넣는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런 지라시와 차별화를 두는 콘텐츠가 숏폼의 정수로 인정받아 나날이 팔로워가 늘어가고 있기에, 내가 사랑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몇몇 콘텐츠를 소개한다.
먼저 유튜브 ‘메타코미디클럽’이다. 일요일 밤마다 개콘을 보며 웃다가 잠들던 시절이 있었다. 전체 프로그램은 한 시간 남짓이지만 코너별로 쪼개면 그게 바로 숏폼의 시초가 아니었을까? 시간이 흐른 지금은 개그맨들이 유튜브라는 새로운 바다에서 활약하며 코미디 부활을 시도한다. 특히 국내 최초 코미디 레이블을 표방하는 메타코미디에서 운영하는 ‘메타코미디클럽’에 눈길이 간다. 자사 소속 개그맨들을 한데 모은 스탠드업 코미디 콘텐츠로 원본은 30분 내외지만, 이를 재가공하여 숏츠와 릴스로 활발히 업로드한다. 재미는 그야말로 역대급. 웃을 일 없는 요즘 단 몇십초 만에 빵빵 터뜨리는 웃음 부자 양성 콘텐츠다. 피식대학, 빵송국, 숏박스, 면상들 등의 검증된 개그 크루라 출연자들 서로도 웃기는데 여러분들이 웃지 못할 리가. 수위가 다소 높긴(?) 하지만, 사는 게 재미없다면 한번 봐 보는 걸 추천한다.
그다음엔 인스타그램 ‘@jominam_’으로 활동하는 일명 ‘조미남( 朝.美.男)’. ‘조선 건축에 미친 남자’라는 뜻이다. 나는 그를 ‘언더그라운드 유현준’이라 부르고 싶다. 유현준 교수가 건축과 도시 그리고 인간의 삶으로 확장해서 술술 풀어낸다면, 조미남은 절제된 사진과 글로 건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주로 건물의 외관 패턴 사진과 여기에 관한 설명 혹은 소회를 곁들이는데, 랜드마크를 30초 만에 보여주는 그의 콘텐츠들은 가히 건축계의 숏폼이라 할 만하다. 혹자는 심오한 건축의 세계를 어떻게 사진 한두 장(가끔 여러 장)으로 응축하겠냐고 물어보겠지만, 나 같은 문외한에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