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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문제라 부르지 않는 법

푸하하하프렌즈 건축사사무소
의뢰가 들어왔을 때, 그것을 어떤 질문으로 받아들이느냐가 결과를 만든다. 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프렌즈(윤한진, 한승재, 한양규)에게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세 사람은 조금씩 다른 답을 내놓는다.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찾거나, 맥락 안에서 답을 찾거나, 고정관념보다 한 발 이전으로 돌아가거나. 출발점은 달라도 방향은 같다. 주어진 것 안에서 시작한다는 것. 14년째 함께하는 이 건축가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요구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재미있고 편안하고 소탈하지만, 문제 앞에서는 집요한 세 건축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많은 건물이 고정관념에서 시작해요. 그 고정관념은 대부분 실패하지 않기 위한 거예요. 진짜 좋은 게 뭘까를 생각하기 전에 망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먼저인 거죠. 저희는 안전하게 정해놓은 것보다 한 단계 더 이전에서 생각하려고 해요.”
질문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Q. 푸하하하프렌즈는 어떤 팀인가요? ‘푸하하하프렌즈’라는 이름의 의미도 궁금합니다.
윤한진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세 명의 친구가 함께 운영하는 건축사사무소예요. 2013년에 시작했고, 지금은 세 명의 대표와 여덟 명의 동료가 함께 일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설계 사무소입니다. 이름에 들어간 ‘하하하’는 웃음을 의미해요. 크게 웃는 소리죠. ‘푸하하하’ 웃으면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잖아요.
Q. 기업 사옥, 브랜드 공간, 일반 주거, 리노베이션까지 다양한 작업을 해오셨어요.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 중 인상 깊었던 작업을 하나씩 소개해 주세요.
윤한진베트남 ‘후에’라는 도시의 오래된 취수 시설을 리노베이션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섬으로 들어가는 보행교까지 잇는 프로젝트를 맡았어요. 코이카(KOICA)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4년의 설계를 마치고 곧 납품할 예정이에요. 설계를 시작하기 전에 현지 건축가를 직접 만나 도시의 상황을 배웠고 그 내용을 설계에 담으려 했어요. 저는 그동안 어떻게든 저를 드러내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었는데, 이 작업은 그런 걸 의도적으로 계속 눌러야 했던 프로젝트였어요. 그래서 더 의미 있습니다.
한양규저는 한남동에 철골로 설계한 근린생활시설이 기억에 남아요. 프로젝트 이름이 ‘계단 두 줄’인데요. 작은 사이트에 상업시설을 지을 땐 보통 계단을 한 줄로 설치하는 게 이상적이에요. 하지만 땅이 좁아서 계단을 앞쪽에 놓으면 건물을 다 가리게 되는 상황이었죠. 계단을 일자로 놓고, 위아래로 한 줄을 더 추가했어요. 그러면 한 층에 출입구가 두 개씩 생기는데 들어온 문과 다른 문이 하나 더 있으니까 올라갈 수도 있고, 가운데 칸막이를 세우면 공간을 나눠서 개별 임대도 할 수 있고요. 통념과 달리 사용하는 방식에 더 신경을 쓴 작업이에요.
한승재어느 순간부터 ‘나’를 드러내는 설계를 하기 시작했어요. 머리로 분석하기 전에, 그냥 몸으로 특별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건물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잼’이라는 실용음악학원 건물은 약간 몽환적인 느낌이 나요. 주변 상황이 어지러운 동네에서 하얀 도자기처럼 확 튀는 느낌이에요. 최근에는 늘 그런 방향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Q. 건축 의뢰가 들어오면 먼저 무엇을 확인하나요?
윤한진동시에 몇 가지를 체크해요. 건축주를 만나기 전에 먼저 사이트를 확인하는데, 바둑돌을 놓는 것처럼 맛있는 자리가 있어요. 참 재밌겠다 싶은 위치가 있으면 플러스 요소죠. 그다음 건축주를 만나면 건축주의 역량을 봅니다. 결국 건축물의 퀄리티와 결과는 건축주가 어디까지 열려 있느냐, 어디까지 서포트를 할 거냐가 결정적이거든요. 마지막으로 일정과 공사 예산을 확인하는데, 예산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설계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달라붙지 않기’가 있어요. 욕심나는 프로젝트일수록 조금 더 쿨하게 미팅을 하는 편이에요. 하고 싶다고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오히려 멀어지더라고요.
Q. 그럼 반대로 피하고 싶은 프로젝트 유형이 있나요?
윤한진복잡한 컨펌이 필요한 프로젝트는 맡지 않으려 해요. 결정 단계가 복잡한 건축주를 만나면 수많은 요식 행위를 거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공감대가 있으면서 결정권도 있는 건축주가 최적의 클라이언트죠.
한양규물론 힘든 경우라도 100억을 주면 합니다(웃음).
Q.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과, 건축가로서 그 공간에 필요한 것이 다르다고 판단 될 때는 없었나요? 그때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나요?
한승재사실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잖아요. 마음이 통하는 클라이언트라면 생뚱맞은 요구라도 일단 시도해 보고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오누이’라는 카페를 설계했는데, 상업지로는 좋지 않은 위치여서 처음에는 건축주를 말렸거든요. 이왕이면 좋은 자리에서 하라고요. 결론적으로는 거기에서 10년째 영업 중이에요. 삭막한 동네에 빛과 소금 같은 역할을 하고 있죠. 기본적으로 클라이언트가 우리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다 잘됐거든요.
Q. 작업마다 풀어야 할 문제가 다를 것 같아요. 새 프로젝트를 처음 마주했을 때, 각자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편인가요?
한승재이건 양규 질문이에요. 양규는 문제를 찾아서 도와주려 하는 편이고, 저나 한진이는 그쪽은 아닌 것 같거든요.
한양규문제를 찾는다기보다는 그냥 더 좋아질 만한 게 뭐가 있나 생각해요. 건축주가 건물을 더 잘 사용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한 발 더 가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윤한진저는 땅에 답이 있다고 믿어요. 주변 맥락을 벗어나서 하는 작업은 오브제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생뚱맞은 동상을 세우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게 나쁜 건 아닌데, 끝까지 끌고 가기는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늘 그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해요.
Q. 디스이즈네버댓 성수동 사옥 프로젝트로 ‘2025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으셨어요. 어떤 공간인지 직접 소개해 주세요.
한양규‘디스이즈네버댓’과는 연희동 사옥 작업으로 먼저 인연을 맺었고, 성수동에 신사옥을 짓는다고 연락이 와서 시작하게 됐어요. 연희동 사옥을 작업하며 클라이언트 내부적으로 회의가 많다는 걸 알게 됐는데요. 그래서 가장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방식을 찾게 됐죠. 설계와 시공까지 4년 가까이 진행했는데, 대표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게 돼서 의사결정이 굉장히 빠르고 원활했어요. 시공 중에 오염토나 지하수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시공사와 감리의 역량이 좋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요. 특히 내부 공간은 스튜디오 COM이 섬세하게 마무리했죠. 상 받을 때 심사위원이 “정상적인 절차로 지은 건물을 만나서 반갑다.”는 평을 해줬는데, 그게 가장 기분 좋았던 작업이었어요.

Q. 특히 주목받은 것이 ‘코어 해체 시스템’이라는 개념이에요. 어떤 의미이고 또 어떤 발상에서 나왔나요?
한양규처음부터 코어를 해체하겠다고 설계한 건 아니었어요. 이동이 편한 방식을 찾다 보니 가운데에 계단을 놓고 양 끝에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샤프트를 배치하게 됐어요.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큰 기둥 역할을 하게 된 거죠. 그 중간에 큰 보를 걸었더니 실내 기둥이 사라지면서 코어를 해체한 셈이 됐고요. 기둥이 없으니 층고가 높지 않아도 개방적으로 쓸 수 있고, 채광도 잘되는 구조가 된 거예요.
Q. 코어 해체 시스템처럼 평소 당연하게 여기던 것에 의문을 품게 되는 계기는 보통 어디에서 오나요?
한승재많은 건물이 고정관념에서 시작해요. 그리고 그 고정관념은 대부분 실패하지 않기 위한 거예요. 진짜 좋은 게 뭘까를 생각하기 전에 망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먼저인 거죠. 저희는 고정관념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생각하려고 해요. 임대 건물의 1층에는 통창이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안전하게 정해놓은 것보다 한 단계 더 이전에서 생각하려고 하는 거죠.
Q. 푸하하하프렌즈 사훈이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예요. 실제 설계 중에 그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 있다면요?
한승재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히 중요하죠. 근데 제일 멋진 건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윤한진그 말이 우리에게 특별해진 이유는, 결정적으로 셋 다 너무 멍청해서예요. 완벽한 건축가들의 집합이 아니다 보니 “그래도 해야 돼, 그냥 해.” 이렇게 용기를 내야 할 순간이 많아요. 그런 의미에서 과정이라는 게 조금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과정보다 결과가 더 좋은 사람들이기도 해요. 과정은 사실 엉망진창이거든요. 하지만 그 모든 건 결과를 위한 과정이라고 보려 하는 편이에요.

협업과 건축이라는 태도
Q. 세 분이 함께 운영한다는 점도 흥미로워요. 프로젝트마다 늘 함께 논의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각자 맡는 프로젝트가 다른가요? 프로젝트를 맡는 기준도 궁금합니다.
한승재각자 맡은 프로젝트를 따로 합니다. 기준은 랜덤으로, 그때 손이 비어 있는 사람이 맡아요. 회사 세 개가 같이 있다고 보면 돼요. 프로젝트를 맡는 비공개 기준이 있어요. 저는 착한 사람, 한진이는 욕망이 큰 사람, 양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맡을수록 시너지가 좋아요. 한진이는 상대에게 채찍질 당할수록 더 능력을 발휘하고, 저는 상대방이 편하게 해줘야 잘하고, 양규는 상대방이 곤경에 처해 있어야 능력이 더 발휘되는 것 같거든요.
한양규예산 부족하고 조건이 까다로운 경우 거의 저한테 프로젝트가 와요.
Q. 서로의 관심사나 판단 방식이 다르더라도, 완성된 작업을 보면 푸하하하프렌즈만의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아요. ‘푸하하하프렌즈다움’은 무엇인가요?
한승재사실 우리 설계가 좋아서 우리를 찾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저희가 좋은 거예요. 재미있고 편하고 웃기고 소탈하니까. 그런데 막상 설계를 맡겨보면 당황스러운 거죠. 푸하하하프렌즈다움을 굳이 꼽자면 ‘밝음, 천진난만함, 때 묻지 않음’ 정도로 말할게요.
한양규‘가식적이지 않음’인 것 같아요. 결국에는 설계한 사람이 건물에서 보이는 건 맞잖아요. 그게 순수함으로 드러나는 거 아닐까요?
윤한진어떤 건축주분이 AI에 건축가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우리가 나왔대요. 잘나가는 건축가 이름에는 저희가 없었는데 복잡한 질문이 나왔을 때 우리 이름이 떴대요. 거기에는 일정 부분 순수함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고약한 의도가 없는 건물. 그게 우리다움인 것 같아요.
한승재순수하다는 말보다는 ‘직설적이다’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두루뭉술하지 않고 직선적이다.
Q. ‘하이브 사옥’ , ‘성수연방’ 같은 대형 프로젝트부터 ‘세거리집’이나 ‘ㅁㅁㄷ작은집’ 같은 소규모 주거까지 작업해 왔는데 스케일이 달라져도 설계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나요?
한승재건축가가 설계한 멋진 건물을 봤을 때 정말 좋다고 느끼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인테리어가 별로인 경우가 많았어요. 겉은 멋있는데 속은 반대인 거죠. 건축을 잘한다는 말과 인테리어를 잘한다는 말은 서로 다르지만, 두 개를 다 잘해야 감동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스케일에 상관없이 겉과 속을 함께 생각하는 편이에요.
Q. 건축은 완공된 뒤 사람이 들어와 쓰기 시작하면서 또 달라지잖아요. 설계할 때 상상하던 장면과 실제 사용 사이에 가장 차이가 컸던 경험이 있나요?
한승재경기도 화성의 단독 주택을 설계한 적이 있어요. 건축가가 ‘이곳에선 이렇게 사세요’ 라고 제시하기보다는, 건축주가 살면서 완성해 나갈 부분을 고려하며 작업했어요. 잘 살고 계시는 걸 보면 기분 좋아요. 반면에 한진이는 어느 클라이언트의 집을 사면이 유리인 글래스하우스로 설계한 적이 있는데요. 처마가 엄청 커서 직사광선이 잘 안 들어오는 구조였죠. 그런데 몇 년 뒤에 가보니까 사용자가 세차장 그물막으로 위장막처럼 쳐놓은 거예요. 군대에서 무기 숨겨놓는 것처럼. 근데 그게 또 멋있더라고요. 하나하나 고칠 때마다 물어보는 건축주도 있고, 아예 물어보지 않고 고쳐서 완전히 다른 건물이 됐는데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재미있게 해놓은 경우라면 그것도 또 좋아요.
윤한진건물을 짓고 난 다음에는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완공 이후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이용하면 돼요. 오히려 건축가의 의도라는 이유로 고치고 싶은데 못 고치는 상황이 더 괴로운 것 같아요.
Q. 2013년 사무소를 시작한 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지나왔어요.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 달라진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승재생각보다 성장 속도가 느리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에 다니던 회사는 3년 만에 직원이 20명에서 100명이 됐거든요. 푸하하하프렌즈를 만들며 ‘너무 빨리 커지고 큰 건물도 많이 설계하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규모 면에서는 변화가 많이 없더라고요.
윤한진인정하기 싫지만 조금 성숙해진 게 있어요. 철이 들었다는 것과는 좀 다른 얘기이긴 한데, 요즘은 다들 조심스러워해요. 가끔 아무 생각 안 하고 설계하던 때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Q.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나, 아직 풀어보지 못한 공간의 질문이 있나요?
한승재좋은 시공사랑 일해보고 싶어요. 예산도 충분하고 설계도 좋은 환경에서 시공사가 협조해 주면 욕심을 더 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조명 하나, 계단 디테일 하나도 더 하고 싶은 게 가능해지니까요. 욕심을 내면 낼수록 좋아지는 건물을 해보고 싶어요.
윤한진저는 생산 시설을 하고 싶어요. 규모가 좀 있는 공장 같은 건데요. 건축이 ‘기능’만 강조하다 보면 스스로 불만스러울 때가 있고, ‘아름다움’만 얘기하다 보면 또 스스로 미흡하게 느낄 때가 있는데, 생산 공장은 정말 생산만 생각하면 되는, 또 다른 레벨의 기능이잖아요. 거기에 온전히 집중해서 해보고 싶어요.
한양규사실 저는 별생각이 없어요. 주는 대로 하는 게 진짜 재미있어요.
Q. 건축을 하지 않는 사람도 일이나 일상에서 익숙한 요구를 새롭게 바라봐야 할 때가 많아요. 당연해 보이는 조건을 다르게 보기 위해 가장 필요한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윤한진왜 다르게 봐야 하냐는 질문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필요한 건 자기 영역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한승재다르게 보는 건 굳이 만들어 내는 게 아니에요. 몸으로 오는 것 같아요. 여름에 덥고 짜증 나는 게 몸으로 오잖아요. 그러면 그늘이 필요하고 나무를 많이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억지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좀 불순해 보여요. 불편함을 불편하다고 느끼는 감각부터 되찾는 게 먼저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