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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칼럼니스트 박선영

Artistic Well-being

칼럼니스트 박선영 이미지

Attitude For Having Art
칼럼니스트 박선영

 

한 세계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곧 무뎌진다는 뜻은 아니다. 15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예술을 대하는 마음이 한 번도 무뎌진 적 없다는 칼럼니스트 박선영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말이다. 수많은 아티스트와 작품을 일상처럼 접하는 그는 꾸준히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엮어 왔다. 건축, 음악, 미술 등 분야를 넘나드는 그의 세계에는 얼마나 다채로운 관점이 피어 있을까.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들이 주류인 시대, 말랑하고 독창적인 영감을 전하는 박선영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Interview

Q. 반갑습니다. 칼럼니스트, 인터뷰어, 전시 기획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계시죠. 본인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일의 범위가 넓어지기는 했지만 저는 여전히 칼럼니스트라는 이름에 제일 익숙해요. 제 근본적인 아이덴티티는 예술과 디자인, 세상의 매혹적인 사물과 사람들에 대해 쓰는 일과 가장 밀접한 것 같거든요. 사실 글을 쓰고 지면을 만드는 일 자체가 기획을 기반으로 하는 일이라 그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조금씩 제 외연을 넓혀왔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첫 번째 단행본을 출간 준비 중인데 이로써 글 쓰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더 공고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Q. 본래 경영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묘한 간극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해서 예술을 업으로 삼게 되신 건가요?

경영학과에 입학하자마자 제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곧장 휴학하고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미술사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게 일종의 사인이었던 것 같아요. 두 달 간의 여행에서 유럽의 미술관을 둘러보고 돌아와 어느 미술 포털 웹사이트에서 ‘선영이는 미술을 사랑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했어요. 이후 관심이 더 깊어지면서 KBS의 〈디지털 미술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을 시작했고요.

Q.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특히 미술은 전문 지식이 필요할 텐데요.

맞아요. 현대미술은 알면 알수록 공부가 필요한 분야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고, 자연스럽게 미술 관련 글쓰기와 아티스트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각각의 과정마다 계기는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어떤 필연적인 여정에 실려 온 기분이에요.

Q. 그 여정의 한 부분을 짚어볼게요. 칼럼니스트로서의 시작은 다름 아닌 인터뷰였다고요.

2008년 8월호 《하퍼스 바자》를 통해서 인터뷰어로 데뷔했어요. 당시 파리로 여행을 갔는데 퐁피두 센터에서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더라고요. 마침 그가 설계한 이화여대 캠퍼스 ECC가 서울에서 오픈을 앞두고 있었기에 한국 매체에 소개하기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사를 기획해 하퍼스 바자의 컨펌을 받고 도미니크 페로 사무실로 인터뷰 요청 메일을 넣었죠. 그렇게 만들어진 여덟 페이지짜리 특집 인터뷰가 제 첫 기사였어요. 대학 시절부터 막연히 ‘언젠가 유명한 사람들을 인터뷰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어요.

칼럼니스트 박선영

Q. 화가 네오 라우흐, 소설가 알랭 드 보통, 피아니스트 김선욱 등 인터뷰이의 분야도 매우 다채로워요. 단순히 미술에만 머물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평소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인터뷰이로 택하는 편이에요. 그들의 작품과 세계를 긴 호흡으로 향유하다가 인터뷰할 타이밍을 만드는 거죠. 그래서 따로 리서치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아요. 단발성 만남보다는 인터뷰 이 후에도 대화를 이어 나갈 기회를 소중히 여기는 편이고요. 예를 들어 사진작가 겸 설치미술가인 천경우 작가와는 몇 차례나 인터뷰를 나눴고, 2016년 서울에서 처음 만났던 피아니스트 김선욱 씨와는 출간 준비 중인 제 책을 위해 올해 초 뮌헨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어요.

Q. 하나하나 모두 특별한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그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아본다면요?

이탈리아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파리에서 나눈 인터뷰가 생각나요. 시간과 공을 들여 어렵게 서면 인터뷰가 성사되었고, 촬영만 갤러리에서 진행하기로 해서 페로탕 갤러리에서 그를 만났죠. 일말의 어색함도 없이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거의 카메라 앞에서 노는 배우 같더라고요. 촬영이 끝난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유튜브로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쇼팽 연주를 듣게 되었는데, 대화가 깊어져 결국 그곳에서 인터뷰가 진행 되었어요. 그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Q. 어떤 말이었나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에도 끝이 없고, 악한 것에도 끝이 없고, 어떤 강박도 끝이 없다. 위대한 아티스트는 어느 날 갑자기 멈출 뿐이다. 삶이 끝날 때까지 모든 건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마우리치오 카텔란과의 인터뷰는 한 편의 연극처럼 인상깊어요.

Q. 강렬하네요. 그런 만남 이후에는 그들의 작품이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 같은데요.

아티스트와의 인터뷰는 그들 세계의 일부를 경험하는 멋진 일이에요. 내 질문이 상대방 내면의 어딘가를 건드려 그전까지 해본 적 없는 생각으로 이끄는 과정이죠. 함께 사유를 나누며 내밀한 기억을 만드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인터뷰 이후 해당 아티스트의 작업을 볼 때면 그들의 언어가 되살아나요. 함께 마셨던 차나 예상치 못하게 터진 웃음 같은 것들도요.

Q.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지만 나만 읽어낼 수 있는 일기장 같네요.

더불어 작품에 대한 저만의 상상이나 나름의 추정치가 생기기도 해요. 앞서 천경우 작가와 몇 차례 인터뷰를 나눴다고 했는데요. 브레멘 거리의 땅속 어느 가스관에 그분의 작품이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볼 수 없는 작업인 셈이죠. 저는 그 거리를 걸으면서 ‘여기 어디쯤 작품의 일부인 텍스트가 숨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말들이 곧 작업이 되는 그 지점에서 저만의 희열이 생겨요.

칼럼니스트 박선영

Q. 한편 타인의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건 점검할 게 많은 일일 것 같아요. 작업할 때 특히 염두에 두는 부분이 있나요?

저는 현상이든 인물이든 대상에 대한 팩트보다는 그것이 지닌 면모를 최대한 입체적으로 드러내려고 노력해요. 그러려 면 나만의 관점이 필수적이죠.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나다움이랄까요, 열 줄짜리 단신 기사에서도 그런 점이 느껴지기를 바라면서 쓰는 편이에요.

Q. 나만의 관점이라니,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매체에서 일할 당시 한 선배가 “네가 궁금한 것 말고 독자들 이 궁금해할 걸 다루라”고 조언해 주셨는데 저는 동의할 수 없었어요. 제가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것들을 다뤄야 독자들에게도 생생한 흥미가 전달될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글을 쓸 때면 늘 솔직해지려고 애써요.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정말 숨김없는 나의 감정인지, 방금 사용한 이 표현이 순수하게 나한테서 나온 것인지 의식하려고 노력하죠.

Q. 한 인터뷰에서 “글 쓰는 일을 넘어 공간과 물건, 사람들의 이야기가 관계되는 순간을 기획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실제로 전시장 바깥, 의외의 장소로 작품을 옮겨서 관람객과의 일방적 관계를 전복시켰고요. 이런 아이디어는 어떤 관점에서 탄생한 걸까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전시장이 아니라 작가의 아틀리에에서 그 작업의 흔적까지 보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는 거죠. 작가가 호흡하고 사유하며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환경에서 작품을 만난다면 색다른 생명력이 느껴질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관객들도 작가의 내밀한 공간이 주는 특별한 긴장감에 무척 즐거워했어요.

Q. 이쯤 되니 작품을 감상하시는 방식이 궁금해져요. 주로 시선을 빼앗기거나 주의를 기울이는 요소 같은 것들도요.

작품을 감상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에요. 충분한 감상과 판단의 필요조건은 결국 물리적인 시간인 거죠. 그 안에서 작품을 이루는 색과 면과 형태, 그 요소들이 자아내는 조형성, 그것이 나에게 주는 감흥 등을 입체적으로 느끼려고 노력해요. 능동적으로 작품을 분석한다기보다는 전시장 안에 나를 내맡기는 거예요.

Q. 분석한다기보단 그 안에 나를 내맡긴다니, 멋진 말이네요.

대학원 시절 교수님께서 “전시장에 들어서면 일단 그 안에서 어떤 작품이 가장 좋은지, 그것이 왜 좋은지 결판을 내고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그 과정은 여전히 어려워요. 다만 ‘왜 좋은지’까지는 너무 어렵더라도 ‘어떤 작품이 내게 가장 와닿았는지’는 습관처럼 찾아내려고 하는 편이에요.

집 안에 놓인 가구와 그림들

“예술이 놀라운 지점은

그 어떤 생각이나 개념, 감정도

모두 용인되는

유일한 세계라는 거예요.”

Q. 그렇다면 미술이 아닌 장르에서는 어떤가요?

미술뿐 아니라 건축, 가구, 디자인도 하나의 궤로써 제 감각을 구축해요. 예를 들어 건축은 시각보다 경험에 더 가까워요. 어떤 건물에 들어가면 그 공간이 왜 좋은지는 눈을 감고도 느껴지거든요. 그곳에서 머물고 또 거닐며 공간이 주는 감흥을 경험하는 건 작품을 보는 것과 또 다른 감각이에요. 가구의 경우 일상생활에 맞닿아 있으니 쓰임새를 고려해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제 취향에 맞는 디자인에 마음을 빼앗기는 편이고요. 제가 컬렉팅하는 조명 중에는 기능보다 감상의 차원에서 고른 것들도 꽤 많아요.

Q. 예술을 즐긴다는 건 나만의 취향을 알아가는 일이기도, 감상을 넘어 소장을 뜻하기도 한다는 말처럼 들려요. 둘 다 어떠한 기준이 필요한 일 아닐까 싶은데요.

뚜렷한 기준이 있다기보단 주로 첫인상에서 좌우해요. 단발 적인 감각 같은 거랄까, ‘이 작품은 집에 두고 계속 보고 싶다’는 느낌이 오는 작품들이 있어요. 주로 추상화 계열이라는 공통점이 있고요. 무언가를 분명하게 서술하기보다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걸 선호해서인지 그림도 추상 회화가 더 끌리는 것 같아요.

Q. 요즘 들어 일상에서 즐기는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우리가 삶에서 예술을 놓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예술이 놀라운 지점은 그 어떤 생각이나 개념, 감정도 모두 용인되는 유일한 세계라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옳고 그름의 논리와 수치적 평가가 명확한 곳이지만, 예술 안에서는 가장 개인적인 스토리나 무논리, 환상이 오히려 빛을 발해요. 거기서 만끽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예술의 유일무이한 가치가 아닐까요? 관습에 물든 행동과 경직되어 가는 사고 체계를 예술 안에서 깨우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존재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Q. 끝으로 칼럼니스트님의 다음 단계가 궁금해요. 지금껏 예술의 다양한 면면을 본인만의 언어로 번역하고 전달해 오셨다면 앞으로 새로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그동안엔 주로 공적인 지면에 글을 써왔어요. 나의 시각이 담기기는 했지만, 주제나 기획 면에서 매체의 성격과 독자층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최근 첫 단행본을 집필하면서는 훨씬 자유로웠어요. 보다 사적인 소재 속에서 나만의 관점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요. 그런 점에서 앞으로는 제 반경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우연처럼 마주하게 된 상황들, 어떤 이끌림을 따라 찾아갔던 장소들, 유명인은 아닐지라도 영감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등 저를 자극한 것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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