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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홍성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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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Realistic

Makes 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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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홍성혁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광고가 어렵다는 홍성혁 CD는 스스로를 설득하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애쓴다. 가장 현실적인 디테일에 집중할 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이 만들어진다고 말하는 그에게 배우는 것은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 크리에이티브가 있다는 것.


 

Interview

Q. 광고 일을 시작하신 지 올해로 20년째예요.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셨나요?

영화 전공인데 취업에 집중하는 과가 아니었어요. 광고 분야에서 인턴을 하다가 직업이 된 경우죠.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광고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CD가 된 지금도 힘들어요. ‘오늘 하루만 버티자, 내일 해야 하는 것만 잘 해결해 보자’ 하다 보니까 20년이 됐네요.

Q. 광고업을 하는 동력이나 즐거움을 느끼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즐겁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광고는 단순히 아이디어를 내고 광고를 만드는 게 다가 아니라, 서로 설득하는 과정이 길고 어렵잖아요. 그 과정이 대부분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분위기에서 진행되고요. 그래서 즐겁다는 생각보다는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 오는 안도감이 있어요. 굳이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때인 것 같아요.

Q. 오랜 시간 일하시는 동안 큰 전환점이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꽤 오래 남의 일을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요구를 잘 해결해주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요. CD가 되고서도 몇 년은 더 그랬어요. 그러다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한 발자국 더 내딛다 보니 어떤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이 있었어요. 광고주 임원 한 분이 “하고 싶은 거 있잖아요.” 하시더라고요. 그때 하고 싶었던 걸 밀어붙였고, 진심이 통했는지 반응이 좋았어요. 공중파 3분 광고로 편성됐고, 뉴스 끝나고 바로 단편 필름처럼 방영됐는데 그때 뿌듯함을 느꼈어요.

Q. ‘하고 싶었던 광고’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어떤 걸까요?

어릴 때 광고를 보면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한테 공감을 줘야 할 텐데, 공감이 안 되는 거예요. ‘저런 집에 아무도 안 살 것 같은데’, ‘내 주변엔 저렇게 생긴 사람이 없는데’, 아이를 데리러 오는 할머니가 풀세팅을 한다거나, 신혼부부가 엄청 크고 멋진 집에 살고 그런 거요. 그래서 노메이크업의 얼굴이나 실제로 말하는 대사처럼 현실적인 룩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모순적인 얘기지만 리얼함은 정말 디테일하게 연출해야만 만들어져요. 어렵게 만들고 있죠.

Q. CD는 광고를 만드는 일만큼 여러 사람을 이끄는 것도 중요한 자리 같아요. 팀을 꾸리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CD님만의 방식이 있다면 궁금해요.

저는 하고 싶은 광고를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렸어요. 그래서 팀을 수직적으로 운영하는 편인데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원하는 메시지, 톤, 방향성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할 일을 분담해요. 목표를 선명하게 만들어야 팀원들이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는 신랄하게 단점을 찾죠. 의문이 있으면 없어질 때까지 고민하며 빈 부분을 메워요. 그렇게 생각을 거듭하다가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면 가차 없이 아이디어를 뒤집어요. 그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피곤한 과정이지만 스스로 확신을 가져야 광고주도 소비자도 설득할 수 있으니까요.

Q. 광고를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으신가요?

감성적인 걸 추구해요. 감성을 느낀다는 건 결국 보는 사람에게 공감 가는 이야기라는 건데, 우선 저부터 공감이 되어야죠. 그래서 제가 쓰는 말과 이야기에서 많이 시작하고, 카피도 담백하고 구어체가 많아요. 디테일을 신경 써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요. 그리고 비용 대비 최고의 영상 퀄리티를 내기 위해 현실적인 부분도 많이 체크하는데요. 견적, 로케이션, 스태프 구성에서 여러 가지 상황에 미리 대비를 해요. 꼼꼼하게 계획하면 똑같은 문제 상황에서도 낭비 없이 더 나은 퀄리티를 낼 수 있어요.

Q. 여러 아이디어 중 좋은 걸 고르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CD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아이디어란 무엇인가요?

광고는 시장의 상황에 맞는 아이디어를 내야 해요. 정해진 운동장 안에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죠. 그 다음엔 멋을 부리지 않고 현실적인 인사이트를 내야 해요. 그림에 비유하자면 데생부터 배우고 구성을 하는 것과 같아요. 요즘엔 다양한 매체에서 트렌디한 크리에이티브들이 빠르게 나타나고 사라지다 보니, 데생 같은 기본기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이디어가 최우선이 되기보다는, 진심이 담긴 인사이트로 접근해야 해요. 쉬워야 하고, 마케팅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요. 축구 경기로 예를 들자면, 수비를 뚫고 들어가 골을 넣어야 하잖아요. 무조건 세게, 멋지게, 멀리 차는 플레이는 의미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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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자체가 최우선이 되기보다는,

진심이 담긴 인사이트로 접근해야 해요."

Q. 이노션에서는 꾸준히 자동차 광고를 맡으셨어요. 하나의 대상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게 쉽지 않으셨을텐데, 자동차 광고를 만들 때는 어디에 중점을 두시나요?

차는 그 차를 살 수 있는 소득의 정도에 따라 타깃이 확실하게 나뉘어요. 그래서 예상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어요. 그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차가 새로워져도 우리가 갑자기 다른 행동 양식을 보이진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광고하는 자동차에 콩깍지에 가까운 애착을 가지고 찍어요. 모순되게 들리겠지만, 타는 차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룩, 일상적으로 달리는 길,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멋있는 사람을 멋있는 장소에서 찍는 것보다 그게 더 어려워요.

Q. 전기차 이전의 자동차 광고는 개인의 이야기를 찾아가고, 취향과 관련한 기능을 극대화하는 느낌이었다면, 전기차는 그 새로움을 조명하는 느낌이 강했어요.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으셨을까요?

자동차는 태생적으로 용도를 가지고 태어나요. 차를 잘 몰라도 모양과 크기에 따라 용도를 쉽게 알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전기차는 시장과 산업이 만들어지는 단계잖아요. 그래서 아직 새롭게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브랜드는 이 가능성 넘치는 시장에서 ‘처음’이라는 선도성을 가져갈 기회가 있는 거예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좀더 미래적이고 기술적인 새로움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Q. 현대모비스 ‘모빌리티가 육체라면 소프트웨어는 정신’과 KB금융그룹 ‘아무도 안 된다’ 두 캠페인이 눈에 띄어요. 유쾌하고, 드라마처럼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들을 선택하고 준비하셨는지 궁금해요.

현대모비스 캠페인은 전해야 하는 내용이 어려웠어요. 나도 이해를 못하는 걸 소비자가 이해할 리 없다고 생각했죠. ‘어려운 이야기니까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로 쉽게 보여주자’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였어요. 재미는 그 다음 문제였죠. KB금융그룹 캠페인은 디지털, 높은 조회 수, 타깃들이 공감하는 내용이라는 조건이 있어서 숏필름 형식으로 제안했어요. 사실 시나리오로 광고주를 설득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광고와 장르 자체가 다른데 보고를 하다 보면 광고를 기준으로 리뷰를 하게 되거든요. 진심을 다해 연기까지 하면서 설명을 했죠. 완성된 필름을 보고 나서는 좋아하셨고요. 늘 그렇듯 만드는 것보다 보고가 힘들어요.

Q. 광고 하나에도 정말 많은 버전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요. 어떻게 광고와 잘 어울리는 등장인물이나 배우를 찾으시나요?

리얼하게 공감하려면 모르는 사람이어야 해요. 저 사람 가족을 알고, 뭐 하는 사람이고, 한강변 몇십억짜리 집에 사는 걸 알면 공감이 잘 안 돼요. 리얼한 얼굴에, 연기도 잘해야 하죠. 우선 독립 영화 배우들을 다 살펴봐요. 또 제가 사람 얼굴을 정말 잘 기억해요. 어떤 역할이 필요하면 무슨 드라마에 셋째 사위로 나온 사람을 떠올려서 섭외한다던가 하는 거죠.

Q. 코오롱스포츠 캠페인은 차분한 색감의 영상미도 돋보이지만 감각적인 대사들이 인상적이에요. 열 가지가 넘는 버전을 보면서 계절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문장을 어떻게 다 다르게, 다채롭게 만들었을까 싶더라고요.

힘을 좀 빼고 해요. 예를 들면 웨더 코트라는 옷은 아웃도어를 베이스로 두지만 집 근처에서도 입어요. 도시에서 맞는 비도 자연이잖아요. 그래서 “자연을 더 가깝게, 봄을 더 가깝게.” 이런 표현이 나왔죠. 등산화도 예쁘고 편하면 일상생활에서도 신는데, 그걸 비틀어서 모델이 “등산하려고 샀는데, 등산 빼고 다 다녔네.”라고 하고요. 물건의 용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보고, 우리가 평소에 하는 현실적인 말들을 생각해요. 거기에 공감이 있어요. 평소에 말 잘하는 친구한테 카피를 쓰라고 하면 가끔 잘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힘이 들어가서 일상의 언어를 놓치는 거예요.

Q. 진행하신 캠페인들을 보면 같은 브랜드, 같은 제품을 길게 하신 경우가 많아요. 새로운 제품을 할 때의 설렘이나 어려움과는 다른 느낌일 것 같은데요. 긴 호흡으로 이어가는 캠페인에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제품의 본질은 벗어나지 않으면서 또 다른 팀이 만든 것처럼 새롭게 하는 게 어려워요. 기본적으로 그 브랜드를 잘 알아야 하죠. 그냥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담당자분과 한 팀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애착을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제품을 굉장히 많이 사고요. 그러면 시장이 보이고, 경쟁사도 보이고, 해야 될 것과 하면 안 될 것이 명확해져요. 새롭게 보여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 소비자로서 보기 싫은 것과 보고 싶은 것도요.

Q. 기억에 남는 혹은 어려웠던 작업이 있으신가요?

일을 몰입해서 하기 때문에 온에어가 되고 나면 굉장한 허탈감을 느껴요. 일회용 콘텐츠를 만든다는 느낌, 녹아서 사라지는 얼음 조각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 때 힘들어요. 광고는 온에어 되고 나면 다시 찾아보진 않잖아요. 우리끼리 ‘잘했어’ 이러고 지나가는 일이거든요. 광고는 영상에 크레디트가 안 올라가잖아요. 그래서 제가 만든 광고들을 꽤 자주 다시 봐요. 하나하나 소중하고 짠해요.

Q.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작업에서는 다양한 경험과 개인적인 변화가 주요한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CD님은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가끔 팀원들이 “그런 생각 어떻게 했어요?” 물어봐요. 아이디어가 대단하다는 게 아니라 ‘어디서 그런 걸 주워 왔지?’ 같은 느낌으로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면 퀴즈쇼에서 주인공이 공부해서 답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삶에서 어쩌다가 알게 된, ‘옛날에 도망치다가 본 간판이 이거였어’ 같은 지식으로 답을 맞혀요. 저는 어릴 때부터 맨날 영화 보고 항상 음악 틀어두고,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며 40년을 지냈어요. 그 기억이 자꾸 불쑥불쑥 떠올라요. 어떤 제품 광고를 해야 하면 그 상황에 필요한 장면이나 대사가 떠오르더라고요. 결국 많이 보고 많이 들은 것이 인생에 쌓이는 것 같아요.

Q. 광고는 트렌드와 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보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세상에도 관심이 많아야 할 것 같아요.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하시는 노력이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것만 보고, 좋아하는 것만 깊게 파고드는 성향이 있어요. 새로운 것보다 옛날 것을 더 좋아하고요. 요즘엔 많은 것들이 변하고, 변화를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트렌드라는 게 다수가 좇는 거니까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독특함을 잃어버리기 쉽잖아요. 트렌드를 알아야 하지만 꼭 좋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굉장히 트렌디해졌지만 오히려 다양성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고요. 뭔가 나오면 SNS에 도배돼요. 그 모순이 광고계를 지배한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트렌디하지 않아도 되니까 자기 색깔을 명확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Q. 최근 본 것 중에 흥미롭다고 느낀 것이 있나요?

요즘 제 아들 보는 게 제일 신기해요. 아들 그림책을 보면 그 세계가 굉장히 심오한데요. 아이들도 자기한테 주어진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해요. 귀엽게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와 존중의 기회가 됐어요. 다른 사람의 삶을 쉽게 봐선 안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아이도 애 취급을 하면 안 되고,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다른 곳에서 어떤 모습일지 모르는 거예요.

Q.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신지, 해보고 싶은 브랜드나 분야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저는 자동차를 너무 좋아합니다. 이건 유치원 다닐 때부터 변함이 없어요. 이미 많은 자동차 광고를 해왔지만 여전히 좋아요. 특별히 하고 싶은 차는 없고요. 작은 차는 작은 차대로, 비싼 차는 비싼 차대로 역할이 있고 다 좋아요. 언젠가 제가 직접 연출해보고 싶습니다.

Q. 긴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한 증명이고 기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길을 오래 밟아온 선배로서 광고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자신을 잃지 않으면 좋겠어요. 똑똑한 친구들인데 깎여서 순한 양이 되어버리는 걸 많이 봤어요. 남의 말이나 윗사람 취향에 끌려다니지 않기를 바라요. 자기 색깔은 간직하고,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 존중받으면 좋겠어요. 끝까지 버티시고요. 회사원이 되지 말고 크리에이터가 되라고 말하고 싶네요.


 

홍성혁 CD의

오래된 애장품

 

 

안경

 

고도 근시용으로 나온 안경 중에서 십수 년간 고르고 골라 겨우 구비한 컬렉션. 다 똑같아 보여도 각자의 특징과 역사를 가진 근본 있는 명작들. 하나하나 구하기도 힘들었지만 딱 맞게 피팅하는 게 더 힘들었다. 안경에 매우 예민한 편. 몸에 닿는 것 중 안경보다 중요한 건 없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홍성혁 이미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홍성혁 이미지

 

 

 

 

 

 

일렉기타 (펜더 USA 텔레캐스터)

 

1950년에 탄생. 록의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명기. 텔레캐스터를 즐겨 사용한 기타리스트로는 조지 해리슨, 지미 페이지, 홍성혁이 있다. 대체불가한 빈티지 사운드로 유명하지만 사실 예뻐서 샀다. 연주보다 관상용에 가까운 기타. 그래서 기타 입장에선 너무나 재능 낭비.


 

Creator's Works


 

Creator's ESSAY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에 발맞추는 것이 버겁다고나 할까요?
세상의 빠른 변화는 저를 너무 몰아세웁니다.


요즘 새롭게 뜨는 동네에 안 가본 나를 게으른 사람으로 몰고
차트 1위 음악이 왜 좋은지 모르는 나를 옛날 사람으로 만듭니다.
느닷없이 대세가 되어버린 MBTI는 나를 전형적인 카테고리 속의 사람으로 만들고
새로운 육아법은 나를 생각 없는 아빠로 만들고
새로운 조직 문화는 나를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지게 합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교체되어 버리니
무언가에 관해 깊이 생각하고
의견을 갖는 것도 점점 힘들어집니다.
괜히 뒤처진 기분마저 들게 합니다.


분명 새로움을 추구하고
변화해야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건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좋은데
낡았다는 이유로
사라져가는 게 싫습니다.
사물도, 공간도, 문화도, 사람도.

 

새로운 것도 결국

낡은 것이 될 거면서.

소공동 뒷골목이 그대로 있어 주길 바라고
80년대 스타일의 액션 영화가 계속 나와주면 좋겠습니다.
Mr. Children이 새로운 시도보다
내가 듣던 그대로의 음악을 계속 들려주길 기원합니다.
마포집 돼지갈비의 양념도 절대 요즘 입맛에 맞추지 않길 바랍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당장 내일까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광고주 보고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까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늘 그래왔던 것처럼
오래된 서랍과도 같은 머릿속을 뒤지고 또 뒤집니다.


잡동사니 사이에 뭔가 있겠거니 하면서.
(아직은 없습니다)


새로움은 정말 이렇게나 나를,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20년 가깝게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새로움에 관해선 여전히 능수능란하지 못합니다.
이 얘기를 하려고 이토록 장황하게 글을 써 내려 온 건가 싶어 민망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밤늦은 지금도 새로움에 쫓겨 궁지에 몰리고 못 보던 것을 만들기 위해
세상을, 광고주를 원망하다 결국 본인을 가장 원망하고 있을 수많은 사람에게 진심으로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만 어떻게 잘 버텨봅시다.
그리고 내일 다시 새롭게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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