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현대자동차 파빌리온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와 함께 올림픽 플라자에는 세계에서 가장 검은 건물 하나가 세워졌다. 마치 우주의 한 조각을 떼어내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이 건물의 정체는 현대자동차와 이노션이 기획부터 시공, 진행까지 함께한 현대자동차 파빌리온 전시·홍보관 이었다. 견고한 자태로 관람객을 맞이하기까지 공간 곳곳에 스며든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노션 스페이스크리에이트팀에게서 들어 보았다.
INTERVIEWEE
손혜주, 심용보, 김민지
스페이스크리에이트팀
INNOCEAN
Q. 자기소개와 현대자동차 파빌리온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설명을 부탁합니다.
손혜주저는 스페이스크리에이트팀 손혜주라고 합니다. 이노션에서는 줄곧 공간 프로젝트를 맡아 왔어요. 이번 현대자동차 파빌리온 관련해서 디자이너 해외사, 도료 개발사, 현장에서 시공 담당했던 해외사를 주로 담당했습니다.
김민지입사 5년차 김민지입니다. 저는 전시 일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도 전반적인 전시 기획과 제작을 맡았고, 제작관련 국내사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습니다.
심용보이노션 입사 2년 차에 접어든 스페이스크리에이트팀 심용보라고 합니다. 현장에서 프로젝트 매니징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건축, 인테리어 파트 관리나 예산 관리를 진행하고 있어요. 덕분에 작년 11월부터 올림픽 개최까지 주로 평창에 있었죠.
Q. 홍보관의 소재이자, 주 콘셉트로 현대자동차의 수소차가 사용되었습니다. 수소차를 선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손혜주현대자동차의 수소차인 ‘넥쏘’의 2018년 출시 예정에 맞춰 준비하게 되었어요. 수소 연료 전지 자동차라고 하면, ‘전기자동차랑 비슷할 것이다’ 혹은 ‘일상에서 접하는 차보다는 멀게 느껴진다’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어요. 그런 점에서 좀 더 자연스럽게 홍보를 해보자는 의도를 갖고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김민지현대자동차 내부에서도 수소차에 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았어요. 환경에 관한 관심도 꾸준히 있던 중, 올림픽 기간에 맞춰서 수소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저도 이 프로젝트 전에는 수소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거든요. 아직까지는 생소한 수소차를 소개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죠.
손혜주맞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수소라는 에너지원을 먼저 보여주어야 수소 연료 전지 자동차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수소차의 원리를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기획 초반 2주 정도는 수소차가 어떻게 구동이 되는지부터 공부했어요. 책과 사전을 끼고 봐도 너무나 어려운 원리를 어떻게 하면 관람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관건이었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알게 된 건, ‘연료 전지’가 수소차의 핵심이라는 점이었어요. 전기차는 배터리가 발전기라면, 수소차는 연료 전지 자체가 발전기라고 보면 돼요. 쉽게 말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산소와 차 내부 탱크에 담겨 있는 수소가 만나서 연료 전지 안에서 동력을 만들어내는 원리라고 정리할 수 있죠. 차가 움직이면서 마지막에 배출되어 남게 되는 것이 물이고요.
Q. 처음 기획 단계부터 어떻게 콘셉트를 잡아 나갔는지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말해주세요.
손혜주방금 말씀드렸던 수소차의 구동 원리를 1부터 10까지 펼쳐서 그림을 그려 봤어요. 수소차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이 원리를 설명해야 할 텐데,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가장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림이나 그래픽으로 표현해야 하나, 영상으로 보여주어야 하나 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반 모터쇼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어질 것 같았어요.
김민지내용은 어렵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렇다면 모든 이야기를 다 해보자, 라는 게 사실 기획 초반에 잡았던 방향이었어요. 그런데, 진행되면서 저희에게 주어진 공간이 반절 이상 줄어들게 되었어요. 때문에 공간 자체에 집중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동선을 따라가 면서 하나하나 원리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들어 갔을 때 직관적으로 필수적인 원리나 요소가 느껴질 수 있게끔 말이죠. 차를 소개하는 홍보관 임에도 불구하고 차가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어요. 현대자동차가 진행했던 홍보관 중에서 차가 등장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해요.
심용보현장에서 실행하는 입장에서 보면 스토리나 소재가 아무리 좋아도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것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관람객에게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포인트가 있는 것이 좋으니까요. 기획 단계보다 줄어든 공간 즉, 전시 동선이 짧아진 환경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선 함축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봤어요.
Q. 각 공간에 따라 이야기를 나누어 해보겠습니다. 먼저 외부 공간은 ‘수소의 기원(Universe)’이라는 콘셉트로 구성되었습니다. 특히 소재, 디자인에 있어서 큰 주목을 받았는데, 설명을 덧붙여준다면요?
손혜주우주의 70%가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요. 이에 맞춰 외관에서는 우주를 표현하고자 ‘슈퍼블랙’이라고 알려진, ‘반타 블랙 Vanta Black’이라는 획기적인 소재를 사용했어요. 높은 가격과 예민한 특성 때문에 주로 내부 자재로 사용되는 소재인데, 최초로 외장재로 사용했죠.
심용보보통 건축의 외장재라고 하면 풍압이나 기타 오염 물질에 맞설 수 있는 내구성이 강해야 하는데, 반타 블랙은 외부 영향을 잘 받는 소재에요. 그런 점에서 외장재로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일이었죠. 그럼에도 반타 블랙을 선택한 건 완벽하게 구현되었을 때 빛을 99% 흡수한다는 특성 때문이었어요. 일반 블랙 외장재가 90% 이상의 빛 반사율을 가지고 있는 것에 반해, 반타 블랙은 음영이 지지 않아 블랙홀처럼 뻥 뚫려 있는 듯한 느낌을 주죠. 저희가 의도한 우주를 표현하는데 적합한 소재였어요.
손혜주반타 블랙은 뿌려서 가루를 날려 채색하는 소재이기도 해요. 도료 안에 아세톤과 같은 용해제가 있어서 도포되면서 그 용해제는 날아가고, 검은색의 가루만 남게 되는 방식이에요. 작고 고운 입자가 쌓이면서 빛을 반사하는 것이죠. 이게 일반 페인트와는 다른 소재라, 채색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어요. 특히나 춥고 바람도 많이 부는 평창이었으니까요. 실제 현장 상황은 아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을 정도에요. (웃음)
심용보반타 블랙은 일반 도료와 달리 상온 10℃를 유지해야 최상의 색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에요. 소재의 특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큰 건축물을 텐트로 감쌀 수밖에 없었어요. 그 안에서는 열풍기를 돌려서 온도를 유지해야 했고요. 그런데, 혜주 님의 설명처럼 도료 안 아세톤 특성 때문에 내부를 완전히 막아 두면 화재의 위험이 생겨요. 그렇기에 내부 온도를 유지하면서 환기 시스템까지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최고의 퀄리티로 완성하기 위한 까다로운 조건을 다 맞추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밖에 없었죠. 게다가 반타 블랙은 20번 이상을 반복해서 채색해야 하는 소재거든요. 도료를 채색하는 공정만 일반 공사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김민지채색이 끝나고 텐트를 걷어 냈는데, 채광 밑에서 보니까 군데군데 완벽하게 칠해지지 않은 곳이 있더라고요. 덕분에 외관 벽에 LED로 만든 별 설치가 끝난 후에도 저희가 직접 채색해야 했어요. 별 설치물 표면에 묻은 도료도 물론 하나하나 닦아야 했고요.
손혜주채색이 다 끝나고 나니 손과 발이 온통 까매져 있더라고요. (웃음) 외관을 완성하는 것이 가장 까다롭고 힘든 작업이었어요.
Q. ‘워터 존 Water zone’은 산소와 수소가 만나 이루는 물의 순환에너지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공간의 기본적인 구성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완성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손혜주내부에 들어와서는 친숙해질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어요. 정보를 얻거나 배우는 것이 아닌, 스스로 체험하면서 이미지를 받아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보자는 목표가 있었어요. 일차적으로 체험을 하고, 그다음에 실질적으로 저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일 거라 생각했어요. 워터존을 구성한 이유는 수소와 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잖아요. 물에서 수소를 만들어낼 수 있고, 수소차의 유일한 배출물이 미네랄이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물이기도 하고요. 우리에게, 그리고 수소차에도 친숙한 소재인 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워터존의 전체 구성은 벽면에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을 떠서 옴폭하게 패인 곳에 따르면 자동으로 라인을 따라 물이 흐르도록 고안했어요. 이렇게 흐르는 물은 개개인을 상징하기도 하고, 이 물이 모여서 작은 연못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것은 개인이 모여 미래 수소 사회를 만드는 모습을 담고자 했어요. 물이 흐르는 움직임 자체는 자동차가 움직이는 형상을 구현하기도 하고요. 단지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 수소차의 상징을 여러군데 담아보고자 했어요.
심용보세계에서 가장 어둡고 까만 건물 안에 들어오자마자 마주하는 것이 가장 환하고 하얀 공간이에요. 시각적으로 보이는 대비가 큰 공간이라 말 그대로 하얗고 무결한 모습으로 완성하는 데 신경을 썼어요. 또 공간 중앙에는 의자가 있어서 체험과 함께 물이 흐르는 모습을 감상할 수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물방울이 흐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로 관람객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의 하나였어요.
Q. ‘하이드로젠 존 Hydrogen zone’은 수소차의 4가지 구동 원리 (태양 에너지 생성, 물의 전기 분해, 연료 전지 스택, 수소 전기차에서 나오는 순수한 물)를 각기 다른 느낌의 방으로 연출하였습니다. 다소 과학적이고 어려운 원리를 비주얼로 표현하는 것에 있어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김민지저희는 자체적으로 ‘팀 데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그때 혜주 님이 소개하셨던 ‘이상한 나라 앨리스’ 전시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전시 공간마다 공간의 크기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하는 변주를 네 가지 방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죠.
손혜주저는 외관과 워터 존을 주로 담당해서 이 공간은 민지 님과 용보 님께서 주로 진행하셨었어요. 두 분보다 한 발짝 뒤에서 느꼈던 점은 아무래도 마감재 디테일에 많은 신경을 썼구나 하는 점이었어요. 공간 안에서 태양열이 생성되거나 물이 분해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주요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네 곳이 모두 다른 이미지로 전달됐다는 것만으로 성공적으로 완성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김민지체험할 수 있는 공간인 워터존과는 다르게 이곳은 좀 더 아트적인 접근이 필요한 공간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테일에 중점을 두게 된 것도 있고요. 대신, 실제 태양 에너지를 공간 안에 가지고 올 수 없으니 그것을 시각적으로 재연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보완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실제 태양 전지 패널 대신 유사한 모양의 소재로 제작했던것처럼요.
심용보네 가지 공간의 전이를 짧은 동선 안에서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주요했어요. 실제로 각 공간별로 천장의 높이를 모두 다르게 만들었어요. 한정된 공간 안에서 한눈에 느껴지는 시각적인 재미를 주고자 한 것이죠. 태양 에너지를 상징하는 첫 번째 공간은 천장이 높아서 자연스럽게 올려다보게 되었다면, 그다음 공간은 천장은 낮은 대신, 물이 전기 분해되는 모습을 반사되는 소재를 사용해 차별성을 주는 식이죠. 연료 전지를 표현한 방에서는 인터렉티브 LED 조명을 사용하고, 마지막으로 물이 배출되는 방에선 천장 유리 벽에 떨어지는 물방울의 파형이 벽에 투영되는 등 단순하지만 명확하게 구성했어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크롬이나 유리, 광섬유 등 반사성이 있는 물질을 주로 사용하다 보니, 각 방이 완벽하게 독립되어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의 소재가 반사돼서 조금씩 보여서 애를 먹었어요. (웃음)
Q.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큰 챌린지가 되었던 점이나 프로젝트를 마치고 느꼈던 소감에 대해 말해주세요.
김민지실물 자동차는 물론이고, 모형도 하나 없는 공간으로 만들기까지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자동차가 없어서 더 신선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지금도 평창 현장에 계신 정수 님, 동찬 님의 노고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톱니바퀴처럼 촘촘한 최고의 팀워크를 느낄 수 있었어요.
손혜주그동안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할 때, 텍스트든 그림이나 영상이든 직접적인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간의 분위기나 연출 요소만으로도 이 공간은 수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직접적인 콘텐츠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깨달았죠. 다른 공간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나 이번 현대자동차 파빌리온은 저 혼자, 그리고 이노션이나 현대자동차 하나로는 절대 할 수 없는 프로젝트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어요. 이노션과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공간 디자이너, 시공사, 설계사 모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정해진 시간 안에 다 끝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현장은 마치 전쟁터처럼 날카롭고 바쁘게 돌아갔지만, 그 어떤 현장보다 분위기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심용보자동차가 없는 자동차 브랜드의 홍보관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 관람객분들 중에서는 “무슨 자동차인가요?” 혹은 “이제 자동차는 어디서 보면 되나요?” 같은 반응도 있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불특정 다수의 시선과 취향을 모두 충족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나중에 브랜드 홍보관을 또 진행하게 된다면, 브랜드와 제품에 맞는 타겟팅에 대한 연구를 계속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브랜드의 비전과 제품을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까가 앞으로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Q. 패럴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 새롭게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나 기타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손혜주패럴림픽 때 방문하시는 관람객 분들도 동일한 퀄리티의 전시를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다른 계획보다는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일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평창에 폭설이 내려서 외관에는 눈이 계속 쌓이는 상황이라, 현장 매니저와 스태프들은 지금도 보수를 계속하고 있어요. 저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패럴림픽 기간에도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지금의 목표이자 바람이에요.