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ement Of Elegance
품격에서 힙함으로
정승철 인사이트전략2팀 | INNOCEAN
고은지 캠페인플래너 | INNOCEAN
# 럭셔리 라이프
Q. 이번 호의 이슈 ‘명품의 일상화’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죠. 명품 소비에 관한 태도와 인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이에 관한 두 분의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하네요.
정승철명품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을 포함해 명품을 접할 수 있는 미디어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명품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백화점이나 면세점 등 오프라인에서 명품을 구매했다면, 최근에는 온라인 명품 플랫폼을 통해 신상품은 뭔지, 내가 찾는 상품이 있는지 원할 때 매일 볼 수 있게 되었죠. 이제는 명품이 특별한 날에만 입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고은지명품의 정의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명품은 고급화되어 있고, 클래식하면서 접근하기 힘든 제품군이라고 여겼는데 요즘에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양극화 모습도 보이고 있어요. 예전부터 명품이라고 여기는 것들의 가격은 점점 오르고 있는데 요즘 등장한 명품들은 접근하기 쉬운 가격군을 형성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이것도 명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명품이라는 게 무엇일까?’ 의미와 정의를 내리는 시기가 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Q. 명품 소비에 대한 인식 변화의 배경에는 어떤 요인들이 있을까요?
정승철명품에 한정할 수는 없지만 MZ세대가 신소비 계층이 되었고, 디지털 플랫폼의 부상과 맞물려 명품의 범주가 다양해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하이엔드, 럭셔리, 매스티지, 컨템포러리처럼 나뉠 뿐만 아니라 더 세분화되고 있어요. 또한 전통적인 럭셔리 브랜드들도 ‘스몰 럭셔리’라고 하는, 좀 더 낮은 가격으로 액세서리 등 소비자들이 더 쉽게 접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소비 변화가 일어나고 있죠.
고은지가장 큰 이유로는 코로나로 인한 ‘보복 소비’가 명품 소비의 트리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또한 하나를 제대로 사자는 식의 인식 변화도 있는 것 같고요. 여기에 디지털 플랫폼을 가까이 접하고 자란 MZ세대들이 구매력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명품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고,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스마트한 소비 환경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명품 소비가 늘어난 게 아닌가 싶네요.
정승철패션에 한정해 얘기해 보면, 명품 패션에서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포츠용품이나 골프, 등산복, 애슬레저룩 등이 캐주얼라이제이션된지 오래되었잖아요. 명품도 이제 이게 명품이냐 아니냐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패션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고은지예전에는 명품이 가방, 액세서리, 클래식한 코트 등 연령대가 높고 자신이 입지 않을 것만 같은 영역에 한정되었다면, 요즘에는 후드티, 맨투맨, 가볍게 신을 수 있는 운동화 등 ‘명품 브랜드에서 이런 게 나와?’ 할 정도로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나도 살 수 있는 아이템이 생긴 거죠. 종류가 다양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정승철맞아요. 또한 명품이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서 사람들이 미디어 콘텐츠처럼 명품을 소비하고 있기도 하죠. 예를 들면 미국에선 “How Are You?”라는 질문에 “I’m GUCCI.”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해요. 명품을 꼭 갖고 있지 않아도 삶의 표현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많아진 것 같아요.
# 명품 소비문화
Q. ‘플렉스’, ‘언박싱’, ‘명품 하울’ 등 새로운 명품 소비문화가 생겨나고 있죠. 두 분이 주목한 명품 소비문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고은지저는 단연 ‘오픈런’이라고 생각해요. 이것도 이전과 달라진 게 있어요. 예전에는 가격이 오른다는 기사가 나면 일주일 전부터 오픈런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오픈런을 하더라고요. 그 이유는 ‘리셀’하고 관련있어요. 얼마 전 중고 플랫폼에 들어가 봤는데 오픈런을 통해 구매한 제품을 포장된 그대로 프리미엄을 얹어서 판매하더라고요. 전에는 리셀이 특정 신발 등 구하기 어렵고 힘든 제품군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요즘에는 거의 모든 제품을 무조건 산 다음 되파는 과정으로 변한 것 같아요. 그러니 오픈런과 리셀이 요즘 가장 화두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정승철저도 오픈런과 리셀을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새로운 구매 대행도 생겨나고 있죠. 미리 새벽에 가서 기다렸다가 대신 명품을 구매해 주는 사람을 지칭하는 ‘명품 아바타’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이런 점들이 흥미로웠어요.
Q. 두 분도 재테크와 투자를 목적으로 명품을 구매하거나 리셀하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고은지친구들이 럭키드로우를 통해 대신 신발을 응모해달라고 부탁받은 적은 있어요. 당첨되면 사례하겠다면서요. 제가 따로 해본 적은 없네요(웃음).
정승철저는 명품을 글로만 배웠어요(웃음). 그중 재테크와 관련해 재미있었던 건 피스PIECE라는 조각투자 플랫폼이에요. 예를 들면 롤렉스 다섯 개를 조각투자하기 위해 각자 10 만 원씩 투자하면 개인마다 롤렉스 지분이 생기는 거예요. 그렇게 투자해서 나중에 주식처럼 가치가 올라가면 내 지분을 파는 거죠.
Q. MZ세대의 경우 재테크와 투자 목적으로 명품 구매를 활발하게 하고 있더라고요. 이처럼 이들이 핵심소비층으로 떠오른 배경이 궁금하네요.
고은지미디어의 영향이 많이 큰 것 같아요. 과거 명품 브랜드 모델이나 앰버서더를 보면 해외 유명 모델이나 저희가 잘 모르는 모델이 제품을 홍보했는데 요즘은 국내 유명 모델이나 특히 아이돌 모델이 많더라고요. ‘인간 샤넬’, ‘인간 구찌’ 이런 네이밍이 붙은 모델도 많고, 인플루언서까지 더해 어필하려는 행태도 자주 보이죠. 힙합 프로그램의 래퍼들이 가사에 명품 브랜드 이름을 그대로 넣기도 하고 MZ세대가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 같아요. ‘남들이 저렇게 하니까 나도 해봐야지’ 하기도 하고, 또래 집단 안에서는 유행이 번지는 속도가 빠르니 한 번에 훅 퍼지면서 그들의 문화로 자리잡게 된 게 아닐까요.
정승철저도 요즘 업무를 하다 보면 모든 광고주가 하나같이 MZ세대를 공략해야 한다고 얘기해요. MZ세대가 쇼핑을 하면서 X세대나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는 ‘엄마, 요즘 이게 더 예뻐, 핫해, 힙해.’라고 추천하기도 하고 알파세대는 MZ세대의 소비 스타일을 옆에서 배우고 접하기 때문에 향후 알파세대를 공략할 때도 MZ세대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거예요. 명품뿐 아니라 전 영역, 산업에서 각광받고 있죠.
Q. 그들의 니즈와 특성을 반영한 명품 브랜드들의 변화도 궁금하네요.
고은지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과감한 시도를 처음 했던 곳이 구찌였어요. 제페토와 협업해서 제페토 캐릭터들이 구찌 옷을 입게 되었죠. 현실에서는 많은 비용을 주고 옷을 사 입기 부담스러우니 캐릭터에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해서 입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러한 이미지를 쌓기 시작하다 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MZ세대가 실제 구매력이 생기게 되었을 때 그 브랜드를 구매하게 되겠죠. 이를 겨냥하여 다른 브랜드들도 메타버스를 활용하여 많은 시도를 하고 있더라고요. 처 음에 명품 브랜드들이 왜 타깃에서 조금 벗어나 보이는 10대나 MZ세대가 이용하는 플랫폼에 마케팅할까 싶었는데, 계속 진행되는 흐름을 보니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승철말씀하신 것처럼 ‘컨템포러리 럭셔리’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정한 구찌는 MZ세대와 교류하고 소통하는 브랜드 전략을 펼쳐나가고 있어요. 그래서 메타버스상에서 브랜드 플레이를 하는 것 같아요.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단순히 쇼핑하는 공간, 매장의 개념이 아닌 MZ세 대가 좋아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접목해 하나의 브랜드를 깊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중점적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또한 완전히 럭셔리 브랜드라고 하기는 어려운, 즉 컨템포러리 브랜드라고 하는 메종키츠네나 메종마르지엘라는 기존 럭셔리 브랜드하고는 다른 운영 방식을 보여주고 있죠. 단순히 제품을 진열해 놓은 공간도 있지만, 메종키츠네 같은 경우 ‘카페키츠네’라는 매장과 카페를 접목해 사람들이 꼭 제품을 사지 않더라도 계속 앉아서 제품을 체험하고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하죠.
고은지구찌도 미키마우스하고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메종키츠네는 퓨마랑 함께했더라고요. 기존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중적인 브랜드와 명품 브랜드가 컬래버레이션하는 현상도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명품 브랜드의 움직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Q. 명품 브랜드들이 새로운 전략을 펼치는 만큼 사람들이 명품 소비에서 중시하는 기준도 각기 다양할 것 같아요.
정승철명품 관련하여 내부적으로 소비자 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명품을 살 때 가장 먼저 뭘 따지는지 조사했는데 1순위는 디자인, 스타일 관련된 부분이었고, 2순위가 가격이었죠. 단순히 명품 디자인이나 스타일이 좋다가 아니라 MZ세대를 포함해 사람들이 어떤 디자인과 스타일을 원하는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더 자세하게 데이터 분석을 진행했어요. 5년 전엔 우아하고 품격 있는 디자인이나 스타일이었다면 최근에는 상위에 있는 키워드가 ‘힙하다’예요. 힙한 디자인과 스타일을 명품에서도 많은 사람이 원하고 찾고 있죠.
고은지사람들이 명품을 소비하는 기준은 다 다를 거예요. 저도 저만의 기준이 있는데, 가방이나 오래 써야 하는 것들은 되게 클래식하거나 소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신발 등 유행 타는 것들은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힙한 디자인을 중시해서 사는 편이에요. 이왕이면 좋은 걸 사자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차고 있는 애플워치도 에르메스 한정판이거든요. 어떤 제품군에서 한정판이거나 좋은 것들이 있으면 구매하는 편이에요.
# 명품 플랫폼
Q. 요즘 부상하고 있는 많은 온라인 명품 플랫폼을 보면서, 명품 소비에 관한 관심이 정말 높아졌다는 것을 체감하게 돼요.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명품을 구매하는 소비 채널의 변화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정승철최근 많이 보이는 명품 플랫폼이라고 하면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캐치패션 등인데,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죠. 전문적인 명품 플랫폼이 급증하고 있고, 저희가 캠페인을 진행한 신세계 인터내셔날 S.I.VILLAGE라든지 기존 대기업의 플랫폼들도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어요. 플랫폼에서 제품에 대해 다양하게 탐색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명품 플랫폼들이 내세우는 경쟁력이라고 했을 때, 가격적인 부분이 가장 크거든요. 기존에는 공식 수입 과정을 거쳤다면, 지금은 병행 수입이라든지, 프리오더 권한이 있는 부티크를 직접 계약해 다이렉트로 가져오는 유통 과정의 혁신이 있기 때문에 명품 플랫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죠. 직접 매장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가격 차이가 날 때가 많더라고요.
고은지일반적으로 명품 플랫폼들은 가격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고,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 따라 발전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명품 플랫폼을 통해 구매해본 적은 한번도 없어요. 유통 구조가 확실히 다르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고, 전 세계 곳곳에 숨겨진 명품들을 AI를 통해 리스트업해주는 등 장점이 많지만 실제로 제가 사려고 들어가 보니 제품이 없거나 쿠폰을 적용해서 사려해도 공식 가격보다 더 비싸거나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대부분 아웃렛 제품이거나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들만 많고, 인기가 많은 제품은 찾기 어렵더라고요.
정승철가격 경쟁력은 명품 플랫폼이 우위에 있지만, 정품에 대한 신뢰라든지 배송 과정에서의 품질 손상 우려를 걱정하는 소비자들도 있어요. 재고에 대한 부분도 명품 플랫폼이 지닌 단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공감하는 게 실제로 최저가인 제품들을 구매하려고 눌러보면 사이즈가 품절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매장에서는 제가 원하는 사이즈의 제품을 바로 살 수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플랫폼을 좀더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이러한 부분들을 점차 보완해 나가는 게 필요하겠네요. 그렇다면 두 분은 명품 플랫폼의 지속가능성과 앞으로의 성장에 관해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고은지가격 경쟁과 할인을 내세운 광고와 프로모션을 진 하면서 사람들의 높은 관심이 신규 가입으로 이어지고 있죠. 그러면 이제 플랫폼들은 신규 가입을 내세워 투자를 받고 난 후 사라질 수도 있어요. 결국 마지막에 피해 보는 건 소비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속가능성이 있으려면 가격 경쟁력 이상으로 신뢰를 줄 만한 것들을 마련해야 해요. 배송이나 가품 등 생겨날 수 있는 문제에 관한 보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승철앞으로 몇 년간은 급격하게 성장할 거라고 봐요. 신세계 인터내셔날 S.I.VILLAGE, 삼성물산 SSF 등 대기업 채널들이 명품 전문 플랫폼들과 비교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이런 경쟁을 통해 결국은 시장 규모가 커지고, 누군가가 시장을 많이 점유하겠지만 그 과정까지 가는데 있어서 앞으로 성장은 계속될 것 같아요.
Q. 그럼에도 여전히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고은지하지만 분명 오프라인 공간은 예전과는 다른 의미일 거예요. 명품 브랜드뿐만 아니라 번개장터나 무신사, 와디즈처럼 앱 기반으로 시작된 많은 브랜드가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있어요. 단순히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브랜드의 문화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죠. 예전과 완전 달라요. 요즘 백화점도 리뉴얼하고 있는데, 보는 매장에서 체험형이나 오픈형 매장으로 컨셉을 바꿔가는 추세인 것 같아요.
정승철말씀하신 것처럼 명품 매장들이 쇼핑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해외에선 매장뿐만 아니라 호텔까지 만들고 있고, 카페도 따로 만들고 있잖아요. 오래전부터 이러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데, 매장으로써 오프라인 공간은 이제 사라지고 있고, 색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거나 여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