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lace Where
We Love To Walk
종킴디자인스튜디오
김종완 소장
15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7년 전 자신의 이름을 건 스튜디오의 첫 작업인 ‘구호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를 시작으로 뛰어난 디테일과 새로움으로 주목받은 종킴디자인스튜디오의 김종완 소장. 공간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진심을 꼽는 그는 어떻게 일할까, 그에게 좋은 공간이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무형의 가치를 다루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 장례식’의 기획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알면 알수록 묻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크리에이터. 오래도록 산책하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 속을 함께 걸었다.
Interview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공간 설계를 하는 종킴디자인스튜디오의 김종완이에요. 종킴이라고도 불리고요.
Q. 최근 일본에 다녀오신 소식을 봤는데요, 여행지에서 어떤 공간을 가시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작업하시는 공간과 비슷한 곳들도 가시나요?
완전히 다른 데를 가요. 저는 분 단위로 맞춰서 계획적으로 사는데, 여행만큼은 계획을 안 짜고 가요. 물 흐르듯이 흐르다가 정처 없이 들어가거나, 현지인에게 물어볼 때도 많고요. 여행지에서는 공간감을 잃는 걸 좋아해요. 그곳만의 문화를 배우고 정취를 느끼려고 노력하고, 쇼핑을 하더라도 그 나라만의 브랜드로 사려고 해요. 제가 럭셔리 분야로 일을 시작하다, 외부에서 보면 제 취향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미팅 없는 날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옷도 많이 입고, 액세서리도 키티처럼 키치하고 귀여운 캐릭터가 많아요. 이중적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데,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작업한 ‘더 쿨리스트 호텔’이나 ‘XYZ SEOUL’처럼 젊고 색감도 화려한 걸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Q. 그간의 작업들을 보면 압도적이고 럭셔리한 느낌에서 화려한 색감과 키치한 디테일로 작업 스타일에 변화가 생긴 것 같았는데, 종완 님의 또 다른 면이었던 거네요.
아티스트와 산업 디자이너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있다고 봐요. 아티스트, 순수 미술을 하시는 분들은 내 돈으로 내 걸 표현하고 판매하고, 산업에 속한 분들은 남의 돈으로 그걸 표현하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브랜드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에요. 제 스타일보다는, 브랜드의 가치와 이미지를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낼지 다양하게 표현하고 고민하는 거죠. 앞서 말씀드린 더 쿨리스트 호텔은 타깃층부터 BI, CI, 유니폼, 음악, 운영 방식까지 제안을 드렸어요. 저희는 공간을 설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앞 단의 전략 작업을 많이 다뤄요. 설계와 시공을 하지 않고 전략서만 나가는 작업만 할 때도 있고요.
Q. 스스로 공간 ‘전략’ 디자이너라고 부르시는데요. 디자인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여 일을 준비하고 진행하시는 이유와 공간 디자인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지금은 대한민국, 특히 서울이 미술 쪽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에 있고, 바게트 빼고 다 이겼다고요. 음식, 뮤직비디오 할 것 없이 한국의 크리에이티브는 세계 어느 곳보다 발달했고, 요즘은 뭐가 예쁜지를 알고 태어난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만 봐도 배울 점이 정말 많아요. 이제 크리에이티브를 하는 사람들이 미적 감각만 믿고 단순하게 예쁜 작업만 하는 시대는 끝난 거예요. ‘왜 그렇게 했는지’ 전략이 더 중요하고, 그걸 어떻게 풀어나갈지 스토리텔링을 쌓을 줄 아는, 말하자면 곧 다가올 AI 시대에 맞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하는 거죠.
Q. 학생들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종완 님은 어떠셨는지 듣고 싶어요. 디자인을 공부한 이유, 혹은 공간 디자인을 선택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되게 단순해요. 중학교 때 MBC에서 오래되고 낡은 집을 변신시켜 주는 〈러브하우스〉를 보고 결심했어요. 공간 자체가 사람들한테 이렇게까지 행복감을 줄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한 힘을 가졌구나 빨리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시 돌아가면 이 직업을 선택하진 않을 거예요. 창작하는 분들이라면 다 느끼시겠지만, 클라이언트와 약속된 시간 안에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요. 하루 만에 나올 수도 있지만, 기간 내에 나오지 않을 때도 있죠.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만들어내도 만족감을 느낄 여유가 없고, 다시 다른 작업에 저를 다 쏟아부어야 하는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다 보면 참 피곤한 직군이구나 싶어요. 성취감으로 해소되지 않는 문제 같아요. 물론 잘하고 있지만요(웃음).
Q. 타 인터뷰에서 종킴디자인스튜디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집단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해주신 것을 보고, 디자인 그 이상을 꿈꾼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으신가요?
설계 이전에 기획 업무가 있어요. 브랜드 컬러는 무엇으로 할지, 유니폼은 어떤 느낌으로 갈지, 음악은, 향은, 레스토랑이면 식기는 어떤 스타일일지 고민하죠. 초반에는 기획이 짧게 끝났는데, 지금은 상당히 길어졌어요. 친구가 저희는 설계하는 회사인데 왜 기획을 이만큼 가져가는지 묻더라고요. 회사의 궁극적인 방향은 설계에서 실행 단계를 조금씩 줄여가고, 기획 일을 더 많이 하는 거예요. 프로젝트를 맡으면 일관성 있게 다듬고 감리할 줄 아는 집단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잘 놀아야 되고, 그래서 매년 3주간의 겨울 방학이 있죠.
Q. 환경을 바꾸는 선택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요. 한국으로 돌아오신 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진 않으셨나요?
제가 열여섯 살 때 프랑스로 갔는데, 한국에는 방학 때만 오니까 즐거운 것만 보고 열여섯 살로 돌아온 것처럼 지냈어요. 프랑스에서는 존경하는 사장님 밑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했지만 외롭고 힘든 점도 많았는데, 한국만 오면 부모님이 챙겨주는 아이가 되고, 사회생활 한 번도 안 해본 느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들뜬 마음으로 쉽게 결정하고 왔죠. 아버지가 한국에서 다 같이 살아보고 싶다고 하신 게 가장 컸어요. 15년이라는 세월을 저를 위해 보내셨는데, 1~2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스튜디오를 차린 지도 7년이 됐네요. 그런데 한국에는 여전히 적응 안 했어요. 못 한 게 아니라요. 그래서 여전히 잘 싸우고 있고요.
Q. 어떤 것과 싸우고 계신가요?
저는 공간을 다루는 필드에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다음 세대가 편하게 일할 수 있죠. 시안 여러 개를 내면 몇 개는 바로 탈락되고, 채택되면 다행이라는 한국의 문화가 너무 이상해요. 클라이언트의 개인적인 문제, 혹은 사회 문제로 프로젝트가 취소될 때,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어렵죠. 아직 힘이 없는 분들은 그걸 요구하기 힘들 때가 있어요. 변호사, 의사와 상담하면 상담료를 받잖아요. 작업할 공간을 보면서 미팅을 하면 저희는 이미 대략적인 구상을 하고 이야기를 하게 돼요. 그럼 상대는 그걸 참고하죠. 그런 대화에 상담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현장에서 미팅을 하면 적은 금액이라도 상담료를 청구해요. 사무실에서 하면 청구하지 않고요. 금액은 무척 적고, 제가 그 돈이 필요해서 받는 게 아니에요. 이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서죠.
Q. 저서 《공간 산책》 출간 전시로 ‘디자인 장례식’을 기획하셨어요. 말씀하신 상담료처럼, 무형의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한 그 방식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기획을 하는 모든 분들의 이야기예요. 창작하시는 분들은 오래 공부를 했고, 10년, 20년 동안의 경험으로 누가 무엇을 물어보면 바로 대답이 나와요. 저희가 하는 일이 무형의 것이잖아요. 업계에서 일하며 무형의 가치가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들을 하면서, 선택받지 못한 디자인들의 장례식을 열어주자는 이야기가 됐죠. 쓰이지 못한 디자인도 가치를 인정받기를 바라요.
Q. 종킴디자인스튜디오로 7년 동안 200여 곳의 공간을 탄생시켰어요. 다양한 목적의 공간을 만든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상품을 다뤄야 하는 일인데, 공간 설계를 하며 느끼는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매 작업이 어렵죠. 무엇보다 진심으로 일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바로 어제도 쉬는 날이지만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현장에 다녀왔어요. 집을 디자인한다고 하면, 그 가족의 수저부터 양말 숫자까지 파악해요. 이전 집의 스위치 높이도 확인하죠. 모든 브랜드와 다 그렇게 일을 해요. 몰입도가 높아서 마치 그 대상에 빙의하는 느낌이라, 빠져나올 때 피곤하고 허탈해요. 그래서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게 힘들죠. 기업 오너 집을 설계할 때, 저는 그 정도의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걸 스펀지처럼 빠르게 흡수해요. 일적으로는 빨리 적응해서 빨리 좋은 성과를 내는데, 개인적으로는 힘든 면이 있죠.
Q. 어떤 일이든 시작의 순간이 중요하고도 어려울 텐데요. 일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시나요?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시야를 초식 동물처럼 가지려고 노력해요. 얕고 넓게 알려고 하죠. 내가 싫어하는 게 있으면 왜 싫어하는지, 좋으면 왜인지, 또 너무 깊숙하게 좋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요. 어머니랑 친구분을 차로 태워드릴 때 두 분이 대화하시면 거기에서도 얻을 게 많아요. 요즘 어떤 브랜드가 좋다더라, 어떤 신발이 너무 편하다, 친구가 샀는데 별로라더라, 그런 것들도 듣고 노트해 둬요. 저는 제 다이어리가 공부장이에요. 오늘 저희가 나눈 이야기 중에서도 기록하는 게 생길 거고, 나중에 어떤 프로젝트에 사용하기도 하겠죠. 자주 기록하고 들여다봐요. 일과 단절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단절하는 법을 모르겠어요. 계속 생각이 나니까요. 시작이랄 게 없고, 자연스럽게 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Q. 종킴의 공간에는 사용자들이 브랜드를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어요. 공간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종완 님의 방식은 무엇인가요?
젠틀몬스터나 요즘 이슈 몰이 하는 팝업 공간들을 보면, 독특하고 매력적이에요. 어떻게 저렇게 했나 부럽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 목적은 공간이 잘 늙도록 하는 거예요. 크든 작든, 그 안의 디테일이 한 번에 보이는 게 아니라 찾아와서 볼 때 마다, 혹은 감정이나 시선에 따라 새로운 게 또 보이면 좋겠어요. 제가 산책을 좋아하는데, 이런 이유들 때문이거든요. 디테일이 잘 배치되어야 스토리가 되고, 브랜드와 연관성이 있어야 질리지 않고 오래가죠. 계속 찾아가고 싶은, 오래 볼 수록 좋은 공간을 만들려고 해요.
Q. 매번 새롭고 틀에 박히지 않은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고 계세요. 의뢰인과의 소통이 항상 순조롭지는 않을 텐데, 어떻게 의도한 바를 설득하여 작업을 이끌어 가시나요?
저희는 의뢰를 받는 쪽이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방향성을 따라요. 물론 종킴디자인스튜디오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풀어 달라는 요청도 많이 들어오지만, 여전히 클라이언트가 최우선이에요. 저희가 떠올린 방향이 따로 있다면 추가로 준비해서 보여드리죠. 브랜드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추려고 노력하고, 피드백을 받으면 반영해요. 무엇보다 사전에 충분히 인터뷰를 해서, 소통이 어려운 경우는 많지 않아요. 첫 보고에서 정말 많은 옵션을 보여드리고 의견을 받아서 다음 스텝으로 가거든요.
Q. 공간을 보면 한 번이라도 따로 손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없어 보여요. 소재도 다양하고 가공도 많이 하시는데, 소란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아요. 종킴의 디테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요.
노력을 많이 하죠. 옷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자화자찬이지만 저 스스로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좋은 소재, 티 나지 않는 브랜드, 편안하고, 유머가 있는 것을 좋아해요. 과한 것 같으면 덜어내고, 내가 누구를 위해서 뽐내려고 하나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죠. 한번은 우연히 속옷까지 드라이클리닝을 맡기게 된 적이 있어요. 실수였는데, 입어보니 느낌이 너무 좋은 거예요. 속옷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서, 겉옷은 상대적으로 덜 좋은 걸 입어도 속옷은 정말 좋은 걸 입어요. 인테리어도 똑같아요. 내 몸에 닿고, 내가 만지는 부분에 가장 좋은 걸 쓰죠. 제가 입는 옷처럼, 좋은 소재로 만든 편안하고 유머러스한 공간을 지향하며 디테일 작업을 해요.
Q.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진심이어야 해요. 예를 들어, 내가 쓰지 않는 색조 브랜드를 한다고 해도 깊이 공감해야 해요. 모 의류 브랜드 프로젝트를 할 때, 다른 전략 회사들의 전략서로는 설계를 못 하겠다 싶었어요. 왜 해당 브랜드가 안 팔리는가에 대한 똑같은 전략서만 몇 년째 이어져 왔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팀원 전체가 설계를 중단하고 백화점마다 찾아가서 실제 그 브랜드를 사는 고객들을 인터뷰했어요. 그걸로 전략서를 새로 짜고, 설득해서 설계에 들어갔죠. 프로젝트를 위해서 지지고 볶고 싸우고 마지막 결과물이 나오고, 그 진심이 통해서 클라이언트와 지금까지도 계속 연결되는 것 같아요.
Q. 지금까지 일을 해오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나, 터닝포인트가 된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모 스포츠 브랜드의 첫 한국 매장 론칭을 저희가 맡았어요. 오프라인 매장이 하나도 없던 골프 브랜드인데, 첫 매장을 저희가 맡았어요. 프로젝트 마치고 몇 년 뒤에 호텔에서 행사를 한다고 초대를 받았는데요. 대행사들도 부르고, 쇼핑백 만드는 사장님부터 협력업체들, 백화점 점장님들까지 부르셔서 ‘덕분에 잘됐습니다’ 하고 파티를 여신 거예요. 프로젝트가 잘됐다고 외주 업체 다 불러서 말이라도 고맙게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정말 고마웠어요. ‘인테리어는 여기서 했습니다. 쇼핑백은 여기서, 그래픽, 홍보 대행은 여기서…’ 다 서로 소개해 주셨죠. ‘아, 이게 협업이구나.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다 나아가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Q.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나 브랜드가 있으신가요?
슈프림, 팔라스 같은 스트리트 브랜드를 굉장히 좋아해요. 심플하고 깔끔한 작업을 많이 하는데, 반대로 제 침실은 벽지도 초록색, 밀리터리로 다양한 색을 쓰기도 하고, 귀엽고 재밌는 물건도 많아서 잘못 움직이면 우수수 떨어질 정도예요. 청와대도 맡아서 해보고 싶고, 다양한 작업에 늘 열려 있어요. 더 쿨리스트 호텔 할 때는 대한민국 최초의 젠더리스 화장실을 만들고 싶었는데, 아쉬웠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