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My Pacemaker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진승
우리는 때때로 일상이라는 트랙 위에서 페이스메이커를 기다린다. 사방으로 비틀거리는 불안한 발걸음을 잡아주고 삶의 적절한 속도를 가르쳐줄 누군가를 바라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진승은 그런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그는 유튜브 ‘닥터프렌즈’뿐 아니라 책과 라디오, 방송 등 장르를 넘나들며 정신과의 문턱을 낮춰왔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이따금 튀어나오는 자신의 모난 부분도 이해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서 부드럽고 강한 마음이 엿보였다.
Interview
Q. 만나뵙게 되어 반가워요. 먼저 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진승입니다. 2018년부터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를 친구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Q. 닥터프렌즈의 구독자 수가 어마어마해요. 물론 저도 그중 하나고요.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어요?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건데 이렇게까지 구독자가 많아질 줄은 몰랐어요(웃음). 친구인 이비인후과 이낙준 선생, 내과 우창윤 선생이 먼저 제안을 해줘서 함께하게 됐죠. 저희 셋 다 주변에서 친구나 가족들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해?”하고 질문할 때가 많아요. 편하게 물어보니까 저도 편안하게 대답하고요. 구독자분들에게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병원 정보나 의학 상식 등을 친구처럼 얘기해 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어요.
Q. ‘닥터프렌즈’라는 채널 이름도 세 분이 함께 지은 건가요?
후보가 여러 개 있었어요. 재미있는 의사의 ‘펀닥’이나 핫한 의사라는 의미로 ‘핫닥’ 같은 것들이요(웃음). 우리가 메신저가 된다면,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자연스러운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보통 TV에 나오는 대학병원 교수님들은 친근하기보단 되게 저명한 학자 느낌이잖아요. 구독자와도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서 만들었어요.
Q. 후보 중에서 가장 좋은 이름 같네요(웃음). 닥터프렌즈는 콘텐츠의 소재가 다양하다는 게 특징이죠.
유튜브는 보통 재미있으니까 보는 거잖아요. 아무리 저희가 좋은 얘기를 하더라도 누군가 봐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친숙한 소재들을 다양하게 활용했죠.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를 분석하거나, 의학 게임을 직접 해보고 토크쇼처럼 관련 역사를 소개하는 것처럼요. 메시지도 거창하게 담기보단 한 가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Q.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전문성이나 신뢰도를 잃지 않기 위해 신경 쓰는 부분도 있을 텐데요.
처음에는 주변에서 우려를 많이 했어요. 저희 의견이 잘못 전달되면 누군가에게 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문의와의 상담을 꼭 추천하고, 콘텐츠에 관해서는 크로스 체킹도 해요. 무엇보다 가장 강조하는 건 우리는 평범한 의사고 보통 사람이라는 거예요. 우리보다 훌륭한 선후배들이 많으니 굳이 저희를 찾아 멀리서 오시지 말고 접근성이 좋은 병원에 가보라고 말씀드려요.
Q. 그런 세심함이 많은 애정을 받는 이유겠죠. 선생님은 정신과라는 전공을 어떤 이유로 선택하셨어요?
사실 의대에 들어갔을 땐 소아과를 선택하고 싶었어요. 제가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아픈 친구들을 많이 봐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있었죠. 그러던 와중에 정신과의 폐쇄 병동, 그러니까 보호 병동에 가보게 되었어요. 본과 3~4학년 때는 거의 1년 6개월간 수업 대신 병원의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실습하거든요.
Q. 그 공간이 어떻게 느껴졌을지 궁금해요.
문을 안에서 열어주는데, 처음에는 뭔가 무서웠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까 전혀 아니었죠. 10대 환자부터 60~70대 환자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우울증, 조현병, 조울증 등 증상도 다양한데 모두 저희를 반겨주셨거든요. 4주간 같이 얘기도 나누고 탁구도 치고 젠가도 하다 보니 우리와 다른 게 없다는 걸 느꼈죠. ‘그냥 감기 걸리듯 병에 걸려서 이런 증상들이 있구나’ 했어요. 환자분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드릴수록,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걸 보면서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Q.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이 보람 있게 느껴질 때는 언제예요?
정신 질환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그래서 함께 조금만 노력하면,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는 걸 경험할 수 있죠. 마음의 불안이나 트라우마 때문에 보통의 일상이 힘드셨던 분들이 취직한다든가 연애를 시작해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걸 보면 굉장히 기뻐요.
Q. 다른 전공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환자와 헤어질 때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럼요. 언젠가 치료를 종결하는 시점이 꼭 와요. 제가 이제 그만 오셔도 된다고 말하면 환자분들이 펑펑 우실 때가 있어요. 매일 뵙던 환자분이 “이제 안 와도 된대요!” 하면서 울면 병원 직원분들도 함께 훌쩍이시죠. 감동적이기도 하고 무척 기쁘기도 해요. 치료 종결의 짜릿함이라고 할까요(웃음)?
Q. 듣기만 해도 뿌듯하네요. 이번 호의 주제는 ‘자기유형화’예요. 선생님은 MBTI 검사 해보셨어요?
저는 ESFJ인데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그걸로 에너지를 얻고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여행 갈 때도 즉흥적인 것보다는 적어도 밥 먹을 곳 하나라도 정해놓는 걸 좋아해요. 할 일을 미루면 짐처럼 느껴져서 불안하고요. 분석 결과가 꽤 잘 맞는 것 같네요(웃음).
Q. 유형화 테스트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분석해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근에 어떤 여론조사를 봤는데, 과거에는 고민 상담을 친한 친구에게 했다면 요즘은 유튜브 등으로 해소한다는 대답이 많더라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경험하며 답을 얻기보단, 혼자서 쉽게 묻고 답하는 거죠. 개인주의적인 분위기뿐 아니라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을 것 같아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사회생활과 대인 관계의 폭이 위축되었잖아요.
Q. 이런 문화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시는지 궁금해요.
자신을 이해하고 성향을 분석해 보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에요. 다만 그 틀 안에 갇히다 보면 새로운 도전이 힘들어져요. 성격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경험, 만나는 사람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고 새롭게 드러나기도 하거든요.
Q. 조금 더 설명을 듣고 싶어요.
제가 영화 속 캐릭터의 심리를 분석해서 소개하는데요. 가끔 작가님이나 PD님이 본 적 없는 영화를 추천해주시면, ‘내 스타일은 아닌데…’ 하다가도 보고 나면 ‘나쁘지 않네?’를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런 기회 덕분에 나를 파악할 때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죠. 어쨌든 새로운 시도를 해야 내가 진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깨달을 수 있잖아요.
Q. 그렇게 낯선 것을 거듭하면서 나의 성향이나 선호를 파악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음, 정신 건강의 관점에서 말해볼까요? 사람은 자신의 디폴트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야 내가 좀 아플 때, 이상할 때를 눈치챌 수 있어요. 증상이 없던 분들이 갑자기 기침이나 콧물이 나면 병원에 가듯, 디폴트를 알아야 변화 값도 알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분이 정말 많아요. 진료실에서 본인의 성향이나 성격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잘 못 하세요.
Q. 맞아요. 저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편안하거나 불편한지, 어떤 일을 할 때 즐겁고 무엇을 하면서 쉬어야 에너지가 충전되는지, 나의 일상 전반에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해요. 그게 바탕이 되어야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할 수도 있을 거고요.
Q. 간단한 테스트로 자신을 유형화하는 것보다 끊임없이 알아 보는 태도가 필요하겠네요.
맞아요. 성격은 여러 사람과 부딪혀야 알 수 있어요. 누군가가 나를, 내가 저 사람을 파악하는 건 테스트를 하는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평생 고민하고 알아가야 하는 건데, 테스트에만 의존하다 보면 자신을 너무 단순하게 바라볼 위험이 있어요.
Q. 최근에는 자신의 심리 상태나 정신 건강에도 관심이 높아졌어요. 관련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정말 좋죠. 콘텐츠를 보고 비슷한 일이 생기면 병원을 가볼까, 상담 받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잖아요. 다만 방송은 상황을 전부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보이는 사례만 가지고 ‘내가 100% 저런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같은 트라우마를 겪었어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거든요. 섣부른 판단보다 증상을 파악하고 내원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Q. 자가 진단 테스트로 정신 건강을 가늠해 보는 분들도 있죠.
실제로도 떠돌아다니는 테스트를 해보고 왔다든가, 유튜브나 방송 콘텐츠를 보고 왔다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요. 물론 그렇게 찾아온 분들이 전부 환자는 아니고, 짐작과는 다른 질환을 앓고 계신 분들도 있지만요.
Q. 정신 질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과거와 달리, 조금씩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걸까요?
건강보험공단의 공식 통계 자료를 보면 20~30대의 정신과 방문율이 매년 30%씩 증가한대요. 젊은 세대가 힘든 상황이라는 뜻도 맞지만, 증상을 수면 위로 드러내서 병원에 찾아온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에서 서로 정신과를 추천한다고도 하더라고요. 최근에는 친구끼리 함께 병원에 오는 경우도 있어서 변화를 더욱 체감했어요.
Q. 선생님은 작년에 우울증과 관련된 책을 펴내셨죠. 이름은 《오늘도 우울증을 검색한 나에게》라고요.
제목처럼 그런 분들을 위해 쓴 책이에요. 마음에 이상을 느꼈다면 병원에 와보시면 좋을 텐데, 검색만 하시더라고요. 우울증에 좋다는 건강식품을 복용하거나, 책이나 영화 등으로 해결하려는 거죠. 우울증에 대해 잘 모르고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하는 분들을 위해 이게 어떤 질환이고 어떤 치료들이 있는지, 또 왜 생기는지를 좀 간단히 정리해 봤어요.
Q. 이 책이 큰 사랑을 받았다는 건 우울증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할 텐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조금 안타까웠어요. 병원이나 전문가 상담을 가벼운 마음으로 하셨으면 좋겠어요. 처음 가본 미용실에서 해준 머리가 마음 안 든다고 평생 혼자 자르지 않잖아요. 근처 병원과 잘 안 맞는다 싶으면 다른 곳도 가보시길 바라요.
Q. 덧붙여 정신 건강을 지키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무엇보다 현재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 해요. 병원에 오신 환자분들께 “어떻게 지내셨어요?” 하고 물어보면 그냥 있었던 일만 쭉 말씀하세요. 부장에게 혼났다거나 남자친구와 싸웠다면서요. 하지만 전 어떤 감정으로 한 주를 보냈는지가 궁금한 거거든요. 감정을 여쭤보면 보통이다, 평범했다, 똑같았다 이렇게들 대답하세요.
Q. 마음을 신경 쓰지 못하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감정을 더욱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 것 같아요.
그렇죠. 하지만 보통이라는 감정은 없어요. 일주일 내내 감정이 똑같을 수도 없고요. 마음을 너무 억누르려 하지 말고, 감정의 흐름을 잘 따라가야지만 내가 병원에 가야 할지 아닌지를 알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한순간에 터지는 문제들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울 거예요. 우울하면 펑펑 울고, 쉬고 싶을 땐 푹 쉬고, 감정의 해소가 필요할 땐 해소하세요.
Q. 오늘의 대화가 마음에 깊게 남아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앞으로는 친구나 가족끼리도 서로 편하게 병원을 추천하고, 정신과 질환으로 병가나 휴직을 내는 일도 자연스러워지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정신 질환에 걸린 게 아주 특별하고 이상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치료가 가능하다는 걸 알려드릴게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요.
“증상이 없던 분들이 갑자기 기침이나 콧물이 나면 병원에 가듯, 디폴트를 알아야 변화 값도 알 수 있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