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Need
Typical Way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방현석
새로움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질 때, 우리는 전형적인 새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범람하는 비슷한 이미지들 사이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영감은 어디서 탄생하는 걸까. 익숙함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 취미라는 그릇에 취향을 다 담을 수 없는 사람. 올라운더 방현석 CD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Interview
Q. 최근 어떤 작업들을 진행하셨나요?
얼마 전에 ‘아이오닉 5 N 월드프리미어 필름’과 ‘클럽 디 오아시스’라는 워터파크 론칭 광고 촬영을 마쳤어요. 현재 편집 중이라 두 가지 모두 곧 온에어될 것 같아요. 가장 최근에는 쏘나타 캠페인을, 그 직전엔 그랜저 국내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Q. 다양한 스토리가 담긴 캠페인을 만드셨어요. 쏘나타 디 엣지 캠페인 중 디지털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캠페인은 무려 5부작 드라마예요. 어떻게 기획하셨나요?
쏘나타는 헤리티지가 있는 현대자동차의 대표 브랜드이지만 반대로 올드한 이미지가 있었어요. 기능이나 디자인적으로 새롭게 바뀐 이번 쏘나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따라서 ‘익숙함도 완전히 새롭게’라는 콘셉트로 제안했어요. 신기능 소구를 위한 USP 디지털 필름도 콘셉트에 맞게 드라마를 흉내낸 광고 영상이 아닌 진짜 드라마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실제 드라마 감독, 작가, 스태프 분들과 함께 작업했죠.
Q. 드라마와 광고는 제작 기간이나 연출 방식도 다른데, 해보니 어떠셨나요?
촬영장에서 즉흥적으로 들어간 부분들이 많아요. 광고 촬영 현장에서는 동선이나 스케줄이 계획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내는 데 제한이 있는데, 드라마 스토리 안에서는 움직임이나 대사를 바꿀 여지가 꽤 있더라고요. 또 다른 점이라고 하면, 제작 기간 차이도 크게 느껴져요. 극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해 한 컷을 다양한 각도에서 찍는데, 그러다 보니 한 씬을 여러 번 촬영을 해야 하고 씬마다 A컷이 필요하죠. 촬영 시간으로만 보면 일반적인 TVC의 3배 이상인 것 같아요. 광고 촬영이 100m 달리기라면 드라마는 철인 3종 경기 정도?
Q. 넥쏘 캠페인은 영화 형태로 만들어졌어요.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넥쏘는 수소차예요. 공기 중 산소와 화학 반응을 일으켜서 전기를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미세먼지를 걸러내요. 달리는 공기청정기죠. 처음에는 넥쏘의 이런 친환경 요소를 콘셉트로 옥외 광고를 제작해 달라는 게 광고주의 요청이었어요. 옥외 광고 안에 필터를 설치해 공기를 빨아들인 부분만 까매지는 것을 보여주려고요. 그러다 그걸로 QR코드 형상을 만들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럼 그 QR코드를 단편영화 입장권으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로 발전됐어요. 보고 단계를 거치며 옥외 광고가 아닌 단편 영화 단독으로 오케이까지 받았죠. 그렇게 미세먼지로 콧구멍이 없게 진화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콧구멍이 있는 넥쏘가족이 이사와 벌어지는 단편영화 ‘콧구멍의 탄생’이 제작되었어요. 이 프로젝트도 칸 영화제 국내 최초로 상을 받으신 송일곤 감독님, 이민휘 작곡가님, 넷플릭스 〈킹덤〉 조명 감독님 등 실제 영화 스태프분들과 작업했어요.
Q. 이전에도 보령제약 용각산 쿨 캠페인을 통해 시나리오 작업을 해 오셨어요. 광고 안에서의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이유가 있나요?
광고도 스토리 있는 스타일이 있지만 장초수 콘텐츠 광고에 사람들을 붙잡아 두려면 특히나 스토리가 있어야 해요. 아무리 멋진 영상미를 가진 콘텐츠라 해도 견딜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특히 요즘같이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는 스토리 있는 콘텐츠여야 한번이라도 눈길을 받는 것 같아요. 단, 그냥 스토리가 아닌 좋은 스토리여야 하죠.
Q. 아트디렉터로 이노션에 입사하셨는데, 카피와 시나리오 작업도 많이 하셨어요.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제 아이 둘이 어릴 때 늘 제 양팔에 머리를 기대고 잠을 청했어요. ‘걸리버 여행기’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에 원작을 축약해서 들려주다가, 어느 날 같은 얘기만 하다 보니 제 스스로 지겨운 거예요. 그래서 조금씩 변주를 하며 이야기를 지어냈죠. 걸리버가 시력을 잃었다거나, 거대한 게와 새우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다거나 하는 식이었어요. 아이들이 스토리가 마음에 안 들면 잠에 들지 않아서 꽤 오랜 기간동안 좋은 이야기를 짜내려고 했죠. 점점 기준이 높아지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시나리오를 쓰는 능력이 트레이닝이 되었어요. 그 즈음에 처음 장초수 영상 콘텐츠를 만들 기회가 있었어요. 실제 모델하우스에서 다양한 아파트 신기술을 보여줘야 하는 숙제였는데, 그냥 팩트만 노출하기엔 너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중년 남자가 우연히 모델하우스에 방문했다가 가족들을 아예 데리고 와서 몰래 사는 스토리를 제안했죠. 기생충처럼요. 그때 좋아하던 클라이언트의 반응을 보고 스토리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거 같아요. 카피 쓰는 연습은 저연차 사원 때 카피 시니어분이 해주셨던 말씀이 있어요. “현석아 너도 언젠가 CD가 되려고 할 때 카피 쓰는 능력이 너의 발목을 잡지 않게 지금부터 연습을 해.” 그 뒤로 카피라이팅 능력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던 거 같아요.
Q. 그럼 CD님은 스토리나 시나리오를 짤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쓰시나요? 광고 콘셉트나 카피와는 다른 관점이 요구될 것도 같고요.
개인 작업이 아니라 브랜드나 광고주가 풀었으면 하는 숙제를 받고 콘텐츠로 해답을 내놓는 일이잖아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건 ‘문제를 어떻게 풀지?’예요. 재미만을 위하는 건 제 만족이고, 클라이언트의 니즈도 충족해야 하죠. 스토리를 만들 때는 제가 콘텐츠를 볼 때 느꼈던 점을 생각해요. 메시지를 담고 있되 억지스럽지 않고, 직접적이지 않은 세련된 방법으로 전달하려고 하죠. 또 클리셰가 많아지거나 호흡이 늘어지지 않도록 고민해요.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영역에서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Q. 최근 한국광고학회 올해의 광고상 대상을 받은 ‘Outclass GRANDEUR’ 캠페인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그랜저가 이렇게 감각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프리미어 촬영이 정말 고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떤 과정이었나요?
ACD일때 2분짜리 포토플레이 프로젝트를 리드하셨던 배금별 상무님이 직접 제안 주셨어요. 결과는 너무 좋았지만 과정이 정말 힘들었어요. 2분을 포토로 채우려면 작업량이 엄청나거든요. 4일 간 레이 작가님, 목정욱 작가님과 수도권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스틸과 영상을 촬영했어요. 동선이 너무 복잡하니까 운전하는 스태프 분도 헷갈리셔서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 보니 다른 장소에 와 있던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유명한 작가님들과 함께 하면서 많이 배웠죠. ‘한 분야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최고가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Q. 그랜저의 프리미엄한 이미지를 살리면서도 젊은 감각을 내기 위해 어떤 고민이 있었을지 궁금해요.
예전에 그랜저가 가지고 있던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버리도록 설득한 기획이 대단한 것 같아요. 타깃의 연령대를 낮추려면 그들의 라이프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기에 다양성을 더하면서도 힙하고 젊은 느낌을 내려고 했어요. 또 과감함도 있었어요. 한번은 포토 작가님이 슈트 입은 모델을 땅바닥에 앉히고 휠에 기대게 하신 거예요. ‘슈트를 입고 땅바닥에?’ 저도 익숙한 느낌이 아니라서 반신반의하며 모니터를 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기존 방식이나 규범을 의식하지 않는 거잖아요. 어쩌면 저희가 바라던 힙한 장면이었는데, 저도 주저했던 거죠. 기존에 알던 걸 깨는 느낌을 받아서 그때 영감을 많이 얻었어요.
"메시지를 담고 있되 억지스럽지 않고, 직접적이지 않은 세련된 방법으로 전달하려고 하죠."
Q. 올해 정식으로 CD가 되셨다고 들었어요. CD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겪는 즐거움과 어려움은 이전과는 다를 것 같아요.
마냥 즐거울 것 같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프로젝트를 리드하면서 처음과 끝을 책임진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제시한 방향이 조금만 어긋나도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헛수고 하는 게 되니까 부담도 전보다 훨씬 늘었죠. 음, 즐거움을 말할 차례네요. 책상 공간이 조금 넓어졌다!
Q. 여러 아이디어 중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고르는 능력이 중요한 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임도 크고요. CD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아이디어란 무엇인가요?
잘 고르는 건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내게끔 하는 게 어려워요. 팀원들에게 팁을 주거나 길을 보여줘야 하죠. 좋은 아이디어는 회의가 끝나고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여요. 감도가 높은 사람들이 모여 합의를 이뤘으니 누가 봐도 좋을 수밖에 없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예요. 초반 회의에서 단초가 될만한 것들을 골라내서 발전시키는 게 CD의 역할인 것 같고요.
Q. 캠페인을 함께 진행하는 팀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도 필요할 것 같아요. 캠페인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한 CD님만의 기준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기준보다는 루틴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기획팀에서 프로젝트 OT를 해줄 때 자료를 먼저 받아서 왜 이런 과제가 나왔고, 클라이언트 상황이 어떤지 공부해요. 기획 OT가 끝나면 제가 정리를 해서 제작팀에 다시 이야기를 해줘요. 공부를 먼저 하고 들으면 보는 시야나 생각이 달라져요. 저도 듣고 바로 정리를 할 수는 없으니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고, 제작 입장에서 다양한 문제를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팀원들에게 다시 이야기해 주면 도움이 되고요. CD가 처음에 정확한 방향을 잡지 않으면 의견이 쏠릴 때 휩쓸리기 쉬워요. 광고주의 메시지와는 다르지만 괜찮은 아이디어의 유혹도 많거든요.
Q. 49호에 소개된 이노션 자체 IP ‘보스토끼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셨다고요. 사이드프로젝트 형식이라 업무와는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는 버겁지만 정신적으로는 정말 재밌어요. 사실 브랜딩을 하려면 창업을 하든가, 브랜딩 회사를 다니든가 해야 하잖아요. 퇴사를 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아요. 또 제가 이노션에서 상대하는 회사들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요. 스몰 브랜드들을 접할 기회가 없다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브랜딩 단계를 하나씩 밟아 나가다 보니 더 이입하고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막걸리 제품을 만들 때는 제가 한강주조를 다니는 것처럼 했어요. 새삼 사명감도 느꼈고요. CD가 되면 실무 아트 작업은 시니어 아트디렉터에게 맡기는데, 홀가분하면서도 아쉬운 점이 있었거든요. 일에서 포기해야 했던 부분을 여기서 채울 수 있었죠.
Q. 작은 회사와 진행한 경험이 기존 작업들을 하는 데에도 영향을 줬나요?
더 디테일해진 것 같아요.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요.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고 브랜드와 긴밀하게 함께 작업하니 제작을 넘어서 제품 이면의 매출이나 브랜드의 상황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됐어요. 그게 다른 프로젝트를 할 때도 도움이 되고요.
Q. 보스토끼는 이번 호 주제와도 잘 어울리는 캐릭터 같아요.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취향과 개성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다는 점에서요. 새로운 세대가 이끄는 변화라고 느껴지는데, CD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초반 캐릭터 회의할 때 이견이 많았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더 귀여워야 하지 않을까, 친근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것들과 차별점이 없다는 데 의견이 모였어요. 대세에 휩쓸리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중심이고 까칠하지만 맞는 말을 하는 캐릭터를 만들었죠. 광고인은 항상 을이잖아요. 근데 이 친구는 갑질 토끼예요. 브랜드와 계약할 때도 조건이 콘텐츠를 저희 마음대로 하겠다는 거예요. ‘우리가 그쪽에 귀속되지 않고, 콘텐츠는 저희가 알아서 합니다’라는 거죠. 그게 요즘 세대와 맞는 것 같아요.
Q. 그만큼 개성과 취향이 중요시되는 사회가 된 것 같아요. 그럼 CD님의 취향은 어떤가요?
신기하게 남들이 꺼려하는 것에 눈이 가요. 노멀한 것들엔 눈이 안가고. 그리고 한번 마음에 드는 무언가 생기면 어떻게든 구하려 하는 거 같아요. 얼마전 갔던 해외 선물샵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든 난쟁이 인형이 자꾸 생각나네요. 캐리어 안에서 손가락이 부러질 게 뻔해서 안 샀는데 아직도 아른거려요. 다음에 제 눈앞에 또 보이면 그땐 바로 살 거예요. 그리고 성격상 심심한 걸 잘 못 참아요. 주말에도 가족들이랑 놀러 가거나 하다못해 아이쇼핑이라도 나가야 해요. 늘어져서 쉬거나 하는 적이 없던 거 같아요. 핫하거나 새로운 건 꼭 가보거나 찾아보죠.
Q. 활동적인 면이 일과 연결된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을까요?
있죠. 돌아다니다 좋은 글이나 생각나는 게 있으면 바로 아이폰 메모장에 적어요. 그런 순간들을 적은 걸 모아둔 노트 제목이 ‘히뜩’이에요. 광고계에서 쓰는 은어 인데 히뜩이라는 이름의 메모장에 온갖 걸 다 적어둬요. 메모를 변형해서 실제 카피로 쓴 적도 있어요. 에버콜라겐 프로젝트때 쓴 “언니, 뭐 믿고 콜라겐 안먹어요? 나도 먹는데”는 딸이 캠핑장에서 했던 재미있던 말을 적어뒀다 변형한거구요. “현빈보다 잘나보자. 헤어만큼은”이라는 탈모 개선 샴푸 카피도 여행에서 발견한 식당 벽의 낙서 글귀 적어둔 것을 조금 꼬아서 활용했어요.
Q. 올해 CD로서의 목표나,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 나가고 싶으신지 듣고 싶어요.
얼마전 칸 라이언즈에 갔다왔어요. 회사 참관으로 갔었는데, 언젠가 저도 수상자로 가보고 싶어요. 그간 현업이 바빠서 출품 시도를 못 하고 있었거든요. 단기 목표는 국제 광고제에서 수상하는 것, 그리고 전형적인 광고 포맷이 아닌 재미있는 프로젝트도 해보고 싶어요. 그게 제가 안 해본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요. 장기 목표는 인터넷에 제 이름을 검색하면 소설가 방현석님보다 제가 더 노출되는 것이에요(웃음).
방현석 CD와
촬영장에서 늘 함께하는 것
크록스 리얼트리 컬렉션
원래 좋아하는 브랜드여서 자주 신어요. 편안하고, 디자인도 다양하고, 취향을 담아 꾸밀 수 있잖아요(꾸미지는 않지만요). 침체기를 겪고 다시 살아나게 된 브랜드의 스토리도 놀랍고요. 촬영하다 보면 발이 쉽게 피곤해지는데, 그럴 때 가장 편해서 늘 신습니다. 이 제품은 패턴이 마음에 들어서 직구로 구했는데, 요즘은 연예인 송민호 씨가 TV에서 신은 뒤 인기가 많아져서 자주 보이더라고요. 참고로 제가 먼저 샀어요. 진짜로.
BRAUN BC02XB (여행용 시계)
가족 여행이나 장거리 촬영갈 때마다 들고 다니는 애착 시계예요. 직관적인 디자인이어서 시간을 맞추는 것도, 알람을 끄는 것도 단순해요. 자기 전에 침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뜨려 놓고, 잠이 덜 깬 채로 걸어가서 꾹 누르면 정신이 듭니다. 핸드폰이나 디지털 시계처럼 복잡하게 조작하지 않아도 되고, 알람 시간에 멈추지 않으면 점점 소리가 커지는 것도 인성이 있는 것 같아 귀엽고요.
Creator's Works
Creator's Essay
“신기하지?
저 긴 코를 손처럼 쓰는 거야.
알이 아니라 새끼를 낳고
큰 덩치와 다르게 풀만 먹는데.
그리고,
똥은 서영이 몸만큼 싼다. 하하.”
3살 딸아이와 처음 간 동물원,
주차장 입구 꽉 막힌 차들 중 한대의 운전석에서
책에서만 보던 코끼리를 실제로 보여줄 생각에 들뜬 내 머릿속으로 되짚은
코끼리란 동물에 대해 아이에게 해줄 이야기
코끼리 우리가 가까워지자, 나의 손을 놓고
달려가던 아이가 코끼리 우리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을 뻗으며 좋아하며 외친다.
“우와! 우와!
비둘기다!”
코끼리 우리 속을 한가롭게 거니는 비둘기들이
자신을 따라왔다고 생각한 걸까.
그녀는 여전히 아파트 산책길에서 보던 친숙한 비둘기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참을 부르고 손을 흔들다 비둘기들이 날아가고서야
코끼리를 발견한 듯한 서영은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았다.
코끼리의 표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지만,
사람이었으면 분명 무안했을 코끼리를 뒤로 하고
이번엔 기린을 보여주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
그래, 코끼리는 임팩트가 약하지.
기린은 일단 목 길이 때문에 놀랄 거야.
너무 놀라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짧은 걱정이 스쳐 갔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마중이라도 나오듯
걸어 다니는 커다란 기린이 가까워져 올 때쯤,
서영이가 소리쳤다.
“우와! 우와!”
안도의 한숨일까
뿌듯함일까
무언지 모를 감정이 올라오려 할 때였다.
“뽀로로 풍선이다!”
어쩌지.
명언이 충돌한다.
그쯤 되니
3번째 보여줄 동물계획은
의미가 없어졌다.
“우와! 개미다!”
“우와! 강아지!”
“잠자리다!”
누가 들어도 힘없는 바퀴 소리를 내며
발이 닿는 대로 유모차를 밀면서 동물원을 돌아다니다
가끔 들려 오는 그녀의 외침들 속에
삶은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는 일이
사실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며
그렇게 첫 번째 동물원 나들이는 끝이 났다.
그날 밤,
지치지도 않는지 공놀이를 하던 그녀는
갑자기
머리마저 자신의 무릎에 숙여 넣고
몸을 힘껏 동그랗게 말고는
나에게 말했다.
“아빠
난 이제 공이에요.
한번 굴려봐요.”
한참을 웃다 문득
또 생각한다.
그래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게 인간이지.
아니 근데,
오늘 두 가지 명언이 충돌하네.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진 않는다.
계획대로 되진 않는 게 인생이지만,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 인간인 건가?
아…
이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