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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Technology’의 활용법
박명진 Park, Myung-Jin
국장 / 컨텐츠 크리에이티브 센터장
Director / Head of Contents Creative Center
테크놀로지를 그 자체로 이해하기보다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해 더 고민한다는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박명진 컨텐츠 크리에이티브 센터장. 그에게 테크놀로지 방법론에 대해 물었다.
Interview
Q. 이 공간 자체가 최근 진행된 프로젝트라고 들었습니다.
이곳은 기아자동차의 브랜드 체험관 ‘비트360’으로 제가 맡아 가장 최근에 완성한 프로젝트입니다. 제작 기간은 6개월 정도 걸렸지만, 준비 기간까지 약 2년 정도가 소요된 만큼 특히 애착이 있습니다. 그 이전에 했던 작업도 일반적인 광고 업무와는 달리 스펙트럼이 넓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작년에는 ‘파워배틀 와치카’라는 풀 3D 애니메이션을 현대자동차와 다른 파트너사들과 함께 제작해 TV와 영화관 그리고 뮤지컬에서 선보였고요. 올해는 넷플릭스 Netflix에서 배급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Q. 자동차 회사를 테마로 한 애니메이션 작업이 흥미롭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유스마케팅 Youth marketing(어린이를 포함한 잠재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마케팅)을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였습니다. 미래 잠재고객들과 보다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방법을 찾아 제안한 것이고요.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실제 현대자동차가 출시하는 모델들을 활용한 것입니다. 예컨대 쏘나타는 ‘소나’라는 식으로 말이죠.
Q. 오늘날의 광고는 TV뿐 아니라 다양한 채널과 그에 맞는 테크놀로지가 활용되고 있는데, 광고 업계에서 테크놀로지는 어떤 의미로 이해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마케터의 입장에서 보는 테크놀로지의 중요성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엔지니어처럼 그 자체로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더 고민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비트360에도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사용된 것으로 아는데,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봤으면 합니다.
그동안 기아자동차는 전체 라인업을 전시하는 공간이 없었습니다. 약 열두 대의 모델이 전시된 비트360은 고객들이 기아자동차의 전체 라인업을 볼 수 있는 최초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죠. 목표 고객들의 사용상황을 고려하여 SUV는 야외에,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모델들은 실내 카페 주위에 그리고 프리미엄 차종들은 살롱 쪽에 배치돼 있습니다. 각 공간에는 도슨트가 상주해 방문자들을 응대하고 있고요. 그런데 때로는 그런 개입을 불편하게 느끼는 고객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국내에서 최초로 전시에 홀로렌즈 기술을 접목하여 디지털 도슨트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원하시는 분들에게만 홀로렌즈를 제공하고 있는데, 홀로렌즈를 착용하면 자신이 바라보는 실제 차량을 배경으로 사전에 맵핑 mapping된 정보를 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엔진과 관련된 가상정보를 실감나게 고객의 눈앞에서 보여주면서 디지털 도슨트가 이 차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고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때 가상현실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신기술로만 꾸며진 공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나 흥미는 상대적으로 빨리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반면에 스토리가 있는 공간에 테크놀로지가 접목됐을 때 수용도를 더 높일 수 있습니다.”
Q. 현재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테크놀로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역시 혼합 현실 Mixed Reality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에 비트360에 그 기술을 적용하며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개발 이후 계속해 테크놀로지를 발전시키고 있는 단계인 만큼 이를 실제 업계에서 사용하기에 아직까지는 제약 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었죠.
Q. 개인적으로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남들보다 기술 적응력이 높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직업적 특성도 있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수용력은 높이려고 하는 편이죠.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보면 사용해 보려고 합니다. 그 대신 일반적인 선택을 따르기보다 저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려고 해요. 제 생활패턴이나 행동 방식에 더 맞는 것이요.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아이패드보다는 문서 작업이 용이한 MS 서피스를 태블릿으로 사용하고, 고사양의 최신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보다는 휴대가 간편한 아이폰SE를 사용하는 식이죠. 새로운 제품을 접하는 나름의 소신이라고 할까요. 최근 사용하고 있는 전자담배 브랜드인 아이코스도 매우 혁신적이라 생각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것이 낯선 광경이었지만, 어느새 회사 직원들 중 상당수가 사용하고 있을 만큼 빠르게 대중화되고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Q. 비트360처럼 크리에이티브를 구현할 때 테크놀로지의 사용 빈도를 많이 고려하시나요?
신기술로만 꾸며진 공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나 흥미는 상대적으로 빨리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반면에 스토리가 있는 공간에 테크놀로지가 접목됐을 때 수용도가 더 높다고 믿습니다. 일부 클라이언트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가 아닌, ‘최신’ ‘최초’와 같이 홍보성 이슈를 요구하곤 합니다. 이목을 끄는 요소가 있어야 고객을 모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그럴 경우, 저는 일회성 방문은 유도할 수 있지만, 지속적인 재방문을 이끌어내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해외 자동차 브랜드를 시작으로 자동차 전시장을 디지털화 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초기의 관심도에 비해 그 영향력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부정적 평가가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스토리텔링과 메시지가 중심에 있고 그것을 가장 극대화해 보여 줄 수 있는 테크놀로지를 찾는 것이 옳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죠.
Q. 요즘 광고·홍보 업계에서 테크놀로지를 고려하는 비중은 어떤가요?
아마도 마케팅 에이전시들이 비슷한 상황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새로운 테크놀로지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에요. 일전에 킥 스타트(소셜 펀딩 사이트)에서 매우 매력적인 제품 아이디어를 보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해 새로운 프로젝트에 접목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이후에 다시 확인해보니 그 제품의 기술적 오류에 대한 소비자 항의가 빗발친 것을 확인하고 계획이 무산된 바 있어요. 테크놀로지가 너무 빨리 변하기도 하고, 데모버전과 실제 제품의 품질 차이도 심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일이 더 많아요. 그래서 많은 에이전시들이 디지털 또는 테크놀로지의 시대를 강조하지만, 당장의 수익성과 업무 효율성을 고려하다 보니 여전히 영상 콘텐츠가 캠페인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어요.
Q. ‘4차 산업혁명’도 테크놀로지가 중심에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변화를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출장이나 여행을 통해 중국을 자주 왕래하는 편인데, 지난해부터 중국에 대한 인상을 달리 갖게 됐어요. 요즘 중국에서는 길거리 노점상에서조차 현금 대신 QR 코드로 전자결제가 가능하더라고요. 식당에서도 결제 방식을 먼저 물어보고요. 아직 국내에서는 카카오 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를 오프라인에서 사용하는 일은 드물잖아요. 그런 면에서 중국의 결제 문화가 이만큼이나 상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자전거 공유 서비스도 매우 보편화돼 있고요. 그 많은 사람들이 매일 QR 코드를 사용해 주변에 비치된 자전거를 사용합니다. 한국에서는 시도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중국에서는 일상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보며 삶에서 테크놀로지가 침투하는 속도가 제 예상보다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국내의 상황은 어떻다고 보시나요?
한국이 IT 기술 강국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대체로 인터넷 속도나 모바일 환경에서 발생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비자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이나 고객 서비스에 테크놀로지를 접목하는 데에는 오히려 보수적인 것 같아요. 앞서 언급한 비트360에 접목된 테크놀로지도 뉴욕의 마이크로소프트 매장에선 2년 전에 이미 선보인 것들이지만, 저희가 사용하려고 했을 때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라는 점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한국은 새로운 기술을 과감히 도입하기보다는 초기 위험성이 제거된, 즉 검증된 기술을 들여오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Q. 변화의 속도가 빠른데, 크리에이티브 업계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조언이 가능할까요?
광고 업계에서 TV 쪽이 메인이고, 바이럴 같은 온라인 쪽은 상대적으로 마이너하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경계가 사라지고 주류에서 활동했던 분들이 오히려 디지털 매체 쪽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어하죠. 학생분들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경계를 나누기보다 뉴미디어라고 불리는 매체에 대한 관심을 늘리고, 그들을 활용해 크리에이티브를 접목하는 방향에서 계속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비트360이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앞으로 오프라인 공간은 어떻게 더 활용될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브랜드 전시 분야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디지털 요소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고객들이 느끼는 피로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아날로그 감성을 살리면서 핵심적인 부분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쪽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센터장을 맡고 계신 컨텐츠 크리에이티브 센터(이하 CCC)에 대한 소개도 부탁 드릴게요.
두 개의 팀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컨텐츠디자인팀, 컨텐츠 플래닝팀이 그것이죠. 이 조직이 생긴 지는 약 3년 정도 됐습니다. 제가 이노션에 입사한 지 10년쯤 됐는데, 다양한 업무를 맡으며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ATL 부문과 달리 공간, 문화, 스포츠 같은 부분이 속하는 BTL 파트에는 전담 크리에이티브 부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조직을 만들게 된 것이고요. 경영학을 전공한 친구부터 디자인, 건축, F&B, IT 전공자까지 구성원들의 스펙트럼도 꽤 다양하죠. 그런 사람들이 모여 클라이언트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해 가고 있는 팀입니다. 비트360 역시 건축은 물론, MR 같은 디지털 기술과 인테리어, CI, 요식 브랜드에 대한 부분까지 폭넓은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해야만 가능한 프로젝트였죠. 심지어 운영 스태프들의 서비스 교육과 상시 이벤트 프로모션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서는 수십억의 제작비 펀딩부터 해외배급까지 직접 계획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전통적인 광고업에만 익숙한 상황에서는 이 같은 요청에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죠.
Q. CCC를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의 비전을 어떻게 보시나요?
내부 매출 변화만 보더라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고요. 광고와 같은 영상 콘텐츠는 많은 소비자와 만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그 효과성도 높지만, 직접적인 고객경험을 촉발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반면에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소비자에게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반응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고, 이것이 커뮤니케이션 비즈니스의 기본적인 틀을 바꾸어 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Q. 다양한 분야의 인재가 함께하는 CCC 같은 조직을 운영하며 유의해야 할 점이라 하면요?
큰 조직일수록 협업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협업을 통해 선보인다는 프로젝트의 성공담을 종종 듣지만 그 성공담의 뒷면은 내부적 통제와 지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협업이 되려면 서로의 의견이 동등하게 존중돼야 하는데, 우리의 기업문화에는 여전히 ‘주무 부서’ 또는 ‘리더’라는 개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조직이 협업을 강조하지만 협업은 시스템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내부의 조직문화라는 점을 먼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