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New
And Different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상주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바깥바람에 갈대처럼 흔들리다 보면 진정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진다. 매너리즘에 빠지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의 연결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 순수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볼 때 깊숙한 곳에 담긴 가치와 공감을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Interview
Q. 안녕하세요, 올해 CD로 보임되셨다고요.
아트디렉터로 시작해 올해 CD가 되었어요. 이노션은 5년 차고요. 그동안 현대자동차 쏘나타 N 라인, 코오롱스포츠 썸웨어 캠페인,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 론칭 캠페인, KCC 클렌체 24시집, KCC 페인트 국가대표 발라더, SH 서울주택공사 서울 내집 등의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Q. 작업하신 캠페인들이 위트가 넘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쏘나타 N 라인 캠페인에서는 귀신을 활용해 기능을 재치 있게 표현했고요. 어떻게 기획하셨나요?
함께 작업한 CD님들의 영향이 있었죠. 특히 215님께 광고적 변태성을 많이 배웠습니다(웃음). 자동차 광고엔 클리셰가 있어요. 예를 들어 불이 나오거나 사고가 연상되는 장면은 들어갈 수 없는데, 그런 금기를 깨는 작업이었죠. 귀신이긴 하지만 빠른 속도를 낼 때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처럼요. 하이 퍼포먼스 모델인 만큼 진지한 소개보다는 직관적이고 인상적인 표현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현대자동차에서 그 안을 선택해 준 것도 놀라웠죠.
Q. KCC 페인트 국가대표 발라더 캠페인도 마찬가지로 놀라운 선택이었어요. 스토리를 보면서 ‘이게 되네?’ 싶었거든요. 페인트가 쓰이는 곳들을 뮤직비디오 안에서 합성해 보여주는 것도 신선했어요.
‘이게 되네?’가 맞는 표현 같아요. KCC는 아파트나 건축 자재로는 잘 알려져 있는데, 페인트는 상대적으로 생소해요. 글로벌 페인트 기업 상위 랭크인데, 인지도가 부족했죠. 광고주의 프로젝트 목표는 우리가 국가대표 페인트라는 걸 알리는 거였고, 그 방식은 다 맡기겠다고 해주셨어요. 아이디어는 단순했어요. KCM이 KCC로 개명하고 국가대표 발라더, 글로벌 스타가 된다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조회 수 천만을 넘기고 국가대표 페인트 KCC 이미지도 남겨 목표를 달성한 셈이죠.
Q. 곳곳에 유머 코드가 있어 재미있더라고요. 특히 브랜드와 모델이 매치가 잘돼서 단번에 기억에 남았어요. 캠페인 모델로 KCM을 섭외한 계기가 궁금해요.
KCC 페인트 캠페인을 진행하며 ‘이런 것도 먹히는구나’ 실감해서 즐거웠어요. 근간에는 유머 코드가 있지만 매력적으로 임팩트를 남기는 게 목적이었죠. 그래서 본업은 가수인데 예능에서 빛을 내는 캐릭터를 가진 KCM이 떠올랐어요. 절묘하게 KCC와 이름이 연결되는 점도 좋고, 페인트는 바르는 것인데 국가대표 발라더를 만들어보면 의미 있겠다 싶었어요. 바이럴을 위해서 ‘THE 발라더’라는 곡도 팀원이 직접 만들었어요. KCM 님도 언젠가 올 줄 알았다, KCC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Q. 쏘나타, 아이오닉 5, EV9 등 자동차 캠페인을 여럿 진행하셨어요. 다른 캠페인과 비교해 접근 방식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자동차는 특히 트렌디한 분야 같아요. 자동차 브랜드들은 매번 고도의 신기술을 개발하고 소비자에게 소개하는데, 그것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삶을 이동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쏘나타 7세대는 당시 현대자동차의 첨단 기술이 집약된 제품이었어요. 그 기술은 삶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큰 변화이기에 기존 자동차 광고랑은 다른 톤앤매너로 아웃풋을 만들고자 노력했죠.
Q. 기술과 삶 모두를 고려해야 하네요. 차와 관련한 캠페인을 진행하실 때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시나요?
자동차는 집 다음으로 일상에 가깝고 사적인 공간이에요. 사람들의 취향이나 가치관이 가장 많이 반영되는 제품이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가치를 더 느끼는지 연구해요. 자동차로서의 기능이나 속도, 사이즈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의 더 큰 의미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돼요.
Q. 아이오닉 5 캠페인은 비행기를 떠올리게 해 고급스럽고 프라이빗한 느낌을 줘요. 전기차의 등장으로 모빌리티 캠페인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전기차와 함께 자동차업계는 패러다임의 큰 변화를 이루고 있어요. ‘아이오닉 5’는 내연 기관 자동차와 선을 긋는 분기점 같은 모델이었죠. 전통 자동차 플랫폼은 비교적 확장성이 적었어요. 반면에 전기차는 구조가 심플해서 디자인이나 기능적 면에서 삶과 더욱 긴밀한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이오닉 5 론칭 캠페인의 키 콘셉트는 ‘자동차가 아니다 보드다’ 였어요. 자동차가 주는 베네핏이 더 이상 이동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죠. 아이오닉 5는 사용자에 따라서 무엇이든 가능한 근사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이동이 있으신가요? 이사, 여행, 혹은 일상의 순간일 수도 있고요.
서촌 효자동에 아주 작은 한옥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게 제 삶과 가족의 가치관에 영향을 많이 끼쳤어요. 워낙 작고 협소한 공간이라 이사를 하면서 많은 걸 버렸거든요. 자질구레한 옷가지라든가, 가구나 살림을 최소화하는 선택이 필요했죠. 하마터면 아내가 저까지 정리 할 뻔했어요(웃음). 가장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가니 좋더라고요. 오래된 집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내며 여유가 생겼어요. 제 인생의 큰 이동은 집이라는 공간 자체인 거죠.
Q. 물리적인 이동을 넘어 정신적이고 가치적인 선택 같아요. 진행하신 캠페인들도 대상의 물리적인 속성을 넘어 사람들의 감성에 닿는 방식이었고요.
서촌이 좋았어요. 그 안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동네가 주는 영향력이랄까요. 서촌에서 집을 찾다 보니 작은 한옥에 들어가게 됐고요. 제 결정은 단순해요.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아닌 건 최대한 버리면서 사는 거죠.
Q.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가치관이 일할 때도 적용이 되나요?
일할 때는 오히려 결정이 어려워요. 광고는 정답이 없다고 해요. 다르게 말하면 답은 여러 가지라는 건데, 그중 최선의 답이 무엇일지 찾기가 쉽지 않죠. 그래도 결정은 내려야 해요. 독단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프로젝트를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듣고 가장 효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죠.
Q. 아트디렉터로 일하시다가 CD로 역할이 바뀌었어요. 광고 만드는 일은 같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나 관점의 변화가 클 것 같아요.
시니어 아트디렉터로 일할 때는 야구로 예를 들면 타자 코치였던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스킬이나 실행 쪽으로 잘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했다면, CD는 감독이죠. 공수 밸런스를 잘 맞추고, 구단주의 목표와 방향성에 맞춰 팀을 운영해야 하고, 팬들을 위해 어떻게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Q. 듣다 보니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일을 맡은 것 같아요. 새로운 고민을 하고 계실까요?
CD가 되고 나서 이기는 방식,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어요. 경쟁 PT라면 경쟁 대행사를 이겨야 하고, 프로젝트가 잘되게 하려면 마케팅 변수나 경쟁하는 시장이 대상이 되겠죠. 어떤 광고를 만들면 승리하고 좋은 매출을 낼 수 있을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고민을 많이 해요.
Q. 전에는 느껴볼 일 없는 새로움을 이끌어 내는 작업을 선호하시는 것 같아요. 가장 어려웠던 작업, 혹은 가장 수월했던 작업이 있으신가요?
ACD*로 진행한 SH 서울주택공사 캠페인 경쟁 PT가 무척 수월했어요. 첫 콘티부터 좋았고, 팀원들과 호흡도 잘 맞아서 ‘아 CD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싶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변수가 있었죠. 기획한 콘티에 들어가는 BGM을 구하지 못했다는 점이요. 한 연극의 음악이었는데, 극단에도 몇 번 찾아가고 손 편지를 써서 좋은 취지라는 점도 호소 드렸지만 끝내 라이선스가 안 풀렸어요. 그때 광고가 가진 벽에 자괴감이 컸죠. 약속한 콘티를 만들지 못해서 제작팀원들에게도 미안했고요. 크리에이티브가 빛을 못 봐서 슬프고 아쉬웠죠. 술술 풀림과 동시에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그때였어요. 아이디어만 좋으면 완성된다고 생각했는데, 실행 과정의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마주했죠.
*ACD | 정식 CD 보임 전 CD롤을 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Q. 아이디어를 넘어 직접 만들어내야 하는 자리로 간 뒤 느끼신 부분들이네요. 그럼 캠페인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공감과 임팩트, 크게 두 가지예요. 이 시대 수많은 콘텐츠 사이에서 ‘내 이야기구나’ 싶은, 혹은 ‘귀 기울여볼 만한데?’라는 공감 요소가 있어야 다가갈 수 있어요. 임팩트도 같은 맥락이에요.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인상이 없으면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Q. 캠페인 아이디어를 낼 때 평소 보던 것에서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CD님은 주로 어떤 것을 보고,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시나요?
주로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요. 저는 아직까지도 CD로 음악을 듣는데, 하나의 음반을 계속 듣다보면 갑자기 훅 다가오는 트랙이 있어요. 평범한 일상의 순간인데 음악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상상하게 되죠. 어떤 음악을 들으면 외국 해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어떤 때는 헛간 속에 들어가 있는 것도 같고, 어떤 때는 비행기 문을 탁 열었을 때 같은 이미지가 떠올라요. 경계없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특별한 음악들로부터 아이디어 낼 때 귀한 도움을 받아요.
Q. 작업해 보고 싶은 소재가 있으신가요?
패션이나 뷰티 브랜드를 해보고 싶어요. 저의 변태적인 기질을 말씀드렸는데, 이상한 믹스 매치를 한다고 해도 맡겨 주실 수 있는 브랜드라면 더 즐거울 것 같아요. 뷰티 브랜드는 당대의 톱스타나 정말 아름다운 모델과 광고를 만들죠. 그런 분들과 예상 밖의 무언가를 해냈을 때의 임팩트가 무척 강할 거라고 생각해요.
Q. 앞으로 CD로서 어떤 작업을 하시고 싶은지 궁금해요.
광고 디자인 교수님이 20년 전쯤 어떤 광고를 만들고 싶냐는 질문을 주셨어요. 저는 그때 15초 동안 사람을 웃기거나 울리고 싶다고 했죠. 요즘은 콘텐츠의 시간 제한이 많이 열려있지만요. 짧은 시간 동안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게 제 목표예요. 장르적으로는 비주얼이 근사한 걸 만들고도 싶고요. 위트 있고, 감성적인 것 다 좋아요. 무엇이든 연락주세요, 광고 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게 제 목표예요. 장르적으로는 비주얼이 근사한 걸 만들고도 싶고요."
CREATOR’S WORKS
김상수 CD에게
영감을 주는 것
우리집
카피라이터 아내가 효자라운지(게으를 ‘라’, 운치 ‘운’, 땅 ‘지’)라고 이름 지은 효자동의 작은 집이다. 지나침 없이 가장 소중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이곳에서 여유롭고 즐거운 상상을 많이 하고 있다.
CREATOR’S ESSAY
영감님 모시기
영감님을 모시며 살고 있다
덕분에 이 바닥에서 먹고 사니까. 극진히 모시려 한다
그 님은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불쑥 나타나서 나를 놀라게 하고
가끔은 고집스럽게 자취를 감춰서 사람 참 지치게 만든다
광고 아이디어의 영감. 어디서 오느냐에 대한 질문에
나는 자신만의 뮤즈에게 큰 영감을 받는다고 답하고 싶다
그것은 늘 곁에 두는 관심사
음악일 수도 그림일 수도 글일 수도 있다
‘시와 함께’
라는 카톡 상태메시지를 26개월째 고정시켜 놓았더니
주위에서 “시를 참 좋아하시나봐요” 종종 묻는다
시가 아니라 시와다
시와를 좋아한다
때 ‘시’, 기와 ‘와’.
시와는 효자동 작은 한옥에서 태어난 두 돌 지난 우리 딸 이름이며
나에게 가장 강력한 영감을 주는 뮤즈의 이름이기도 하다
시와 함께하면
개구리 인형에게 티슈는 이불이 되고
직사각형 블록은 스마트폰이 되며
야자수 잎은 아빠 머리가 된다
시와의 순수한 시선과 몸짓을 통해
나는 이 세상 가장 낯선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내 인생 최초의 기억상실을 채운다
‘아,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자랐었구나’
그렇게 세상 처음을 경험한다
치열한 하루를 지나 새벽 귀갓길에
이렇게 사는게 맞나?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걸까?
광고를 넘어 삶에 대한 콘셉트를
고민할 때가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안방 문을 열자
아내와 딸이 데칼코마니처럼
하트를 그리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문고리를 잡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 순간
영감님이 슬며시 나타나 속삭였다
자네 뭘 그리 고민하시나
이렇게나 아름답고 고귀한 삶이
눈 앞에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