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Manual
당신의 하루를 바꿀 수 있는
한 마디를 짓는 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남정민
과잉의 시대, 사람들의 하루는 수많은 이야기와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보는 사람인지를 통해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만드는 사람의 시선이 세상을 향한 애정 어린 마음에서 비롯하기를 바라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함께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것에 중요한 가치를 두는 사람, 삶에 다정한 시선을 보내는 남정민 CD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Interview
Q. 독자분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남정민입니다. 2025년이면 CD 4년 차가 되네요. 광고를 한 지는 이제 15년밖에 안 된 꼬꼬마 CD입니다. 아직 저만의 스타일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라, 하루하루 배우며 성장 중이에요.
Q. 꼬꼬마라니 너무 겸손한 표현인데요.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있으신가요?
저만의 색깔을 만들고 싶어요. 다른 CD님들이 만든 광고를 보면 그분만의 색깔이 확 느껴져서 ‘이걸 만든 분은 어떤 분일까?’ 궁금하고 부러워져요. 비주얼이 멋지거나, 편집이 엄청나거나, 유머 감각이 탐날 때도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저는 누군가의 마음을 인간미로 터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 왔어요.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차근차근 CD 남정민의 색깔을 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나아가 보려 합니다.
Q. CD님은 진로를 일찍 결정하신 것 같아요. 광고홍보학을 전공하고, 대행사에서 인턴을 하고 그대로 광고업계에서 일하셨어요. 어떤 계기와 확신이 있으셨나요?
어릴 때 만화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친구들에게 칭찬받는 게 좋더라고요. 광고홍보학과 첫 수업에서 칸 수상작을 처음 접했는데 ‘와 진짜 기발하다.’ 싶었죠. 어릴 적 만화를 그리던 때처럼, ‘나도 사람들에게 이런 걸로 칭찬 한번 받아보고 싶다.’ 생각했어요. 매일 공모전에 매달렸고요. 다행히 소소하게 상을 받기도 하면서 이 길로 쭉 가보고 싶어졌죠.
Q. 기발함, 신선한 충격 같은 것에서 광고의 매력을 느끼셨군요.
예전에는 신문이 지금보다 컸어요. 중앙일보가 작은 사이즈의 신문을 처음 도입하며 광고 공모전을 열었는데, 얇고 가벼운 맥북 에어와 비교하며 두 제품을 동시에 알리는 광고를 만들어봤어요. 대상을 받았죠. 그때 ‘절묘하다.’라는 평을 처음 들었어요. 기분이 너무 좋았고 그 절묘함을 찾는 즐거움에 빠져 살기 시작했어요. 늘 주위에 있지만 사람들이 몰라 보는 걸 발견해 내자!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이 달리 보였어요. 즐거웠죠.
Q. 현대차증권, 농심 짜파게티 광고에서는 인간미, 사람이 돋보여요.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잘 관찰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낸 에피소드가 겹겹이 쌓여 있죠. 이런 아이디어들은 어디에서 오나요?
우선 소소한 디테일을 중시해요. 영화를 볼 때도, 세계관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몰입이 안 돼요. 광고도 마찬가지죠. 짜파게티 40주년 캠페인을 보시면, 휴대전화를 보며 짜파게티를 먹는 남자가 나옵니다. 컵에 기대어 세워 놓은 휴대전화가 쓰러지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디테일은 한 번 더 쓰러져야 한다는 거예요. 겨우겨우 세웠는데 또 쓰러지는, “맞아. 꼭 저렇더라. 나도 저런 적 있는데!”라고 말하게 되는 소소한 디테일. 그런 장면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그 제품을 마이 브랜드라 느끼게 하는 요소라 생각해요. 두 번째로, 평소에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바라봐 요. 예를 들어, 안절부절못하는 누군가가 있어요. 그럼 막 추론을 해보죠. ‘지각을 한 걸까? 누가 기다리고 있나? 화장실이 급한가?’ 꽤 재밌어요. 심리가 느껴지거든요. 4살의 짜파게티 편도 마찬가지랍니다. 이 무렵 아이들은 뭐 하나를 먹어도 쉽게 먹는 법이 없잖아요. 기존 라면 광고처럼, 시즐감(sizzle) 있게, 척척 잘 먹는 모습이라면 엄마들이 공감이 가질 않겠죠. 그래서 조카를 열심히 관찰해 봤어요. 아직 포크로 뭘 먹는 행위 자체가 서툴러서 면을 입으로 가져가질 않아요. 대롱대롱 매달린 면에 입을 갖다 대려고 애쓰죠. 얼굴은 금세 소스 범벅이 되고 말고요. 사랑스럽죠. 그렇게 관찰과 상상을 꾸준히 이어가요. 거기에 진짜가 있다고 믿으니까.
농심 짜파게티 40주년 감사캠페인
현대차증권 기업PR ‘숫자만큼 사람을 봅니다’
Q.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크신 것 같아요.
저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잖아요. 제게 없는 면을 마주하면 멋지기도 하고, 저와 닮은 점을 발견하면 반갑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 그냥 알려주고 싶어요. 알게 모르게 우린 모두 나름의 삶 속에 참 많은 기쁨을 숨겨두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의 삶 속 이야기를 꺼내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그런 소소한 공감을 주는 광고가 많아졌으면 해요.
Q. 광고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에요. 말씀을 들어보면 만드는 사람의 역할이 가볍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그만큼 CD님이 광고에 임하며 어떤 가치를 중시하시는지 궁금해요.
함께 일하는 분들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만큼 좋은 아이디어는 없는 것 같아요. 스스로 즐기며 작업에 참여할 때 퀄리티가 훨씬 좋다는 걸 정말 많이 체감해요. 웃으며 일할 때 멋진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Q. 사람들이 즐겁게 일하려면 자신이 하는 일을 납득하고, 주도적으로 한다는 느낌을 받아야 할 텐데요. 어떻게 그런 분위기를 이끄세요?
놀이터를 만들어드리려 합니다. 광고주 보고까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제가 중심이 되어야 하겠죠. 하지만, 촬영 현장은 감독님이 이름 그대로 디렉터예요. 그럼, 그분이 신이 나서 날아다닐 환경을 만들어 드리는 것. 그게 CD의 몫인 거 같아요. 믿고 맡겨드린 만큼 더 성심성의껏 준비해 주시고, 끝까지 디테일을 올리려 애써 주시는 걸 느껴요. 물론 사전에 충분히 협의가 되어야 하겠죠.
Q. 다른 사람 의견을 다 잘 받아주려면 원래 구상하던 것에서 달라지는 부분이 많아 힘들 것 같아요.
제가 흔들리면 많은 것이 위태로워집니다. 많은 분에게 폐를 끼치게 되죠. 그러니 제 기준점이 명확해야 해요. 여러 사람이 의견을 제시해도 무엇을 받아들일지 잘 판단할 수 있게, 저만의 기준점을 몇 번이고 곱씹어요. 원래 냉철한 성격이 아니라,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강박을 가지고 임해요.
Q. 사람에 대한 관심과 관찰이 결국 우리 모두가 하는 일의 근간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 따뜻한 시선이 CD님이 만든 캠페인을 기억하게 할 것 같은데요. CD님에게도 잊지 못할 광고가 있나요?
제가 광고를 시작할 무렵 나왔던 SK그룹 PR 광고요. 그중 ‘재춘이네 조개구이’라는 광고가 있어요.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라는 카피가 있어요. 누구누구 이름을 단 투박한 간판이 많잖아요. 왜 저런 간판을 달았을까. 그걸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이면을 들여다본 거잖아요. 정말 멋지죠. 최근 KCC건설 스위첸 ‘엄마의 빈방 ’이라는 광고도 결이 비슷한데… 감탄했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인사이트를 굉장히 깊이 연구하셨고, 감정선을 절제하며 잘 전달했다 생각해요. 가끔 생각나면 찾아봅니다. 볼 때마다 눈물 찔끔하고요. 저도 언젠간 그런 광고를 만들어보고 싶네요.
Q. 최근 뚜레쥬르 〈좋아하는 걸 더 기본좋게〉 캠페인에서 기분과 기본을 연결한 것처럼, CD님 작업은 핵심 키워드를 유쾌하게 잘 짚어내죠. 이미지가 주류인 시대에 말과 글자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CD이자 카피라이터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듣기로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는 광고가 아니라 ‘고백’이라 불렸대요. 고백은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는 거잖아요. 광고주에게도 소비자에게 어떤 점을 꼭 전하고 싶다는 진심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 진심을 전할 절묘한 접점을 찾아드리는 거고요. 썸남썸녀간의 고백과도 같다고 보이네요. 외모도 중요하고, 썸의 온도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결국 어떤 한 마디로 고백했을 때, 그 진심이 온전히 전해질지, 둘이 이뤄질지가 결정되는 것 아닐까요? 뚜레쥬르는 제일제당에서 시작된 기업입니다. 그만큼 재료 하나하나에 확신과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 점을 ‘기본 좋은 빵’이라 말할 수 있겠다 싶었고, 어라? ‘기분 좋은’처럼 들리기도 하네? 이거다 싶었죠. 브랜드의 진심과 소비자의 관심, 그 사이의 절묘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작업이 ‘키카피(Key copy)’라 생각해요. 제겐 여전히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Q. 새로운 언어는 생각할 수 있는 세계의 범위를 넓히는 것 같아요.
새로워 보이려 애씁니다. 억지스럽지 않아야 하고, 브랜드와 도 잘 어울려야 하고요. ‘올 한 해, 몇 주년이다.’ 기념하는 광고들이 참 많았어요. 짜파게티도 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한 브랜드가 수십 년을 사랑받는다? 결코 가벼운 숫자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수의 브랜드가 정직하고 묵직하게 말하는 방법을 선택하지만, 이건 짜파게티잖아요. 늘 마트 매대에서 우릴 기다리는 맛있는 것. 그냥 담백하고 정답게 알리고 싶었어요. ‘사랑’이란 단어에 숫자 4를 넣자, 자음의 동그라미가 숫자 0으로 보였어요. 이렇게요. ‘4랑해주셔서 감4합니다’
뚜레쥬르 ‘좋아하는 걸 더 기본좋게’
농심 짜파게티 ‘묻어있다’ 시리즈
Q. 작업 하나에 많은 고민과 노고가 있어요. 꼬꼬마 CD로 소개해 주셨는데, CD가 되어보니 어떠셨나요? 좋은 점도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아요.
CD가 됐다고 어느 날 CD의 능력이 생기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래. 내가 CD니까, 뭔가 해내야만 해.” 이런 괜한 부담감에 사로잡혔어요. 모두가 함께 준비한 내용을 제가 광고주 앞에서 유창하게 발표해 내야 한다는 생각에도 무척 떨렸죠.
Q. 그럼 그 두 가지를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감사하게도 너무 좋은 두 선배님 덕분에요. 이전 회사 대표님 두 분이 제가 CD가 될 수 있도록 많이 들여다봐 주셨어요. 한 분이 그러셨어요. “CD가 아닐 땐 네 아이디어를 팔려고 했겠지만, 이젠 방향을 잡아주는 게 네 일이야. 모든 사람이 주는 아이디어가 다 네 거야. 얼마나 좋니?” 그 말을 듣자 괜한 부담이 사라졌어요.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두 제 편이라는 걸 깨달았죠. 촬영 현장을 놀이터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그분께 배웠어요. 또 한 분은 초창기 제 어설픈 프레젠테이션을 꼼꼼히 봐주셨는데, 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걸 보며 그러셨어요. “떨려도 돼, 감추려 마, 오히려 그게 무기야. 떨리는 목소리에 광고주는 되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한 너의 진심을 느낄 거야.”라며 말이죠. 덕분에 이젠 떨려도 후련하게 다 얘기하고 옵니다. 나름의 팁이라면 첫 문장을 가장 많이 연습해요. 초반 흐름을 타면 PT 전체를 제가 좌우할 수 있더라고요.
Q. 광고는 짧은 러닝타임이나 한정된 지면에 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광고주와 소비자가 있기에 제약도 크고요. 결국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도 많을 텐데요. CD님이 프로젝트 과정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광고주와 소통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하는 것들이 생기기도 하죠. 하지만 키 카피만큼은 끝까지 지키려 노력해요. 이전 회사에는 CD를 달면 팀 이름을 짓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는데, 저는 ‘6699’라고 짓고 싶었어요. 큰따옴표 모양이잖아요. ‘이게 무슨 캠페인이야?’ 하고 물으면 답할 수 있는 한 마디, 키카피는 그 프로젝트의 화두이자 제목, 전부니까요.
Q. CD님 이야기 속엔 항상 ‘사람’이 보여요. 결국 협업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우리 팀뿐만 아니라 광고주, 기획 파트, 프로덕션까지 많은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데,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하고 계신가요?
부정적인 표현은 가급적 안 하는 편이에요. 아니다 싶은 건 제가 고르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안 좋은 걸 안 좋다고 애써 강조하려 하지 않아요. 대신 발전 가능성을 들여다보려 해요. 토씨 하나만 바꾸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으니까.
Q.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부러워지네요. 그렇다면 꼬꼬마 CD로 아직 완전히 숙성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캠페인을 맛있게 만드는 CD님만의 비법 소스, 혹은 개성이 있다면요?
깨알 디테일 챙기기요. 사실 저만의 비법이라기보단 많은 분들과의 협동작전이라 해야 할 것 같아요. 촬영 현장에선 마지막까지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누어요. 현대차증권 남자 편의 카세트 장면은 감독님 아이디어였는데요. 트리트 구성하실 때부터 그 장면을 찍고 싶어 하셨는데, 광고주분들과 의견이 엇갈려서 포기해야 했죠. 감사하게도 감독님이 끝까지 욕심을 내주셨어요. 다음 촬영 장소로 이동하는 사이에 짬을 내서 후딱 찍기로 했고, 저도 옆에서 이런저런 깨알 아이디어를 보태 드렸죠 . 10분 만에 찍고 다음 장소로 다시 정신없이 뛰었어요. 감독님도 저도 신이 나서 웃었죠. 결국 그 장면으로 온에어 됐고요.
Q. CD님이 생각하는 좋은 아이디어란 무엇인가요?
이 업에 대한 믿음 하나가 있어요. ‘광고는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라는 믿음. 예를 들어, 짜파게티 광고를 본 어떤 부모님이 ‘어? 우리 애도 먹여봐야겠다.’라며 처음으로 사 먹이게 돼요. 생애 첫 짜파게티, 얼마나 맛있을까요? 기분이 좋아진 아이가 온갖 재롱을 부립니다. 그 모습은 부모님들 눈에 얼마나 예쁠까요? 웃음이 이어지겠죠. 나비효과가 있을 거라 믿어요. 순간순간이 모여 큰 행복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제가 만든 광고도 그런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주 조금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계기요.
남정민CD에게 영감을 주는 것
Q. CD님에게 영감이 되는 물건은 무엇인가요?
이 의자에 앉아 불멍하는 시간이요. 캠핑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멍하니 생각에 잠길 때 참 좋더라고요.
Q. 캠핑을 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면, 이전에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셨나요?
제 아내와 엄마요. 이 두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제 인생에 있어 작은 목표예요. 제 원동력이죠. 광고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다짐, 그 첫머리에 늘 이 두 사람이 자리 잡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작업한 광고도 이 둘에게 보여줄 때 가장 기뻐요. 별것도 아닌 저를 자랑스러워해 주는데, 그저 고맙죠. 이 두 사람 덕분에 ‘제가 좀 더 좋은 광고를, 이렇게 따뜻한 이들이 공감할 만한 걸 만들고 싶어 하는구나.’ 늘 깨닫게 돼요. 감사할 뿐입니다.
Essay
나는 운이 좋았지
2024년,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
운이 좋았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행운이었다.
만나는 인연 마다마다 감사했다.
“안녕하세요. 새로 온 남정민 CD입니...“
이노션에 다니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 멋진 친구들이 날 믿고 따라준다고?’
팀원빨이 좋았던 한 해. 고마웠다. 내가 더 잘할걸!
‘함께 광고를 만든 걸까? 추억을 만든 걸까?’
너무 좋았어요. 감독님, 피디님도 그러셨나요?
“너, 다시 광고할래?” “어 그래.”
오랜 친구와 다시 광고를 하게 되다니, 기뻤다.
‘어쩜 이렇게 속을 훤히 들여다보시지?’
밤톨처럼 따끔한 조언 속,‘응원’이란 알맹이가…
생각을 시작한 김에
조금 더 멀리 되돌아보니,
아.
그랬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었다.
“진짜 재밌어서 웃는 거야?” “응.”
맨날 보는 얼굴, 반기며 웃는 아내를 만난 것도.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태어나 보니,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란 것도.
“광고 나온다.”
아들 광고 볼 때마다, 톡 보내는 아버지가 계신 것도.
“니 함 나와봐라.”
무릎을 짚으며 광고인이 될 기회를 주신 분을,
“떨리는 목소리도 무기야. 네 진심이 전해지거든.”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가르침을 주신 분을,
“충분히 잘하고 있슈. 그랴그랴~ 놀러 와.”
뭐 하나라도 더 응원해 주시려는 분을 만난 것도.
늘 그랬다.
들인 노력에 비해, 너무도 거저 주어진
행운 같은 인연이 이어져 왔다.
힘든 시절, 웅크렸던 순간도
버티고 이겨내는 방법을 깨닫는 시간이 되어
스며들었다.
쌓여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나로 만들어주었다.
운이 좋았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행운이었다.
감사하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터벅터벅 옥상에 올라
담배 하나를 물었다.
이윽고,
머릿속에서 소화를 마친 생각들이
허연 연기를 타고 쏟아져 나왔다.
내뿜은 연기가
희미해져 가는 방향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되뇌었다.
‘그래. 나는 운이 좋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