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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멀리 가도 집에만 돌아오면 돼

리스크와 크리에이티브는 어디서 만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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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도 집에만 돌아오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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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규 카피라이터

좋은 카피는 새로운 말을 발명하는 것보다 익숙한 것을 다시 보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오래 함께한 브랜드일수록 일부러 낯설게 바라보고, 어려운 기술은 누군가의 현실로 옮기고, 떠오른 한 문장은 끝까지 쓰고 지우며 의심한다. KCC건설 스위첸의 〈집에 가자〉부터 현대자동차 〈살아보세요, IONIQ 9〉, 한화그룹 PR까지 서로 다른 과제 앞에서도 그가 향하는 곳은 비슷하다. 보는 사람이 문득 ‘이거 내 이야기인데?’라고 느끼는 순간이다. 1분 만에 광고 한 편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도 쉽게 만들 수 없는 한편을 꿈꾸는 이노션 카피라이터 이준규를 만났다.


 

익숙할수록 다시 낯설게

Q.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세희 CD팀에서 카피를 쓰고 있는 이준규입니다. 최근에는 KCC건설 스위첸 ‘위대한 집안일’ 캠페인과 한화그룹의 ‘대한민국 기간산업의 진화’ 캠페인을 온에어했습니다.

Q. 학창 시절에는 음악에 뜻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광고 업계 베테랑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때 밴드부를 했는데 그게 화근이었어요. 바람이 제대로 들어서 대학도 안 가고 서울로 올라왔죠. 한 2~3년 밴드를 했는데, 뜻만 가지고는 안 되는 일이 있더라고요.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도 조금 다른 문제고요. 결국 음악을 접고 나니 그다음이 막막했어요. 그때 어머니가 그러셨죠. “이럴 거면 내려와서 아버지 일이나 도와라.” 아버지가 고향 상주에서 가장 오래된 간판집을 하셨거든요. 그래도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겠다 싶어서 정말 단순하게 광고학과에 지원했어요. 그때가 스물다섯이었죠.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이왕 하는 거 어디까지 가나 보자 싶어 계속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네요.

Q. 처음에는 프로덕션 기획실에서 광고 일을 시작하셨다고요. 프로덕션 경험이 이노션에서 캠페인을 제작할 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그 당시 프로덕션은 규모도 크고 일이 정말 많은 곳이었어요. 여러 대행사 제작팀에서 미션을 주면 함께 아이디어를 내는 구조였는데, 한 번에 십수 개의 프로젝트가 돌아갔어요. 새벽같이 출근해서 막차 시간까지 아이디어를 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대표님이 자주 하신 말씀이 있어요. “지금 배우는 광고가 평생 너를 먹여 살려줄 거다. 제대로 배워라.” 업을 대하는 자세부터 카피, 그림, 인사이트까지 아주 혹독하게 배웠죠. 그때 기른 체력과 맷집 덕분인지 프로젝트 중간중간 어려운 순간이 와도 도망치기보다 어떻게든 해답을 찾는 편이에요. 물론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안 돌아갑니다(웃음).

Q. KCC건설 스위첸과 한화그룹처럼 오랫동안 함께해온 브랜드가 있습니다. 한 브랜드와 여러 해 작업하다 보면 애정의 깊이가 남다를 것 같아요. 처음 맡았을 때와 시간이 쌓인 뒤에는 캠페인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나요?

그런 적이 있지 않나요? 누군가를 오래 알고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이 사람을 다 알아’라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자만에 빠지는 거죠. 브랜드도 비슷한 것 같아요. 한 브랜드와 오래 함께 일하다 보면 익숙함이 생기고, 그 익숙함 때문에 오히려 브랜드가 가진 장점을 지나치기 쉽죠. ‘나는 이 브랜드를 잘 알아’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낯설게 보려고 해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상세 스펙을 다시 들여다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어? 뭐야? 너 이런 모습도 있었어?’, ‘좀 멋진데?’ 하는 순간이 오고요. 한 브랜드와 오래 일할 수 있다는 건 크리에이티브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복이에요. 뭐가 더 나올 게 없어 보이는데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에서 또 새로운 크리에이티브가 탄생하거든요.

Q. 오랫동안 한 브랜드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카피라이터님 본인에게도 달라진 점이 있나요?

KCC건설 스위첸을 하면서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족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원래 제가 사람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거든요(웃음). 그런데 프로젝트를 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궁금해졌어요. 반대로 한화그룹을 하면서는 친환경 에너지나 우주처럼 지구가 당면한 큰 문제들을 많이 접하게 됐고요. 그런 것들을 공부하다 보니 제 관심의 범위도 자연스럽게 넓어진 것 같아요. 브랜드와 함께 저도 조금씩 성장한다고 할까요.

Q. KCC건설 스위첸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기존의 색깔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스위첸 캠페인은 ‘내일을 키워가는 집’편부터 함께했어요. 아이들이 30초 동안 노는 모습만 나오는 광고였는데, CD님께 몇 번이나 “이거 이렇게 해도 괜찮아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나네요. 회의를 시작할 때 CD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너희가 하고 싶은 건 그게 뭐든 다 해도 돼. 멀리 갔다가 집에만 돌아오면 돼.” 그때부터 다들 취잿거리를 찾아 나서는 기자가 돼요. 자신의 경험담부터 아이가 있는 친구 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간만에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기도 하죠. 인터넷에 떠도는 한 줄이나 사회적인 이슈에서 힌트를 얻기도 하고요. 그렇게 방대한 자료를 모아 아이데이션을 시작하는데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어요. ‘과거의 스위첸 문법을 답습하지 말 것.’ 사람 사는 이야기가 거기서 거기라지만, 새로운 시선과 형식을 만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거든요. 그렇게 매번 다른 걸 시도해왔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쌓이면서 ‘스위첸다움’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Q. 지난해 진행한 ‘집에 가자’편은 카피라이터님에게도 기억에 남는 캠페인 중 하나였다고 들었습니다. 집의 기능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을 보여주며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는데요. 처음 ‘집에 가자’라는 아이디어는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됐나요?

모처럼 일찍 퇴근하는 날이었어요. 사람들이 앞다퉈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싣더라고요. 문득 ‘왜 저렇게까지 치열하게 집으로 가는 걸까?’ 싶었죠.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눈을 뜬 순간부터 집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살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년 동안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많이 했는데, 정작 집으로 향하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더라고요. 거기에 팀원들의 생각이 더해져 퇴근뿐 아니라 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의 순간을 날것 그대로 포착하자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SNS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이 참여해 집으로 향하는 순간을 담았고, 집을 떠올리게 하는 밈들, 가족의 환대가 담긴 동영상 등 다양한 포맷이 더해지면서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담은 영상이 만들어졌어요.

Q. 이번 캠페인을 만들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부분도 있었나요?

요즘 아이들에게 집을 그려보라고 하면 아파트를 그린다고 하잖아요.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지금의 시대상인 거죠. 그렇다면 지금의 아파트가 누군가에게는 나중에 정말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집값이나 입지를 두고 스트레스 받는 대상으로서의 아파트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정말 돌아가고 싶은 안식처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광고 시상식에 갔을 때 한 스태프분이 이 광고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해외에 계신 분들이 생각나서 많이 울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내가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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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특히 BGM으로 쓰인 김창완의 ‘집에 가는 길’이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했어요. 곡을 찾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첫 BGM은 ‘집에 가는 길’이 아니었어요. 젊고 트렌디한 가수의 곡이었죠. 그런데 광고주분께서 조금 더 깊이가 있고, 집으로 향하는 모든 세대가 공감할 만한 곡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그때부터 제목과 가사에 집이 들어가는 모든 노래는 다 들어본 것 같아요. 한참을 헤매고 있는데 잔뜩 쌓아놓았던 폴더에서 우연히 한 곡을 발견했어요. ‘어? 이런 노래가 있었나?’ 싶었죠. 1995년에 김창완 님이 발표한 앨범의 수록곡이었어요. 젊은 작가들의 세련된 영상에 김창완님의 오래되고 담담한 목소리가 붙으니 묘하게 언밸런스한데, 오히려 그게 잘 어울렸어요. 그 대비 때문에 오히려 더 따뜻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많은 분도 위로를 받았다고 해 주셨고요. 나중에 알았지만, 가수 본인도 30년 만에 콘서트에서 다시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찾은 한 곡이 얼떨결에 30년 만의 역주행까지 시켰네요(웃음).

Q. KCC건설 스위첸 ‘식구의 부활: 미역국’편은 한 남자가 서툰 솜씨로 미역국을 만드는 과정만으로도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 마음이 잘 전해졌어요. 혹시 실화인가요?

어느 날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가 결혼 40년 만에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여줬다고요. 그런데 뭘 넣었는지 색도 까맣고 들큼하더랍니다. 밥을 말아서 겨우 드셨대요. 알고 보니 누나에게 레시피를 물어봤는데 중간에 착오가 있었던 거예요. 국간장을 넣어야 하는데 진간장을 잔뜩 넣으신 거죠. KCC건설 스위첸 ‘식구의 부활’ 편을 제작하면서 가장 중점으로 생각한 건 잘 만든 한 끼가 아니라 누군가를 생각하며 애써 만든 한 끼였어요. 그러다 아버지 미역국 에피소드가 생각났죠. 없는 실력으로 어설프게 만든 사람도, 그걸 맛있게 먹어준 사람도. 가족이란 그런 빈틈까지 다 품어주는 사이가 아닐까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Q. 한편 현대자동차 ‘살아보세요, IONIQ 9’ 캠페인은 제품과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오래 들여다본 끝에 나온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실제로 이 캠페인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요?

이미 수많은 광고에서 EV의 활용법이 소비된 상태라 아이오닉 9만의 차별적인 활용법을 보여주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오랜 회의 끝에 대형 플래그십 EV답게 주행감보다는 ‘거주감’을 보여주자는 걸 핵심으로 잡았죠. ‘이곳이 실제 누군가의 방이라면 어떻게 쓸까?’를 중점적으로 고민했어요. 그런데 그냥 너저분한 방이 아니라 그런 공간 있잖아요.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을 손가락으로 쓱 건드리면 나타나는 비밀 공간이요. 아이오닉 9의 공간도 누군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가득 차 있는 그런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아이디어가 발전되면서 가족, 크루가 함께 쓰는 방으로 바뀌었지만요. ‘살아보세요’라는 카피도 그렇게 나왔어요. 이 공간이 얼마나 넓고 뭘 할 수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이런 공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살아보라고 권유하는 거죠. 조금은 콧대 높게요.

끝내 ‘내 이야기’가 되는 카피

Q. 작업하신 캠페인들이 ‘집에 가자’, ‘살아보세요’처럼 일상적인 말과 풍경들을 마음에 오래 남기는 것 같아요. 처음 아이디어를 잡는 순간부터 여러 안을 고민하고 최종안을 선택하기까지, 창작자로서의 작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많은 크리에이터가 그렇듯 처음 아이디어 작업을 시작하면 첫 페이지를 만드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써요. 서체를 정하고, 음악을 선곡하고, 배경 컬러를 정하고요. 그러다 보면 CD님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하시죠. “그럴 시간에 아이디어를 하나 더 내.” 맞는 말이라 반박할 게 없네요(웃음). 그냥 저한테는 일종의 ‘영점 조준’ 같은 거예요. 미신일 수도 있고요. 그렇게 하나의 파일을 만들면 어떤 이야기로 채울까 고민을 시작하죠. 저는 기억력도 별로고,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면 잘 빠져나오지 못하는 편이라 최대한 많은 흔적을 남겨요. 영화 〈메멘토〉를 보면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엄청난 흔적을 남기잖아요. 저도 그래요. 스마트폰 메모장, 책상 위 이면지, 알고리즘, 알게 모르게 팀원들도 제 생각의 숙주로 만들어놓죠. 어떤 생각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올지 모르니까요. 그러다 디데이가 가까워지면 모든 걸 긁어모아 하나의 아이디어로 엮어요. 그리고 끊임없이 의심해요.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러면 분명히 있더라고요. 쓰고 지우고, 머리를 쥐어뜯다 보면 겨우 하나가 나와요. 도저히 안 풀리면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도움을 구하고요. 혼자 하는 광고는 없으니까요.

Q. 한화그룹 PR은 앞서 이야기한 광고들과는 또 다른 종류의 과제처럼 보여요. 우주·방산·에너지처럼 B2B 성격이 강한 사업에는 어떻게 접근하나요?

한화그룹 PR 광고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예요. B2B지만 메시지는 결국 소비자들을 향하거든요. 대한민국의 기간산업을 다루다 보니 내용 자체도 어렵고, 그 내용을 체화해서 소비자의 언어로 바꾸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해요. OT가 시작되면 모든 팀원이 스터디에 들어가요. 신문 기사부터 필요하면 해외 논문까지 찾아 공부하면서 관련 산업과 메커니즘을 이해하려고 애쓰죠. 그렇게 공부한 내용을 정돈해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정하고, 완성된 문장은 다시 카피라이팅 과정을 거쳐 사람들이 듣고 싶은 언어로 바꿔요. 똑똑해지는 기분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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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화 광고처럼 전문적인 기술과 사업을 대중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로 바꿀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카피라이팅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이 제품이나 기업이 하고 싶은 말보다 그 메시지가 닿을 끝에 있는 사람을 보는 거죠. 어떤 기술을 잘 설명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이 기술을 통해 내가 무엇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해요. 우주를 향해 얼마나 많은 우주선을 쏘아 올렸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기술을 통해 수많은 아이들의 꿈까지 우주로 함께 쏘아 올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거죠.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아무리 대단해도 흘러가게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카피라이팅은 익히 아는 사실을 나의 현실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요.

Q. 공들인 광고가 예상보다 조용히 지나갈 때도 있고, 반대로 생각지 못한 한 장면이나 한마디에 사람들이 크게 반응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거치며 지금은 어떤 광고를 ‘좋은 광고’라고 생각하나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정말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세상에 이야기를 전하고 있어요. 세상에 나온 크리에이티브 중에 지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건 없고요. 저는 정말 운이 좋게도 많은 분이 공감할 만한 광고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결국 아무리 멋진 그림과 메시지를 담아도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스킵하게 되더라고요. ‘저 이야기는 내 이야기’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한 걸 깨닫는 요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좀 포기하는 게 중요해요. 내 생각과 관점을 내려놓고,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한 발 물러나 이 광고를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게 중요하달까요. 이 과정을 위해 무척 괴로운 시간이 필요해요. 며칠을 고민한 카피를 지우기도 하고, 팀장님과 팀원들의 쓴소리를 꾹꾹 삼켜야 하기도 하고요. 문장 단위로 돌아오는 광고주의 피드백을 받아들여야 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끈질기게 만들다 보면 반드시 나오더라고요. ‘이거 내 이야기인데?’

Q. 앞으로 창작자로서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나, 지금보다 더 깊이 파보고 싶은 영역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1분 만에 뚝딱 광고 한 편을 만드는 시대가 되었어요. 곧 사라질 업종 순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보면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1분 만에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광고’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저는 여전히 이 일을 사랑하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거든요. 사람들이 광고를 소음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하는 걸 보면서 그 가능성을 봤어요. 광고가 영화도 될 수 있고, 소설도 될 수 있고, 공간도 될 수 있다는 걸 이미 수많은 선배와 동료들이 증명하고 있고요. 몇 년 뒤에 이 글을 보면 좀 부끄러울 것도 같은데,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을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먼저 쉽게 만들 수 없는 것들을 계속 만들어내야겠죠. 예를 들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몇 년에 걸쳐 완성하는 아주 긴 다큐멘터리 광고 같은 거요. 물론 제작비가 어마어마하겠지만요(웃음).


 

Insight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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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저는 안테나가 많은 타입이에요. 카페나 식당에 앉아 있으면 옆자리 이야기부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까지 신경이 쓰여요. 정보가 좀 과하게 들어오는 편이랄까요. 필요할 때 스위치를 켜고 끌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돼요.

 

그러다 찾은 방법이 캠핑이에요. 말하자면 저만의 강제 종료 같은 거죠. 차에 항상 장비를 싣고 다니는데, 속이 시끄러운 날이면 그냥 훌훌 떠납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도착해 땀을 흘리면서 오늘 밤 잘 자리를 만들고, 의자 하나 펼쳐서 시원한 맥주 한 캔 마시면 그제야 ‘좋다’는말이 절로 나오죠. 그렇게 몇 시간이고 가만히 앉아서 타는 장작을 바라보고 있으면 앙금은 가라앉고 선명해져요. 뒤엉켜있던 생각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요.

 

그때부턴 무언가를 더한다기보다 오히려 최대한 비워내려고 해요. 정리할 건 정리하고, 지울 건 지워버리고. 대개 많이 채워야 좋은 걸 많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반대도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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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카페

캠핑과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결국 의도는 같아요. 가끔은 낯선 곳에 나를 던져두는 것.

 

몇 달 전 후쿠오카로 여행을 갔어요. 특별한 목적지 없이 하카타역부터 텐진까지 골목을 어슬렁거리는데 우연히 작은 재즈카페를 발견했어요. 별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있었고, 온몸에 문신을 한 젊은이들도 있었고, 외근 중에 잠깐 들른 것처럼 보이는 회사원도 있었고… 나이도, 옷차림도, 살아온 방식도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음악을 듣고 있더라고요.

 

가만히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음악을 듣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음악, 영상,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손가락 한 번에 슥 하고 사라지잖아요. 취향은 점점 정교해지는데, 낯선 것을 견디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는 것 같고요. 그런데 여기에서 LP판 한 면 다 들을 때까지 스킵도 안 되는 음악을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듣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더라고요.

 

익숙한 것들로부터 계속 멀어지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내가 몰랐던 음악을 듣고, 사람을 만나고, 낯선 공간에 있다 보면 내가 몰랐던 취향까지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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