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st And
Communication
민선정 팀장 | 캠페인플래너
브랜드 ‘답다’라는 이야기를 듣기까지, 그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 걸까? 브랜드의 지향점과 가치를 전하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
는 사람들이 있다. 그 과정에서 모두가 발맞춰 나아가기 위해 이해
관계를 조율하고, 소통하며, 방향을 점검하는 캠페인플래너들. 브랜
드의 세계를 구축하고 사람들이 그 안에서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
도록 돕는 캠페인플래너의 감각과 영감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Interview
Q. 이노션에서 어떤 캠페인을 이끌고 계신가요?
저희 팀은 KCC건설 스위첸을 오랫동안 해왔고 한화그룹의 기업 브랜딩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도 진행 중이에요. 그리고 휴테크, 올해부터 함께한 다올금융그룹, 스타트업 쪽으로는 생활공작소, 뱅크샐러드, 쿠캣 등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Q. 꾸준히 진행한 캠페인이 많은 것 같아요.
KCC건설 스위첸은 ‘자유의 집’, ‘엄마의 빈방’ 때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한화그룹도 내년이면 5년, 휴테크는 3년 차를 맞네요. 그 외에는 팀의 경험을 넓혀가기 위해서 많은 경쟁 PT에 참여하려고 노력해요. 스타트업 쪽은 장기 프로젝트가 많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새로 경험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어요.
Q. 경쟁 PT를 반복하는 일이 쉽지 않으실 텐데요.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기획자들에게는 많은 공부가 돼요. 그래서 본인의 전력을 높이는 데 경쟁 PT만한 건 없는 것 같아요. 팀 구성원들이 나중에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포트폴리오가 자양분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팀원이 합류할 때 이런 팀의 성향을 먼저 공유하고 동의를 구하죠.
Q. 시리즈처럼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같은 브랜드를 대상으로 여러 개의 캠페인을 만들어요. 그럴 때마다 기존 이미지와 새로움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필요할거라 생각해요. 어떻게 균형을 잡아가나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건 단기간에 되지 않아요. 브랜드 지향점을 명확하게 잡아두면 그 범주 안에서 새로운 이슈와 화두를 찾아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죠. 스위첸의 경우, 보통 아파트를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희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으로 보려고 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의 관계 속 숨은 이야기나 집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죠. 업계에서 종종 ‘스위첸처럼, 스위첸답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요. 그럴 때마다 브랜드가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하고, 이런 피드백이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Q. 한화그룹 캠페인은 어떤가요?
한화그룹도 마찬가지예요.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 같지만, ‘인류와 지구를 위해서 지속 가능한 내일을 만들어 나간다’라는 경영 철학이 명확하거든요. 모든 프로젝트가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한 근본적인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숲을 만드는 데에도 탄소가 발생한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양묘장*에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해 지구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숲을 만들자는 생각이 ‘태양의 숲 프로젝트’가 되었어요. 2022년에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기후행동가인 꿀벌의 생태계를 고민한 ‘솔라비하이브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이렇듯 브랜드의 뚜렷한 방향성 아래 폭넓은 주제들을 검토하며 새로운 이슈를 고민해요.
*양묘장 | 식물의 씨앗이나 모종, 묘목 따위를 심어서 기르는 곳
Q. 다올디지털뱅크 Fi 머니 퍼퓸 캠페인은 브랜드를 보여주는 방식이 정말 새로웠어요. 돈과 향수를 엮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요?
지금 대한민국 금융 앱이 200개는 될 거예요. 각자 휴대폰만 봐도 저도 대여섯 개가 넘는데, 그 폴더 안에 들어가는 게 정말 힘들어요. 이름을 알리는 것도요. 2022년에는 금융 광고만 450편 정도 나왔다고 해요. 신생 브랜드를 한정된 예산 안에서 각인시켜야 하는데, 앱이 가진 기능을 세련되게 보여주는 게 과연 해결책일까 하고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 프로모션 아이디어로 ‘돈 냄새'가 나왔어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냄새는 돈 냄새가 아닐까? 머니 퍼퓸을 굿즈로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는데, 저는 ‘이거다!’ 싶었어요. 이걸로 TVC도 만들고 프로모션도 하자고 했죠. 사실 저희도 반신반의했어요. 미친 짓을 세 번 정도 해야 광고주가 우리를 알아줄 거란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바로 오케이 하시더라고요. 저희도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알고 보니 향을 만드는 게 오래 걸리는 작업인데, 두 달 만에 조향부터 제품 생산까지 수향이란 파트너가 있었기에 가능했죠. 캠페인 반응도 정말 좋았어요. 우리가 도전적으로 시도한 일에 소비자들이 호응을 해줬다는 게 의미가 컸죠.
Q. 많은 관심을 받은 캠페인들이 직접 대상을 드러내고 설명하는 대신, 공감이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방식이에요.
우리가 하는 일이 단순히 TV 광고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브랜드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슨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브랜딩에 도움이 되느냐의 관점으로 보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중 하나가 TV 광고인 거고요. 브랜드가 원하는 가치에 공감하게 만들기 위해, 기획과 제작이 함께 고민한 내용을 어떤 콘텐츠로 만드는 게 가장 매력적이고 힘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접근하죠.
Q. 그렇게 기획한 캠페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프로젝트 하나하나 다 의미 있지만, 시작이 인상깊은 클라이언트는 생활공작소예요. 그 당시에 생활에 새로운 솔루션을 주는 스타트업이 많았는데, 제가 이용하기도 하고 무척 좋아하던 브랜드 중 하나가 생활공작소였어요. 그런데 생활공작 소에서 파트너사를 찾고 있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너무 하고 싶었죠. 이렇게 애정하는 브랜드를 다른 곳에 뺏기고 싶지 않아 오랫동안 좋아한 사람에게 러브레터를 쓰는 마음으로 제안을 준비했어요. 생활공작소에서 그 마음을 받아주셔서, ‘생공적’으로 캠페인을 론칭했죠. 이 브랜드가 가진 생각이나 서비스의 움직임이 기가 막히다고 생각하면 만나보고 싶잖아요. 충성심이 생겨서 사람들에게 소개하게 되고요. 그 과정을 같이 하고 싶었어요.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건 정말 행운 같은 기회죠.
Q.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알고 캠페인을 전개하려면 클라이언트와 긴밀한 소통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하나의 캠페인을 기획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해요.
예를 들어 스위첸은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있어요. 캠페인을 준비하는 데 보통 6개월 정도 걸리는데요. 아이데이션 과정에서 기획, 제작, 클라이언트 할 것 없이 매주 만나서 난상 토론을 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부딪히고 이야기를 쌓아 나가며 프로젝트가 시작돼요.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 많은 대화를 통해 준비되는 캠페인이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얻는 것 같아요.
Q. 다른 캠페인에 비해 두세 배 이상의 기간이 걸리네요.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으시나요?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요. 스위첸은 광고주가 늘 원팀, 우리팀이라고 말씀하세요. 내 편 안에서 일하는 느낌도 들고 다른 데서 힘든 것도 위로가 되고요. 독특한 작업 방식이지만 그게 원동력이 되어요.
Q.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텐데, 가장 효과적인 문구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우선순위는 명확해요. ‘브랜드가 고민하는 문제의 솔루션으로 적합한가?’죠. 브랜드 지향점과 우리 아이디어가 같은 길을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해요. 너무 재미있고 혹하는 아이디어들이 있어요. 기획자는 그럴 때 한 발 뒤로 물러나서 브랜드가 처한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역할을 하죠. 아이디어를 위한 아이디어가 나와서는 안 돼요.
Q. 이처럼 치열한 고민의 과정이 있었기에 여러 광고제에서 상을 받으셨어요.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감으로 가닿은 경험은 어떤지 궁금해요.
얼떨떨하고 감사하죠. 저희 팀이 해외 광고제에서 처음 수상한 게 스위첸의 ‘등대프로젝트’였어요. 처음 경비실 도면을 봤을 때 누군가 사는 집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집인데 다른 집들을 지켜준다는 생각을 하니 울림이 컸어요. 광고주에게 아이디어 제안을 하면서 노후화된 경비실 개선 프로젝트를 함께 이야기 했어요. 그때 “전국에 노후화된 경비실이 몇 개나 되지?” 확인하더니 KCC건설이 지은 아파트의 노후화된 경비실에 전부 개선 작업을 진행하더라고요.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소름 돋게 짜릿했던 순간이에요. 이렇게 멋진 클라이언트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그걸로 저희가 해외 광고제에서 첫 수상을 하니 더 의미가 깊었죠. 저희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는 클라이언트와 함께한다는 것에 마음을 울리는 찡함이 있어요.
Q. 듣다 보니 좋은 팀이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팀을 이끄는 원칙이 있으신가요?
질문에 답이 있는 것 같아요. 제 멘토이자 선배가 좋은 광고는 좋은 사람이 만든다고 생각하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만큼 즐겁게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하자고 얘기하세요. 광고뿐 아니라 저희가 만드는 모든 콘텐츠가 같이 하는 스태프가 정말 많아요. 짧은 15초 TV 광고를 만들어도 100여 명의 사람과 많은 업체가 모여서 일을 하는데, 그 가운데서 소통 역할을 하는 게 기획 업무 중 하나예요. 무엇보다 “저 기획팀과 일하면 믿고 할 수 있어”, “더 좋은 퀄리티가 나와”라는 신뢰를 주는 팀이 되고자 해요.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고, 커뮤니케이션이 잘돼야 아웃풋도 잘 나올 수 있거든요.
Q.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콘텐츠, 설득력 있는 광고를 만들기 위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일상의 모든 순간이 영감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지금 당장 준비를 해야 하는데 내 영감이 여행에서 온다고 여행을 떠날 순 없잖아요. 접근성이 용이한 방법 중 하나는 무작정 보고 또 보는 방법이에요. 저희가 하는 일이 스토리를 만들고 영상으로 표현하는 게 많다 보니, 영상 콘텐츠를 일상처럼 찾아봐요. 영화 타이틀 시퀀스 같은 것도 재밌죠. 짧은 시간 내에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음악과 타이포 디자인 같은 것도 도움이 되고요. 같은 주제라도 해석과 표현 방식이 다 다르잖아요. 그런 자극을 많이 찾아요.
Q. 영상물 제작이 많은 만큼 광고계에서는 숏폼을 어떻게 바라 보고, 또 활용하고 있을지 궁금해요.
섣불리 덤볐다 실패한 경험이 있죠. 하면서 느낀 건 가령 틱톡이 유행이다, 광고주가 원한다, 하면 틱톡에 맞는 아이디어를 고민하는데 그러면 안 되겠더라고요. 브랜드가 광고의 목적으로 숏폼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다면 단순히 채널 확장이 아니라, 채널의 특성을 활용한 이 브랜드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줘야 하는 것 같아요. 미디어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브랜드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 어려워요.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숏폼을 이 브랜드에 어울리는 콘텐츠화하기 위해 어떤 관점으로 접근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해요.
Q. 오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좋은 결과물이 모두 정성스러운 노력 끝에 만들어졌다는 게 느껴져요. 팀장님에게 일의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에서 원동력을 얻어요. 광고라는 업 자체가 일과 생활이 분리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안에서 계속 동기부여를 얻어야만 롱런할 수 있어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남의 돈으로 내 사업을 한다고도 생각해요. 많은 프로젝트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니까요. 한 가지 속상한 부분은 점점 광고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무수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업인데 말이죠. 저는 이노션에서 음악도 만들고, 영화도 만들고, 예능도 만들고, 원하는 모든 걸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런 것들을 하고 있고요. 뭐든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원동력이 생기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도전적으로 해낼 많은 기회가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저 기획팀과 일하면 믿고 할 수 있어 더 좋은 퀄리티가 나와”라는 신뢰를 주는 팀이 되고자 해요.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고, 커뮤니케이션이 잘돼야 아웃풋도 잘 나올 수 있거든요.”
민선정 팀장이
영감을 얻는 물건
영감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잖아요. 영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어도 좋겠지만, 저는 이 혼재된 영감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선물 받은 몰스킨 다이어리를 시작으로 늘 뭔가를 끄적여요. 연말이면 다이어리를 들춰보고요.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있지만, 그때그때 나오는 생각을 놓치지 말고 기록하자 다짐해요. 그럼 그것이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고 내 안에 축적된다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