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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존재 자체로 영감이 된다면 – 박승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tended Field

Creator Manual

존재 자체로 영감이 된다면

존재 자체로 영감이 된다면 – 박승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미지

박승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누군가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은 그의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로움 없이 정체된 곳에서 좋은 아이디어와 삶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일상의 저변을 넓혀가는 일은 사물을 색다르게 보게 하고 이미 알던 것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게 한다.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을 크리에이티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하는 박승헌 CD의 말을 통해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것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Interview

Who

Q. 안녕하세요, 박승헌 CD님. 어떻게 광고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부터 여쭤보고 싶어요. 카피라이터로 일하시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신 뒤에는 작업 방식이나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고요.

어렸을 때 TV에서 흘러나오던 한 가전회사의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광고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엄마가 냉장고 살 때 저 회사 거 사야 한다고 막 조르고 그랬어요. 나중에 그런 말이 카피고 그걸 쓰는 사람이 카피라이터라는 걸 알게 됐는데,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지갑을 열게 하는 일이 굉장히 멋지게 느껴졌어요. 게다가 영어니까 뭔가 있어 보여서 장래 희망에 카피라이터라고 적었는데, 결국엔 꿈을 이루게 됐네요(웃음). 카피라이터일 때는 카피로 승부를 보려 했고, CD로서는 캠페인의 완성도를 본다는 게 가장 큰 차이겠죠. 광고는 시간의 미학으로 만드는 종합예술이잖아요. 초 단위로 쪼개서 전달할 메시지가 있고, 브랜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그림과 음악, 자막, 효과 등이 들어가야 효과적일지 고민하게 되죠. 카피도 ‘그녀는 맛있게 먹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같은 문어체보다 ‘그녀는 맛있게, 앙~’처럼 실제 말하듯이 쉽게, 귀에 걸리게 써서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기려고 하고요. 하지만 카피든, 아트든 직군의 문제가 아니라 크리에이터가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는 언어의 형상화인 거 같아요.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잖아요. 그게 개념이 되고 사상이 되고 그걸 텍스트화하느냐, 시각화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서 근본적으로 언어적인 상상력이 풍부해야 한다고 봐요. 첨단의 AI도 결국은 내가 어떤 말을 입력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의 차이를 만드니까요.

How

Q. 캠페인이 주어지면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루틴이나 프로젝트를 잘 이끄는 CD님만의 팁을 알고 싶어요.

보통은 기획팀에서 광고주가 준 과제를 정리하고 해석한 OT 브리프를 제작팀에 주는데, 저는 광고주가 준 숙제를 가감없이 보려고 해요. 행간에 숨겨진 맥락이라는 게 있고, 강조되지 않은 부분 사이에 간과한 내용이 보일 때가 많거든요. ‘가격만 알려라’, ‘브랜드를 젊게 만들어라’처럼 원하는 게 너무도 명확한 때도 있고, 어떤 경우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경우도 있어요. OT 브리프는 보통 시장 상황, 경쟁사 및 타깃 분석과 나름의 해석을 더한 대외적인 문서라서 중요한 문제가 많이 부각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50년 동안 다져진 기술력으로 첨단 미래를 여는 기업으로 헤리티지 캠페인을 해주세요.”라는 경쟁 PT 과제를 받으면, 이미 ‘50년 헤리티지’에 사로잡혀서 광고주가 준 역사 자료만 보게 되는데요, 전 그럴 때 광고주 자료들로 카피를 넣어서 헤리티지 안을 만들고 다시 생각을 해봐요. ‘50년의 축적된 기술의 원조라는 이미지와 함께 첨단 미래 산업의 선도자로 인식되고 싶은 거 아닐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하는 식이죠. 그렇다면 역사성은 RTB(Reason To Believe) 정도고, 메인 메시지는 아닐 테니, 헤리티지가 아닌 ‘오리지널이나 미래’를 키워드로 캠페인을 하자고 제안을 해보는 거예요. 노래까지 만들어서 힙한 톤으로요. 경쟁 PT의 승자는 숙제를 잘 한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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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Q. 지금까지 맡으신 다양한 분야의 캠페인을 보면서 예능처럼 톡톡 튀는 자막, 브랜드와 제품명을 각인 시키는 노래처럼 유쾌함과 발랄함이 CD님만의 개성이자 스타일이라 느꼈어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저는 젊고 발랄하고, 톡톡 튀는 캐릭터로 알려진 것 같아요(웃음). ‘초특가 야놀자’, 손흥민을 춤추게 했던 ‘슈퍼콘 슈퍼손’, ‘엘리하이’ 같은 Song 광고 캠페인을 많이 기억해주셔서 〈박Song헌〉이라고 불리기도 해요. 한때 심의 문제로 CM송을 쓸 수 없었던 제약 광고도 ‘감기 시작했다 판콜 마셨다’를 단순한 BGM에 음가를 태운 멘트로 음악처럼 처리하기도 했고요. 최근에 했던 ‘농심 포테토칩 먹태청양마요맛’은 CM송과 최종 경합을 벌이다가 결국 ‘나는솔로 데프콘’안으로 찍었지만요. Song 광고의 최대 장점은 제한된 시간 내에 광고주의 일방적인 메시지를 소비자가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각인시키는 효과가 크다는 점과 흥얼거리면서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를 자연스럽게 올려주는 점이겠죠. ‘광고는 아무도 귀 기울여 보지 않는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한 번이라도 스킵 없이 보게 할지, 딴짓하다가 귀라도 기울이게 할지 고민하다가 적절한 침투 방법으로 노래라는 무기를 이용하게 된 거예요. 사실 제 작품 중에는 Song이 아닌 게 더 많은데요, 자동차 외에도 통신, 금융, 카드, 패션, 뷰티, 식품, 제약, 플랫폼, 교육 등등 안 해 본 품목이 거의 없지만, 이노션 CD 중에서 먹을 거는 제가 제일 많이 한 거 같아요. 치킨, 피자, 라면,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 소주, 맥주, 유제품, 건강기능식품 등 몸에 덜 좋은 것부터 좋은 것까지 다했네요.

When

Q.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에는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나 경험이 있는 것 같아요. CD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새로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무거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몇 해 전에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계실 땐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나중으로 미뤘던 함께할 시간이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뒤늦은 후회와 슬픔이 컸죠. 결과물이라는 끝을 향해 ‘지금과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다음과 앞’만 본 건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대부분의 끝은 허무함이란 감정이 남는데 (물론 보람차고 영광된 결과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끝나면 허무함이 더 크잖아요) 그 중요한 과정을 치열함이란 미명 아래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산 거죠. 광고업은 사업자 등록증에 서비스업으로 되어있어요. 여느 서비스업이 그렇듯, 저희도 클라이언트와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에게 우리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종의 감정과 지식노동, 육체노동까지 하고 있잖아요. 고민의 시간은 필요하지만,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일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힘들게 만든 작품은 예술이 되어 길이 남을 수 있겠지만, 광고는 애써 찾아보는 예술작품은 아니니까 상업적인 콘텐츠답게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와 욕구, 생활이 편리해질 거 같은 행복감을 충족시켜 줘야 한다고 보거든요. 만든 사람이 즐거워야 보는 사람도 즐거울 거라는 거죠. 그렇게 즐겁게 일하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공간에서 얻는 체험을 구현하는 일과 놀면서 일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업종은 계획한 게 몇 가지 있지만… 아무튼 회사 일로도 개인적으로도 언젠가 해보고 싶은 분야입니다.

Where

Q.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지라도 계속해서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해야 하는 일이에요. CD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아이디어란 무엇일까요? 또 그것을 찾아내는 방법등 광고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다면요?

먼저 몰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품의 특성이나 과제의 목표는 분명히 파악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하나만 보면 하나만 생각나잖아요? 몰입이 끝났으면 딴짓을 많이 해야 해요. 화장품 광고를 준비할 때, 검색의 기준을 ‘뷰티’로만 하면 나오는 건 다 비슷하잖아요. 차라리 전혀 다른 영화를 보거나, 스포츠를 하거나, 아니면 화잘알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목욕탕 스킨만 쓰는 친구들과 술 마시고 그냥 노는 것도 좋아요. 내가 쓰는 언어는 제한적이지만 남들의 언어를 듣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깨워줄 때가 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불만을 가져라’, ‘토를 달아라’를 습관화하는 겁니다. 부정적이고 나쁜 의미로 들리겠지만, 부정은 달라질 기회를 만드는 거잖아요. ‘차가 아니다’ 하는 순간, 새로운 이동 경험의 공간이라는 가치가 생기고,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라고 하면 수면과학까지 생각한 잘 만든 제품이 되는 것처럼요. 침묵과 정적과 끄덕임만 있는 회의는 회의가 아니에요.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개진해야 회의죠. 도리도리도 하고 손도 번쩍 들고 칭찬도 해주고. 좋 은 아 이디어에 살도 붙이고, 빼주기도 해야 아이디어는 점점 살아나요. 수많은 토가 달리는 회의가 재미있어요. 물론, 대안 없는 비판과 딴지만 거는 건 절대 금지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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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

존재 자체로 영감이 된다면 – 박승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미지

쿠로와 산책

 

원체 얌전해서 잘 짖지도 않는 쿠로와 산책을 하면서 그날의 입력된 수많은 정보와 생각들을 머릿속 이쪽 서랍에 넣거나 저쪽 서랍에 넣거나 혹은 버리거나 하는 시간이 저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시간입니다. 온종일 앉아서 보고, 듣고, 쓰고, 말하다 보면 생각도 에너지도 방전되곤 하는데, 쿠로와 말없이 혼자 걷다 보면 비워지기도 하면서 무언가 채워지는 게 많더라고요. 게다가 세상 착한 눈망울로 오직 나만 바라보는 쿠로를 보고 있으면 “아, 사룟값이라도 벌려면 열심히 일해야지.” 하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요.


 

CREATOR’S WORKS


 

Creator’s Essay

신입사원 자기소개서의 타이틀을 이렇게 썼었다
내 이름도 기억시키고 늘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는
광고인이 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담아 박승헌 브랜드의 슬로건으로.

 

그러나 요즘 회의 때마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냐?”
“흠…전에 제안했던 안과 비슷한 거 같네…”

 

늘 something new를 요구하는 이 광고업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에 많은 프로젝트를 했다는 건 능숙한 일
처리를 보증해 주기도 하지만 가끔은 스스로의 검열이
많아진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기술도, 안목도 상향 평준화된 요즘 시대에
소위, Unique하게 Selling할 Point도
고만고만한 상품과 서비스를
얼마나 다르게,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새롭게 보이게 하는 것이고,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아무 관계 없던 것들을 서로 연결해 주거나
작게 보이던 걸 크게 보여주거나,
기존의 순서를 바꿔보거나,
말투를, 때깔을 달리해보거나 그리고 중요한
‘공감’이라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의 감정을
헤아리는 능력을 이용하는 수밖에…

언제나 새것 같은 헌

여기, 약간의 기지와 조금의 용기를 내어
관점을 살짝만 틀면,
적을 동지로 만들고, 모두가 공감하고,
나의 세계관마저 드넓어지는
마법 같은 시 한 편을 소개하며 뻔한 소리를 마무리하련다.

 

 

He drew a circle that shut me out-
Heretic, rebel, a thing to flout.
But love and I had the wit to win:
We drew a circle and took him In!

 

그는 원을 그려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나를 이단자, 반역자, 조롱거리로 몰며…
그러나 나에겐 사랑과 이겨낼 지혜가 있었지.
난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원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 Edwin Mark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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