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necting The Dot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진광혁
INNOCEAN
오후 여섯시반이 되면 진광혁 디렉터의 노트북은 꺼진다. 그의 시선은 화면이 아닌 사람을 향하고, 머릿속은 책과 영화로 채워진다. 그렇게 책상을 벗어나 찍은 점들이 쌓이면 선이 된다. 그리고 진광혁 디렉터는 다시 노트북을 연다. 그리고 그때, 선들은 이어져 비로소 면으로 완성된다. 그렇기에 진광혁 CD의 일상 속 점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Interview
Q. 작년에 이노션에 오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작업들을 진행하셨나요?
네이버와 현대카드 컬래버레이션 캠페인이랑 신세계 쓱데이 캠페인, 라퓨즈 론칭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그 밖에 카카오 페이지와 넥슨과 현대카드 컬래버레이션 캠페인도 진행했고요. 이노션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많지는 않네요(웃음).
Q. 디렉터님 작업은 전반적으로 간결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어떤 기준으로 광고를 기획하고 제작하시나요?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쉬워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광고를 만들 때 초등학교 2학년이 이걸 보고 이해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둬요.
Q. 방송사에서는 그 기준을 중학교 2학년이라고 둔다고 들었는데, 그보다 어리네요(웃음).
그런가요? 요즘 중학생들이 얼마나 영악한데요. 초등학생 2학년은 믿을만 해요. 제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들은 저한테는 당연히 쉽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회의 때 팀원들에게 제 아이디어가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해요.
Q.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아홉 살의 사고방식과는 멀어지잖아요. 그러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광고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할 것 같아요.
광고 일을 한 지 15년이 되었는데, 갈수록 요소들을 덜어내 하는 편이에요. 많은 걸 담고 설명하려 하기보다는 덜어내면 덜어낼수록 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러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Q. 특히 네이버와 현대카드 컬래버레이션 캠페인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네이버와 현대카드 캠페인은 애초에 한 가지 정해진 점이 있었어요. 네이버와 함께 한다는 점을 보여줘야 하니까 오프라인의 오브젝트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온라인 관련한 것들을 활용해 달라는 요청이었죠.
Q. 광고에 온라인 앱을 이용하셨죠?
네. 인터넷 브라우저나 네이버 사이트 내 검색 창을 활용할 수도 있었지만 앱을 선택했어요. 스마트폰 안에서 네이버 앱과 현대카드 앱이 만나게 하면 만났다는 사실을 쉽게 전달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스마트폰에서 앱을 길게 누르면 떨리잖아요. 아이폰에서는 삭제될까 봐 두려워하는 듯한 제스처 같은데, 그걸 좋아서 떨리는 감정으로 치환해 봤어요.
Q. 또 다른 캠페인 얘기도 하고 싶어요. 신세계 쓱데이는 그룹의 할인 행사인데 ‘경쟁’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셨더라고요.
쓱데이 캠페인의 경우 PT에 참여했는데요. 신세계 그룹 내 19개 계열사가 참여하는 규모를 잘 드러내는 게 숙제였죠. 그걸 들었을 때 ‘그게 뭐?’ 했어요. 저 같은 소비자한테 어떤 베네핏이 있는 건가 싶었죠. 자본주의에서는 기업들이 경쟁할수록 소비자가 더 좋은 가격에 좋은 제품을 얻잖아요. 그러니 같은 그룹에 속한 식구더라도 경쟁하는 콘셉트라면 소비자한테 더 큰 베네핏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Q. 역시 관점을 바꾸어서 나온 콘셉트네요.
되도록 새로운 관점을 담아 보려고 해요. 그래서 과제를 받으면 한 번 부정하고 시작해요. 쓱데이 캠페인을 준비할 때 ‘19개 계열사가 참여하는 게 뭐가 대수지?’라고 생각한 것처럼요. 광고주의 숙제를 의심하고 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기존 과제를 살짝 비껴가면서 차별화된 크리에이티브가 나오기도 해요.
Q. 매번 새로운 관점을 풀어내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새로운 관점은 새로운 세계에요. 그리고 그 세계는 곧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이 막힐 때는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요. ‘그 선배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후배라면 어떤 카피를 썼을까?’ 그렇게 어느 사람을 놓고 과제를 바라보다 보면, 제 안에서 다른 관점이나 세계가 만나는 느낌이 들어요. 가령 어떤 캠페인 매니페스토 카피를 써야 하는데 뻔하고 광고적인 카피밖에 안 떠오를 땐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훈이라면 어떤 글을 썼을지 그려 봐요. 그럼 쉼표 하나도 신중해지더라고요.
Q. 만들어 온 결과물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은 뭐예요?
4년 차 때 했던 박카스 캠페인인데요.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라는 카피를 담은 캠페인이에요. 처음으로 제가 쓴 카피와 아이디어가 통으로 팔린 캠페인이거든요. 당시 어린 마음에 엄청 기뻤는데,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네요.
Q. 광고인이 되기 전에 좋아한 광고가 있나요?
따듯하면서도 위트가 묻어나는 광고를 좋아했어요. 예를 들면 박카스나 미떼 광고처럼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것들이요. 이런 얘기 하면 옛날 사람 같나요(웃음)? 어릴 때 그런 광고들을 많이 보고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이런 상상도 했어요. 어느 가족이 둘러앉아서 저녁 식사를 하다가 TV에 나오는 제가 만든 광고를 보고 가족이 모두같이 웃는 거예요. 혹은 어느 자식이 혼자 밥을 먹다가 내가 제작한 통신 광고를 보고 엄마한테 전화를 거는 거죠. 내가 그런 광고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싶어요. 지금도 그런 톤의 광고를 제일 좋아하는데, 요즘은 그런 작업이 잘 안 보이는 거 같아요.
Q. 주로 일상에서 영감을 얻으시는 것 같아요.
사람 보는 게 재미있어요. 만약 길에서 어떤 커플이 싸우고 있으면 말투나 손짓 등을 지켜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걸 기록해 두지는 않지만, 그렇게 관찰한 것들이 어느 순간 다시 떠오르곤 해요. 아이디어가 정말 안 나올 때면 지하철을 타기도 해요. 만약 40대 주부를 타깃으로 하는 광고를 만든다면 승객 중에 비슷한 타깃이 한 명 정도는 있을 거예요. 그럼 그 분을 보면서 내가 어떤 말을 해야 이걸 사줄지 곰곰이 생각하는 거죠. 그럼 확실히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Q. 디렉터님의 업무 패턴이 궁금해요.
저는 9 to 6으로 일해요. 업무 시간 외에는 일을 안 하려고 해요. 촬영이나 후반 작업을 할 땐 늦게까지 일할 때도 있지만요. 그래도 내부 회의나 아이데이션은 업무 시간을 지키려고 해요. 얼마 전만 해도 광고 업계에는 이런 문화가 흔치 않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겠다 싶더라고요. 물론 주변에 야근을 강요하는 선배들이 없었던 게 참 행운이죠. 제가 일을 그렇게 배웠으니, 저도 후배들에게 그런 선배가 되어야겠죠.
Q. 좋은 선배네요 . 이노션의 CD로서 프로젝트를 이끌고 계신 데, 구성원의 동기를 높이기 위해 신경 쓰는 점도 있나요?
제가 팀원들에게 ‘자극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요. 우린 한 배를 탔고 나도 열심히 노를 젓겠다는 의지이기도 하고 . 그리고 저도 아이디어를 많이 내야지,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판단할 수 있는 거울이 생기고요.
Q. 글을 좋아해서 카피라이터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카피라이터였을 때와 CD가 된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카피라이터는 카피만 쓰면 되는데 이제는 결과물이 메이드 되도록 만들고 리드를 해야 하니까 그게 좀 힘들죠. 반대로 장점은 제아이디어, 의견을 좀 더 주장할 수 있는 작은 힘은 있다는 거? 물론 그런 힘이 위험하기도 하지만요.
Q. 15년간 광고 일을 하셨는데, 지금까지 일할 수 있게 만든 광고의 매력은 뭔가요?
내가 만든 결과물을 많은 사람한테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저는 창작하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창작물을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 쉽지는 않잖아요. 돈도 들고 매체도 워낙 많고요. 근데 광고 일은 그게 보장이 돼요. 그냥 창작으로만 끝나지 않고 전파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죠.
Q.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업무 외 목표도 좋아요.
CD로서는 이제 2년 차라서, 이 자리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업무 외에 개인적인 목표라면 여러 가지 장르의 창작물을 만들어 내고 싶어요. 예전에 회사 다니면서 친구들이랑 인디 밴드가 공연하는 라이브 클럽을 운영했거든요. 그렇게 음악도 다시 하고 싶고요. 아, 그리고 틈날 때마다 소설도 쓰고 싶어요. 언젠가는 작은 공모전에라도 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CREATOR’S FICTION
Writer.진광혁
예언자의 땅
그해 봄에도 신백은 아름다웠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강물은 내리쬐는 봄볕 아래 제 몸을 풀어놓았고, 둑방길엔 신백의 상징인 매화가 듬성듬성 피어나고 있었다. 사실 매화 마을이라 부르기엔 그 꽃대궐의 규모가 소박한 한상이었지만, 봄마다 매화 축제로 벌어들이는 관광부수입이 주민들에겐 꽤나 짭짤했고, 무엇보다 제 삶의 터전을 수식하는 말이 꽃명이라는 사실에 소도시 사람들의 작은 마음마다엔 괜한 힘이 들어갔다. 걷는 자의 정수리부터, 땅바닥에 코 박은 채 동냥하는 자의 뒤통수에 이르기까지, 매화 꽃잎이 모두의 머리 위로 평등하게 떨어지던 어느 봄날, 새로운 진보 대통령으로 온 나라가 조급한 희망을 품었던 2004년 봄 어느 날, 매화보다 더 새하얀 순백의 도포를 걸 친 자. 예언자가 이 마을에 나타나리라고는 아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신백의 사람들이 그를 예언자로 부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 마을의 병든 자를 데려오라.
학창 시절 내내 말쑥한 날보다 얼굴이며 몸이며 시퍼런 멍 꽃이 피는 날이 더 많았던 경신. 군 입대 후에도 폭력의 질긴 역사는 이어졌고, 제대 후 마을로 돌아와서는 그 역 사의 패잔병이 되어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며 연약한 오줌을 바지 밑단으로 흘려보냈던 경신. 신이 아저씨, 신이 아저씨, 등신이 아저씨, 신백 꼬마들의 얕은 돌멩이 세례를 능숙하게 가슴팍 트래핑하던 이 마을 공공의 등신. 경신. 예언자가 그의 머리에 손을 대니 두 눈은 일순간 벌겋게 충혈되고, 본인조차 연유를 알 수 없는 굵은 두 줄기 눈물이 야윈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모습이 마치 몇 십 년 만에 다시 제집에 기어들어온 영혼을 육신이 두 팔 벌려 반기는 형상이었다 한다.
또한, 원인 모를 지독한 피부병을 앓던 희진 씨. 굽이굽이 진물이 흐르는 그녀의 날갯죽지에 예언자의 손끝이 슬쩍 미치니, 온 상체에 기생하던 수포들은 이내 종적을 감추었다. 그녀는 그날 아침 난생처음 아무런 고통 없이 브라를 가슴에 걸치고 철제 후크를 마른 등에 채웠다고 한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 든 매화나무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일주일간 총 백오십일 명의 크고 작은 병자들을 치료하니, 신백의 사람들은 한편으로 그의 힘이 두려웠지만, 이 땅의 모든 불구를 일으켜 세워주길 간곡히 희망하며, 그를 예언자로 칭송하기 시작 했다.
- 나는 평화를 선사하러 온 것이 아니다. 너희에게 칼을 주러 왔다.
2004년은 한국 사회가 처음으로 연쇄살인마를 경험한 해이기도 했다. 유영철. 일 년 육 개월간 총 열일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자. 처음 보는 패턴의 범죄행각에 경찰들은 우왕좌왕했고, 시민들은 그런 경찰 당국을 믿지 못했으며, 언론은 그 두 세력 간을 이간질하며 시대의 불안을 장사에 이용해먹던 철이었다. 신백의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을 예언자의 말씀에 기댔다. 어느 날 예언자가 설파한 그 칼의 의미를 들은 후론, 더 그랬다.
- 범죄로 이 땅을 더럽히는 자, 땅에 그 몸이 못 박히게 되리라. 앞으로 범죄자는 뱀으로 살리라.
(다음 이야기는 제 맥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